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남성 A입니다. 이기적인 여자와 결혼해서 제 인생이 망가진 것 같습니다. 

아내는 젊은 시절부터 아들 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군에 입대한 아들이 걱정된다면서 훈련소 가까운 곳에 원룸을 얻어놓고 거기서 생활합니다. 저는 일주일 중 단 하루도 쉴 수가 없습니다. 주중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어머니 댁에서 간병을 합니다. 8년째 병석에 누워계시는 어머니의 식사를 챙기고 오물 묻은 옷과 침구를 세탁하다보면 잠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따뜻한 가정에서 쉬거나 위로 받은 기억은 없고 늘 가족들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쏟아붓다보니 제 인생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허무합니다. 어머니를 나 몰라라 하는 형제들, 며느리의 의무는 저버리고 아들한테만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아내, 치매로 몸과 마음을 다 놓아버린 어머니가 큰 짐으로 느껴집니다. 

50대 중반을 넘기니 제 건강도 젊은 시절과 같지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저는 왜 이런지 한심합니다. 구질구질한 가정사를 어디 이야기 할 수도 없어서 혼자 삭이다가 가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제 자신이 두렵습니다. 며느리의 의무를 저버리고 아들만 찾는 제 아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혼자서 너무 많은 일을 맡고 계시는군요. 단 하루도 쉴 수가 없다니 얼마나 힘드실지 짐작이 됩니다.  말씀 하셨듯이 이런 집안 이야기는 드러내놓고 의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남성들은 더 힘들어하지요. 어려운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A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산소마스크 착용법이 떠올랐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반드시 안내를 받는 내용인데 혹시 기억이 나시나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 승무원이 시범을 보이면서 설명을 했는데 저는 교육 내용이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반드시 노약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긴 줄 끝에서 오래 순서를 기다려야할 때, 위험 지역에서 탈출할 때 노약자가 우선순위인 것은 문명사회의 당연한 질서였습니다. 그러나 산소마스크 착용 순서는 제 상식과 달랐습니다. 건강한 성인이 먼저 착용하고 어린이나 노약자를 돕는 것이 순서입니다.  

기내에서 산소마스크가 필요한 비상 상황이 되면 부모나 보호자는 본능적으로 아이에게 먼저 씌워주고 싶겠지만 이런 행동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답니다. 항공기에 문제가 생겨서 기압이 갑자기 낮아지면 사람들은 수 십초 만에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건강한 성인이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뒤에 노약자를 챙기는 것이 옳은 순서입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산소마스크가 필요한 사람은 A선생님입니다. 우선 본인의 마음과 몸을 살피고 적절한 조치를 하시기를 권합니다. 그런 후에 부인과 아들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서 필요한 일들을 하시는 것이 순서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등산을 갔다가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넘어지면서 바위에 무릎을 세게 부딪혔지요.  이 정도로 아픈 걸로 봐서는 바지가 찢어졌겠다! 생각하면서 흙을 털어냈더니 바지는 멀쩡했습니다. “안 다쳐서 다행이다“ 안심했지요. 그날 저녁에 옷을 갈아입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낮에 바위에 부딪혔던 무릎에서 피가 많이 나서 피부와 바지가 들러붙은 상태였습니다. 요즘 등산용 바지는 특수한 소재를 사용해서 튼튼하다더니 실제로 그랬습니다. 무릎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도 바지는 멀쩡해서 오히려 상처를 키웁니다. 아프고 힘들 때는 자기 상태를 잘 파악하고 쉬거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걸 몰라서 낫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A선생님께 두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일단 병원에 가셔서 선생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점검 해보세요. 선생님 상태에 대한 진단과 치료 그리고 대면 상담을 통해서 자신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도울 겁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두 번 언급하신 “며느리의 의무”에 대해서 조금 더 폭넓게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사람의 생로병사를 전적으로 가족이 책임지던 시대를 지나 지금은 공공의 영역에서 그 의무를 많이 분담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답을 명확하게 정해두면 편리하지만 그것이 정답이 아닐 경우에는 이미 정해 놓은 답 때문에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부양의 의무에 대해서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마음과 몸이 지금보다 조금 더 편안해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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