“우리 지역이 이렇게 매력적인 곳이었네요”

지역의 사회적경제 자원을 체계적으로 알면 사회적경제 현장과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진흥원)은 2020년 3차 추가경정사업 예산을 배정받아 하반기에 전국 각 지역의 사회적경제 특성과 시민들의 인식을 알아보는 ‘사회적경제 지역생태계 구축 지원사업’ 진행했다. 이번 사업은 청년경력단절여성시니어 등 1700명을 고용해 진행된 사업으로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의미가 있다.

<이로운넷>은 조사를 수행한 전국 18개 사업수행기관 중 강원, 경북, 부산 등 3개 지역의 수행기관과 참여자에게 사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부산 내 사회적경제기업의 숫자는 예상보다 적었지만,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알짜’ 기업을 만났습니다. 사회적경제라는 개념에 대해서 주민 80% 이상은 잘 모르더군요. 홍보뿐 아니라 공통교육과정에서도 다뤄 인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부산 ‘사회적경제 지역생태계 구축 지원사업’에 참여한 박성범 코디네이터가 말한 소감이다. 해당 사업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사회적경제 현황을 조사한 DB(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 위해 추진했다. 진흥원은 취합된 지역 정보를, 향후 지역의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업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9월 이뤄진 부산 ‘사회적경제 지역생태계 구축 지원사업’ 조사원 오리엔테이션 현장./사진=(사)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
 9월 이뤄진 부산 ‘사회적경제 지역생태계 구축 지원사업’ 조사원 오리엔테이션 현장./사진=(사)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

부산광역시에서는 이 사업을 ㈔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가 맡아 수행했으며, 16개 기초자치단체 중 동구와 중구를 대상으로 했다. 사업에 참여하는 지자체는 지역 곳곳으로 찾아가 조사하기 위해 올해 여름 조사원과 조사업무를 총괄할 코디네이터를 뽑았다. 부산에서는 조사원 72명이 활약했으며, 조사원을 돕기 위한 3명의 코디네이터가 활동했다.

조사항목은 모든 지역에서 똑같이 묻는 ‘공통조사 항목’과 지역별로 다른 ‘특화조사 항목’으로 나뉘었다. 공통조사 항목은 사회적경제기업 수, 주민 인지도 등 전반을 조사하는 내용으로, 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는 조직 68개, 주민 1617명, 공무원 40명을 대상으로 설문했다. 중구와 동구 특화조사 항목은 ▲도시재생 거점시설 주민이용현황 및 관리방안과 ▲빈집데이터 구축을 위한 현황조사였다. 이를 위해 동구와 중구 지역주민 1000명을 조사했으며, 동구에서 408채와 중구에서 287채 빈집을 조사했다.

원도심 중·동구, 사회적경제 기반 재도약 가능성 보다

임진우 (사)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 팀장./출처=(사)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
임진우 (사)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 팀장./출처=(사)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

사회적경제 지역생태계 구축 현장센터장을 맡은 임진우 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 가치육성팀장은 “이전에는 개별 기업에 투입되는 자원과 결과물이 기초자치단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하고 실태를 조사하는 사업은 없었다”며 “부산 원도심의 사회적경제 생태계의 실태와 현황을 파악해보는 뜻깊은 사업이라 지원하게 됐다”고 사업 참여 계기를 밝혔다. 사업 제안 발표 자리에는 지자체 공무원이 참여하고, 사업 추진 중 동구에서는 민관거버넌스형 중간지원조직이 개소할 만큼 관에서도 깊이 관심을 보였다.

16개 자치구 중 왜 2곳에서만 조사를 했을까. 임 팀장은 “먼저 원도심의 사회적경제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자치구를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중구와 동구에 기반을 둔 사회적기업가를 육성할 계획이다. 타 자치구보다 청년층이 적은 원도심이지만, 청년창업-지역성-사회적경제를 엮는 생태계 활성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였다.

조사 결과 동구에는 107개, 중구에는 64개의 사회적경제기업이 있었다. 임 팀장은 “안타깝게도 일반 지역주민은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박성범 코디네이터./출처=본인제공
박성범 코디네이터./출처=본인제공

이번 조사로 사회적경제에 입문한 사람들도 있다. 참여자 신청 자격에는 사회적경제 관련 경험 보유자뿐만 아니라 조사사업 참여 경험자나 사무 관련 전산 업무 가능자도 있어서다. 부산 동구청 홈페이지 공지를 보고 코디네이터에 지원했다는 박성범(33) 씨는 사무 관련 전산 업무 가능자로 신청했다. 조사원들의 조사업무를 지원하고 스케줄과 인력, 행정상 관리를 맡았다.

박 코디네이터는 대학생 시절 사회적경제에 대해 1시간 정도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당시에는 듣기에만 좋고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조사 전 교육을 듣고, 설문지 공부도 해야 했기에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가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며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구체적인 사례를 접하고, 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를 찾아오는 사회적기업 관계자들과 대화하면서 확실히 이전보다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빈집 데이터로 도시재생 방향 전환 기대

부산 동구·중구는 부산의 원도심임과 동시에, 최근에 부산 북항 재개발이라는 국가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신·구가 공존하는 지역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부산시는 낙후된 원도심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고자, 지역자원 및 주민 참여를 통한 도시재생 사업 ‘산복도로 르네상스’를 2011년 시작해 올해까지 진행 중이다. 부산 북항 재개발이라는 국가 개발사업으로 막대한 항만재개발사업을 추진 중이기도 하다. 신·구 도심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국내 최초로 신도심 개발이익을 구도심에 투자하는 결합방식으로 지역과 주민, 역사와 자원이 공존하는 신·구도심 결합 생태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이번 특화조사를 통해 주민들의 도시재생 거점시설 이용실태와 결과물을 바라보는 인식도 조사할 수 있었다. 빈집이 몇 채인지 세었는데, 조사 결과 동구는 916채, 중구는 671채로 기존데이터보다 많이 발견됐다. 박 코디네이터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과 부지를 발견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동구와 중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하지도 못할 정도로 정체된 구도심 지역입니다. 중구는 남포동이라는 큰 상권이 존재하지만, 그 규모가 축소되고 있습니다. 그런 큰 상권 자체가 없는 동구는 상황이 더 심각하죠. 도시재생 사업 거점시설의 활용도 역시 높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진행한 빈집 현황조사를 통해 중구와 동구의 도시재생 사업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전수 조사로 이전 조사 때보다 훨씬 많은 수의 빈집을 발견했는데요,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도시재생 성패의 관건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기초자치단체 단위 생태계 조사 첫 시도...발전 방향은?

10월 말에 부산에서 진행된 도시재생 거점 주민 사업 소개 및 참여 브리핑 현장./사진=(사)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
10월 말에 부산에서 진행된 도시재생 거점 주민 사업 소개 및 참여 브리핑 현장./사진=(사)부산사회적경제네트워크

향후 발전에 이번 조사가 어떻게 도움이 될까? 중구와 동구는 고령화 도시, 낙후지역으로 분류돼있는데, 사회적경제 기반이 재도약할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임 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재개발 개발이익을 원도심(산복도로)에 투자한다는 부산시의 발표에 따라, 중구와 동구에는 부산 북항 재개발이라는 국책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지역에서 다양한 움직임이 보인다”며 “지역주민이 중심이 된 기업 등 다양한 형태로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참여하고 상생하는 사업모델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단편적인 사회적경제기업의 정량적 지표만이 아닌, 정성적 지표도 일부 조사할 수 있었다”며 “조사를 통해 전국 사회적경제 지역생태계가 확보되고, 지역적 특성을 가지는 사회적경제기업 적합 모델을 적재적소에 시도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되고 있다고 본다”고 소감을 말했다.

임 팀장과 박 코디네이터는 3개월이라는 짧은 조사 기간에 아쉬움을 표했다. 현황과 실태조사는 충분히 이뤄졌으나, 발전 방향, 맞춤형 모델 개발, 기업 지원 정책 등 2단계로의 설계가 조금 부족했다는 것. 임 팀장은 “추가 사업이 추진된다면 1단계로 현황 실태, 2단계로 맞춤형 사업모델이나 지역 맞춤 설계 등 다양한 사업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 코디네이터는 설문조사 항목도 좀 더 시간을 들여서 다양하게 구성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했다.

조사지역 확대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임 팀장은 “낙후지역, 원도심에서의 사회적경제기업 역할과 지역주민의 생각을 기반으로, 앞으로 부산의 시가지인 진구, 연제구, 동래구의 사회적경제 생태계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사업을 계기로 16개 자치구를 전수 조사해보는 욕심도 내부적으로 생겼다”고도 전했다. 또,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이번 사업에 참여한 지역은 약 60개뿐”이라며 다른 지역으로도 꼭 조사가 확대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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