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보호센터에 등록하러 온 어르신들이 ‘여기는 어떤 수업 하느냐’고 프로그램을 물어보세요. 각자 취향이 있고 배우고 싶은 게 다른 거죠.”

이연실 와이에스콘텐츠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어르신들도 각자 다른 취향과 취미를 갖고 있다. 그런 만큼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선택지를 늘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연실 와이에스콘텐츠 대표. 
이연실 와이에스콘텐츠 대표. 

우리나라는 2025년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노인인구 증가는 치매환자 증가로 이어진다.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9년 경도인지장애로 진료를 받는 사람은 27만 6045명으로 최근 10년간 19배가량 증가했다.

치매환자 및 경도인지장애 노인들을 위한 장기적 관리가 중요해진 상황. 특히 경도인지장애 노인의 치매 진행을 예방하기 위해 ‘인지교육’이 중요하다. 인지교육은 두뇌·신체·감각 등 종합적인 활동으로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을 유지 및 향상하는 교육이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열악하다. 노인 복지 정책은 관리가 시급한 의식주 등 생활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치매 환자 지원 역시 검사비 지원 등 단기적인 의료비 절감에 집중한다. 인지 교육이 복지 정책의 하나로 다양성까지 갖추길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와이에스콘텐츠(대표 이연실)는 노인의 다양한 취향과 취미를 고려한 디지털 인지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인지교육 프로그램을 기초로 전문가 조언을 받아 두뇌훈련, 음악, 구강 등 7개 분야를 추가해 총 12개 분야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온종일 TV만 보거나 똑같은 율동만 따라 하면 어르신들도 지겨워하신다. 매일 다른 교육, 종합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인 ‘취향저격’하는 프로그램 개발 노력

와이에스콘텐츠는 노인의 취향을 반영한 인지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매주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와이에스콘텐츠
와이에스콘텐츠는 노인의 취향을 반영한 인지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매주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와이에스콘텐츠

이연실 대표는 와이에스콘텐츠를 설립하기 전 어린이집 운영, 유아교육 회사에 근무하는 등 10년 넘게 유아교육 분야에서 일했다. 이 대표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어르신들을 만났다. 점점 어르신들을 대하는 일이 내 일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을 느끼게 됐고, 노인 교육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이 대표는 3년 동안 노인주간보호센터, 노인공동생활가정 등에서 직접 강의하면서 시니어 교육 현장을 경험했다.

현장을 다녀본 결과 노인 인지교육이 없는 건 아니지만 노인의 관심사를 반영한 프로그램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장에서는 노인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먼 유아교육 교재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대표는 “유아교육과 치매 환자 인지교육에 접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아용 예시가 노인들의 교육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접점은 살리되 어르신 취향에 맞춘 콘텐츠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틀니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가게 문에 붙어있는 ‘push’, ‘pull’은 무슨 뜻일까? 보이스피싱 피하는 법은? -와이에스콘텐츠의 노인 교육 프로그램 내용 중.

때문에 이 대표는 인지교육 프로그램 ‘케어엔젤’을 개발할 때 시니어 취향과 생활 습관에 밀착된 내용으로 수업을 구성하려 노력했다. 산수를 공부할 때 흔히 등장하는 바나나, 딸기 대신 노인들이 시장에서 구매하는 반찬 재료를 예시로 들었다. 영어수업에서는 알파벳 대신 ‘커피(Coffee)’, ‘풀(pull)’, ‘푸쉬(push)’ 등 실생활에 알아두면 좋은 단어를 위주로 배운다. 치매 환자는 이런 수업을 통해 두뇌활동을 강화할 수 있다.

와이에스콘텐츠 인지교육 프로그렘 '케어엔젤'을 통해 교육 받는 어르신들의 모습. 케어엔젤은 매달 두뇌, 건강체조, 구강, 손운동, 영양관리, 수공예, 음악, 지필, 회상 등 72개의 다른 수업을 제공한다. /출처=와이에스콘텐츠
와이에스콘텐츠 인지교육 프로그렘 '케어엔젤'을 통해 교육 받는 어르신들의 모습. 케어엔젤은 매달 두뇌, 건강체조, 구강, 손운동, 영양관리, 수공예, 음악, 지필, 회상 등 72개의 다른 수업을 제공한다. /출처=와이에스콘텐츠

노동 사각지대 요양보호사 처우 높아질 수 있도록

와이에스콘텐츠의 ‘케어엔젤’ 프로그램은 노인주간보호센터, 장기요양시설 등 노인 복지 기관과 50건 이상 계약을 맺었다. 현재 시설 위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 대표가 처음 케어엔젤을 기획할 때 생각한 건 ‘가정방문’이다. 요양보호사가 치매환자 등 노인 가정을 방문해 돌봄을 제공할 때 케어엔젤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하는 형태다.

처음 ‘가정방문 인지교육 프로그램’을 떠올린 건 요양보호사 등 돌봄 노동자의 인식을 개선하고 싶어서다. 국내 요양보호사 자격증 소지자는 130만 명 정도다. 돌봄 핵심 인력이지만 최저시급에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등 처우가 열악하다. 노인들도 요양보호사를 청소하고 심부름해 주는 가사도우미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 대표는 “관리하는 사람은 자존감을 느끼며 교육하기 어렵고, 케어 받는 사람은 전문성 있는 교육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공단은 치매노인들을 관리하기 위해 60시간 이상 치매전문교육을 받은 요양보호사가 대상 노인에게 인지자극 활동을 교육하면 가산금을 지급하고 있다. 문제는 교육을 받아도 돌봄 현장에서 활용할 만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와이에스콘텐츠는 ‘SEM(Senior Edutainment Manager)’ 서비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SEM은 치매케어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치매 지식 교육, 건강증진 교육 등을 통해 요양보호사를 ‘자격 있는 선생님’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SEM 아카데미 교육으로 지금까지 1500여 명의 강사를 양성했다.

이 대표는 “월별로 체계적으로 구성된 수업 교안을 현장에 가져가서 교육할 수 있어 요양보호사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일본의 경우 케어 매니저 급여가 높고 봉사를 강요하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모델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연실 대표가 강사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출처=와이에스콘텐츠
이연실 대표가 강사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출처=와이에스콘텐츠

비대면 돌봄 시대... “정서 교육 놓쳐선 안 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모든 영역에서 비대면 서비스가 증가하고 있다. ‘돌봄’도 예외는 아니다. 각 지자체는 노인의 생활을 보조하는 로봇을 보급하는 등 새로운 비대면 돌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와이에스콘텐츠의 디지털 인지교육 프로그램도 비대면 방식을 지향한다.

더구나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방문 서비스를 받거나, 노인이 스스로 디지털 프로그램을 활용하면서 치매 예방 교육을 받는다면 코로나19로 인한 경증치매노인 돌봄 공백을 줄일 수 있다.

이 대표는 “비대면 돌봄 시대지만 ‘정서교육(정서적 돌봄)’이 간과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와이에스콘텐츠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에는 신체활동, 두뇌교육 외에도 정서교육 영역이 존재한다. 경증치매노인이 좋은 기억을 떠올리고 이에 관해 얘기하면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다. 이연실 대표는 “로봇이나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노인들의 정서를 돌보는 정서교육(정서적 돌봄) 영역이 있다”며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아야 어르신들의 신체적 건강은 물론 마음 건강까지 살필 수 있다”고 말했다.

인지교육 프로그램 콘텐츠를 촬영하는 모습. /출처=와이에스콘텐츠
인지교육 프로그램 콘텐츠를 촬영하는 모습. /출처=와이에스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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