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가 좋은데 허름하지 않고, 월세 부담은 적은 집이 있을까? 그런 집에서 쫓겨날 걱정 없이 오래 살 수는 없을까? 최근 집을 사지 않고도 입지 좋은 곳에서 장기간 저렴한 임대료로 살 수 있는 '사회주택'이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 취재팀은 국내 사회주택을 들여다보고, OECD 사회주택 비율 상위 3개국인 네덜란드·오스트리아·덴마크의 사회주택 전문가들과 나눈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한다.

서울 등 수도권 사회주택의 역할은 주거 취약계층이 높은 임대료 탓에 외곽으로 밀려나지 않게 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한국사회주택협회에 의하면 국내 사회주택의 74.3%는 서울에, 20.9%는 경기도에 있다. 대부분 수도권에 몰린 것. 인구 절반이 국토 면적 10% 안에 사니 가장 수요가 높다. 약 2000호에 달하는 관내 사회주택을 관리하기 위해, 서울시는 조례에 따라 중간지원조직인 ‘사회주택종합지원센터’도 운영 중이다. 

국내 사회주택 공급현황 통계. 약 95%가 수도권에 있다. 자료=한국사회주택협회
국내 사회주택 공급현황 통계. 약 95%가 수도권에 있다. 자료=한국사회주택협회

그런데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도 사회주택이 필요할까? 지난 10월 27일 이로운넷은 4년째 꾸준히 ‘전주형 사회주택’을 공급 중인 전북 전주시를 방문해 전주 사회주택 3개를 운영하는 한국주거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났다.

시작부터 시민과 설계한 전주 정책

지난 10월 27일 전주시청을 방문해 전주시 사회주택 정책 추진 연혁과 현황을 들었다.
지난 10월 27일 전주시청을 방문해 전주시 사회주택 정책 추진 연혁과 현황을 들었다.

전주형 사회주택은 청년·장애인 주거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유승수 전주시 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청년 주거 문제가 지방 도시에서 과연 얼마나 화두가 될까 싶었는데, 전주시에서 중위소득 50% 이하 월세 가구는 소득의 30% 이상을 임대료에 쓰고 있다”며 “월세 가구가 대부분 20~30대 젊은 계층이라는 걸 고려할 때 전주시에서도 청년층이 주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청년 임차 가구의 RIR(일반 월세 가구의 소득 대비 임차료 비율)은 약 20%다. 기존 공공임대주택 설계 구조가 불편한 장애인들의 수요로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사회주택을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유승수 전주시 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도시공학박사).
유승수 전주시 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도시공학박사).

전주시는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주택 논의를 펼치고 정책을 추진했다. 2016년 가을 사회주택 이해를 위한 주거복지 포럼 개최를 바탕으로 이듬해 민·관 협력 전주형 주거복지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주거복지가 필요하다는 걸 느낀 전주시는 2017년 1월 주거복지과를 신설하고 사회주택을 전담하는 사회주택팀을 만들었다. 사회주택팀과 민간단체들이 모여 시민 포럼도 7차례 개최하며 입주자 수요 확인, 정책 모니터링 등을 진행했다.

그해 말 ‘전주시 주거복지실태조사 분석 및 통계보고서’와 함께 발간한 ‘전주시 주거복지기본계획’에서 전주형 사회주택 공급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듬해 '전주시 주거복지 지원 조례'에 사회주택에 대한 내용이 추가됐으며, 현재 총 68가구가 전주시 전역에 공급됐다. 

민간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주거 관련 단체들의 노력과 주거복지에 대한 시 차원의 관심이 더해졌다. 특히 김승수 시장의 영향이 컸다. 유 책임연구원은 “당시에 사회주택은 생소한 개념이었지만, 시장님이 새로운 주거복지 유형에 대한 관심이 많아 빠르게 추진될 수 있었다”며 “공공임대주택과 민간임대주택의 한계를 민관협력으로 풀 대안으로 자리 잡아갔다”고 설명했다.

공급 형태는 전주 달팽이집(시 소유주택 리모델링형)을 제외하고 모두 ‘토지임대부 리모델링형’이다. 시가 토지·건물을 사들여 운영사에 빌려주면, 운영사가 리모델링하고 입주자를 모집·관리하는 방식이다. 임대료는 시세 80% 이하, 최장 20년 거주할 수 있게 하는 게 기본 골자다.

주거복지를 실현하는 방법에는 주거비를 보조하는 게 제일 쉽지 않을까. 유 책임연구원은 주거비 지급과 주거 안정성에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보조받는 주거비는 일정한데 거주하는 집의 임대료가 감당이 안 될 만큼 오르거나,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소용없다. 그는 “사회주택에는 의무적으로 커뮤니티 공간이 마련돼있어 단순히 사는 게 아니라 어울려 생활하는 공간이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시 차원에서 사회적경제 주체 역량 강화와 인식 확산을 위해서 매년 아카데미도 연다. 박정향 사회주택팀장은 “사회주택, 주거복지에 관심 있는 누구나 방문할 수 있어 주거환경학과 대학생이나 주택 공급에 관심 있는 퇴직자 등 여러 곳에서 찾아온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안정형 전주시 사회주택...작지만 단단해

김영찬 생태도시국 주거복지과 주거복지정책팀 주무관. 10년 동안 전북주거복지센터 사무처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김영찬 생태도시국 주거복지과 주거복지정책팀 주무관. 10년 동안 전북주거복지센터 사무처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김영찬 주거복지과 주거복지정책팀 주무관(전북주거복지센터 전 사무처장)은 ”마을마다 지역 기반의 맞춤형 소규모로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해 운영하는 게 전주시 사회주택의 기본적인 철학”이라고 소개했다. 다른 지역에서 벤치마킹하러 오는 이유다. 사회주택 정책이 가장 오래된 건 서울이지만 너무 규모가 크고 상황도 다르다. 김 주무관은 ”부산시 등 전주시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도시에서 지자체 단위로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주택당 가구 수는 20호를 넘지 않는다. 그래서 주택마다 ‘테마’를 정할 수 있다. ▲팔복동 ‘추천’은 노후주거지 계층통합형 ▲동완산동 ‘전주 달팽이집’은 청년 셰어하우스 ▲중화산동 ‘청춘 101’은 여성 안심주택 ▲효자동 ‘소우주’는 청년주택 ▲삼천동 ‘비타민하우스’는 마을공동체 활성화형 ▲서서학동 ‘창공’은 청년예술인 사회주택이다. 사회주택 운영을 희망하는 사회적경제 주체는 몇 개월에 걸쳐 발품을 팔아 입지 선정부터 수요 대상 물색까지 완료해 공모에 참여한다.

청춘101 내부 커뮤니티실. 사진=한국주거복지사회적협동조합
청춘101 내부 커뮤니티실. 사진=한국주거복지사회적협동조합

예를 들어 ‘청춘101’은 근처에 대학교와 병원이 있다. 가까운 거리에 편의점·파출소·빨래방이 있고, 걸어서 다닐 만한 지역이다. 이런 특징을 고려했을 때, 한국주거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한주협)은 여성 대학생이나 간호사가 수요자가 될 수 있겠다고 분석해 여성안심주택으로 주제를 정한 거다.

박정향 전주시 생태도시국 주거복지과 사회주택팀장.
박정향 전주시 생태도시국 주거복지과 사회주택팀장.

지역사회 수요에 맞게 운영 가능한 건 사회적경제 주체라서다.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는데 몰두하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놓지 않는다. 박 팀장은 “시세의 80%만 맞추면 되는데도 사업자들이 시세 65~70% 수준까지 자발적으로 낮춰서 받는데, 이는 사회적경제기업이라서 가능한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배현표 한주협 사무국장은 시 차원의 의지도 강조했다. 그는 “공공의 노력과 사회적경제 운영 주체의 노력이 합쳐진 것”이라고 말했다.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왜 낮춰 받을까. 배 사무국장은 “새로 건물을 짓지 않고 리모델링만 하면 되는 저비용 구조이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꾸준히 공실 없이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직 성향상 지역에서 이익을 크게 남기거나 사업을 크게 확장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한주협이 운영하는 사회주택에는 항상 입주 대기자가 있다.

배현표 한국주거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을 전주 여성안심 사회주택 '청춘101'에서 만났다.
배현표 한국주거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을 전주 여성안심 사회주택 '청춘101'에서 만났다.

‘모범사례’로 꼽히지만 전주시도 고민이 있다. 사회주택 운영을 맡을 사회적경제기업이 서울만큼 많지 않고, 운영사 규모가 작아 리모델링비조차 부담이 된다.

유 책임연구원은 “지금은 운영사가 알아서 해결하지만, 향후 시에서 관련 기금을 마련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라며 “보탬이 될 수 있는 관련 법 정비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접목한 장애인 대상 사회주택도 고민 중이다. 현재 주거복지 지원 조례에 사회주택이 명시돼있지만, 사회주택 조례를 새로 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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