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시장 기름떡볶이&튀김

한동안 따뜻한 날씨가 계속 되더니 어느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추위로 몸이 움츠려 들면서 입맛이 예전같지 않고 맵고 기름진 음식이 식욕을 자극한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맛이 더해진다는 통인시장 기름 떡볶이. 신당동 떡볶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떡볶이 ‘원조’싸움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양대 산맥으로, 한국전쟁 이후 등장한 통인시장 대표 길거리 음식을 찾았다.

달궈진 무쇠 솥 위에서 고추장 떡볶이를 만드는 장면

달궈진 무쇠 솥 위에 기름을 두르고 매운 양념을 버무려 놓은 떡볶이를 골고루 잘 볶는다. 떡볶이가 익어가는 냄새와 기름의 지글거리는 소리에 미리부터 입안에 군침이 돈다.

간장 떡볶이와 고추장 떡볶이 각각 3천 원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다. 첫 맛은 단맛을 뺀 양념의 밋밋함과 기름의 느끼함 때문에 별다른 호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쫄깃한 떡과 기름이 점점 섞이면서 맛은 고소해지고 점점 달아진다.

50년 통인시장과 함께 해온 기름떡볶이

간장 떡볶이를 선택했다면 은은하게 퍼지는 간장향의 짭쪼름한 냄새가 솥단지에 눌러붙어 바삭해진 떡과 어울려 깊은 맛을 낸다. 고추장떡볶이는 톡 쏘는 독특한 맛이 있다. 칼칼한 고춧가루와 고추장이 적절한 비율로 섞여 기름의 느끼함을 반감한다.

효자동옛날떡볶이 정월선(65) 대표.문의) 02- 735 ? 7289
눈앞에서 기름이 자글자글 익는 모습이 식감을 더한다. 콧잔등이 시려울 정도로 추운 11월 21일 오후, 따뜻한 녹차를 내주며 매운 불판 위에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는 정월선(65)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부터 시장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옛날부터 여기에 장이 있었어."

통인시장이 등록시장으로 인가를 받은 것은 10년이 채 되지 않지만 시장이 이 자리에 있었던 역사는 그보다 50년도 더 된다. 시장 상인들도 정확한 시장의 나이를 잘 알지 못할 만큼 늘 장이 서있던 곳이다.

"요 뒤로 길 뚫린 게 다야."

시장 자체의 모습이나 주변 건물들의 모습도 거의 바뀐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옛 동네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통인시장과 기름 떡볶이는 역사를 같이 한다. 예전 통인 시장은 지금처럼 일자로 뻗은 개방식 형태의 시장이 아니라 따로 정해진 출구가 없는 골목 시장이었다. 그 골목마다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연탄불로 떡을 볶으며 출출한 사람들의 요깃거리를 만들었다.

정 대표는 남편의 빚 보증으로 힘들어지면서 일자리를 위해 시장을 찾았다. 평소 즐겨 찾던 기름 떡볶이집 할머니가 사정을 듣고는 요리법과 장사법을 가르쳐줘 장사를 시작했다.

그 이후, 26년. 기름 떡볶이 할머니들이 하나, 둘 돌아가시고 젊은 사람들이 떡볶이 집을 내기 시작하며 인근 동네로도 기름 떡볶이가 퍼져나갔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맛이 점점 바뀌고 기름 떡볶이의 인기도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포장마차 떡볶이의 자박한 국물 떡볶이가 흥행을 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7개의 가게도 하나, 둘 손을 뗐다. 현재는 원조 할매 기름 떡볶이와 원조 효자동 기름 떡볶이만이 명맥을 유지한다.

문화 예술 마케팅, 진짜 승부수는 시장표 '수다'

입맛뿐 아니라, 통인시장을 찾는 사람의 수가 적어지는 것도 문제다. 통인시장도 손님 유치를 위해 고민 중이다. 때문에?통인시장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살려,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11년 3월부터 시작된?‘통인시장의 발견 프로젝트’가 있다.?통인시장만의 문화 콘텐츠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업이다. 그밖에 다양한 시도가 계속 되고 있는데, 시장 라디오 ‘사랑해요 통인씨’, ‘시장학교’를 통한 서비스 교육, 그리고 ‘꿈보다 해몽 공작소’ 상인 전시회도 통인시장 발견에 힘을 싣는다.

“서울예고 학생들이 와서 등 바꾸고 요거 저거(장식물들) 바꿔 준거야.”

정 대표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메주처럼 동앗줄을 두른 ‘떡볶이 단지’다. 몽땅한 떡볶이들이 빨갛게 노랗게 색을 입은 채, 먹기 좋은 크기로 통 안에 쌓여 있다. 이 집만이 아니다. 시장 입구에 있는 횟집의 인어공주 초상화부터 한약방의 뽀빠이 엄마 캐릭터까지. 가게마다 특성을 잘 내타내는 조형물들이 상품과 잘 어울려 시장을 꾸미고 있다.

효자동옛날떡볶이집에서 부치는 녹두 빈대떡, 1장에 5천 원

하지만 통인시장의 진짜 승부수는 ‘수다’에 있다. 상인과 고객이 이야기를 통해 단골관계를 만들 수 있다. 간단한 녹두전을 지지면서, 떡볶이를 볶으면서, 강원도에서 아기 아빠가 절임 배추를 혼자서 만들어 온 얘기부터, 아들이 군대를 전역한다는 얘기까지. 녹두전을 포장해 가다가, 미용실에서 다녀오다가. 한번 시작된 담소는 끝없이 이어진다.

“이승연 씨(배우)가 와서 포장해갔다고. 저집에서는 저집에서 왔다고 그랴, 이집에서는 이집에 왔다고 그러구. 그냥 통인시장에 온거지 머.”

아케이드로 덮인 길이 약 200m의 통인시장 골목에는 농산물과 반찬, 생활 잡화 등의 가게가 모두 76 점포 정도 정렬되어있다. 대략 1931년부터 상인들이 모여 시장이 형성되어 지금까지 지역 주민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책임지고 있다.

지하철 7 호선 경복궁역에서 도보 7분거리이며, 한옥집들이 늘어선 조용한 주택가로, 서울 중심에 위치해 있다. 부부나 가족이 경영하는 집이 많아 친절하고 친근한 상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 기름 떡볶이와 문화, 그리고 수다가 어우러진 통인시장이다.

7호선 경복궁역에서 7분 남짓 거리에 있는 통인시장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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