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이라고 하면 흔히 사회주의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회적(Social)’은 공동체로 살아가면서 같은 문제를 풀자는 뜻에서 붙은 수식어다. 사회적경제가 진보와 보수가 갈등하는 가운데 진보 쪽에서 나온 ‘히트 상품’처럼 보이지만, 사실 경제위기 등 국가적 어려움을 겪을 때 고용이나 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다. 

지난 18일 방송된 EBS ‘CLASS e’에서는 우석훈 성결대 교수가 ‘위기에서 피는 꽃, 사회적기업’을 주제로 세 번째 강연을 펼쳤다. 우 교수는 “1990년대 세계화 이후 자유방임으로 기업을 풀어두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세계 곳곳에서 시장실패가 발생했다”라며 “국가와 시장이 움직이기 어려운 양극단의 중간 어디쯤에서 가장 최첨단의 형태인 사회적기업이 성장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방송된 EBS ‘CLASS e’ 제3강 ‘‘위기에서 피는 꽃, 사회적기업’에서 강연하는 우석훈 성결대 교수./사진제공=EBS ‘CLASS e’ 방송 화면 갈무리
지난 18일 방송된 EBS ‘CLASS e’ 제3강 ‘‘위기에서 피는 꽃, 사회적기업’에서 강연하는 우석훈 성결대 교수./사진제공=EBS ‘CLASS e’ 방송 화면 갈무리

한국에서 사회적기업 육성법은 2007년 1월 3일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처음 제정된다. 당시 새누리당의 진영 의원이 발의한 법률인데, 제도화의 움직임은 의외로 보수라 불리는 정당에서 시작됐다. 1조에 따르면 육성법은 “사회적기업의 설립·운영을 지원하고 육성해 우리 사회에 충분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사회서비스를 확충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사회통합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법은 제정됐지만 당시 사회적기업의 수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고, 국민 대다수도 법이 있는지도 모를 만큼 인식이 낮았다. 그러다 1년 후인 2008년 9월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여파로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반전을 일으킨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고, 한국 역시 실업 문제가 크게 대두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고용노동부에서 “사회적기업은 우리의 중요 정책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사회적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일부 인건비 지원 등에 나선다. 육성법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회적기업의 수 자체가 많지 않았고, 정부는 ‘예비사회적기업’ 제도를 운영해 청년·노인·장애인 등을 중심으로 한 기업들에 여러 혜택을 주면서 설립을 권장해 그 숫자를 늘린다.

우 교수는 “한국경제 100년사를 쓴다고 했을 때, 사회적기업의 출발이 있었다는 게 굉장히 중대한 전환점으로 찍힐 것”이라며 “2007년 육성법이 생겨서 사회적기업이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법이 생겨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리며 커졌다고 보는 편이 맞다”라고 이야기했다.

해외에서 사회적기업이 성장한 배경도 비슷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영국도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뒤로 밀려있었던 보수당이 집권한다. 당시 43살의 젊은 정치인 데이비드 캐머런이 정권을 바꾸고 총리 자리에 앉는데, 당선 이후 리버풀 호프 대학에서 한 연설이 유명해진다. 

캐머런은 “공동체에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하고, 지역의 민중에게 더 많은 역할을 주고,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더 많은 권한을 이양하며, 협동조합·상호조합·자선단체·사회적기업을 지원한다”는 등을 주장했다. 금융위기를 겪으며 보수 정권에서도 사회적경제가 ‘새로운 길’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우 교수는 "법적으로 인증받은 사회적기업이 인건비 일부를 받고, 공공조달 분야에서 우선구매 혜택을 받는 등 의미있는 지원을 받는 한편, 발생하는 이윤의 2/3를 사회적 목적에 써야 하는 등 기준이 있다"라고 말했다./사진제공=EBS ‘CLASS e’ 방송 화면 갈무리
우 교수는 "법적으로 인증받은 사회적기업이 인건비 일부를 받고, 공공조달 분야에서 우선구매 혜택을 받는 등 의미있는 지원을 받는 한편, 발생하는 이윤의 2/3를 사회적 목적에 써야 하는 등 기준이 있다"라고 말했다./사진제공=EBS ‘CLASS e’ 방송 화면 갈무리

법적·정치적 흐름 속에 살펴봤지만, 사실 사회적기업은 법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며 법은 지원 근거 등을 마련하기 위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면 법과 상관없이 관계와 연대를 중시하는 모습에서 사회적경제의 원형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정부의 공식 인증과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곳도 있지만, 공익적 목적을 갖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를 한다는 목표를 가진 곳이라면 사회적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위기의 순간에 효율성만 따진다면 고용·복지 측면에서 풀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며 “적어도 우리가 의식주 문제만큼은 시급히 풀고, 함께 먹고 살아가야 할 때 사회적기업을 비롯한 사회적경제가 움직인다. 사회적경제란 이처럼 정치적 양상보다는 위기에 더 민감하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EBS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함께 준비한 강연 프로그램 ‘위기 시대의 경제학, 사회적경제’는 이달 27일까지 총 10회 연속 방송된다. 매주 월~금요일 오전 5시 30분 EBS 1TV, 오후 10시 20분 EBS 2TV에서 전파를 탄다. 온라인 ‘CLASS e’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