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rt style="green"]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를 보면 아메리카 인디언인 체로키족의 추장 ‘구르는 천둥’의 얘기가 나옵니다. “대지는 지금 병들어 있다. 인간들이 대지를 너무도 잘못 대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많은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머지않아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시도로 크게 몸을 뒤흔들 것이다.” “지구는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다…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 상처를 주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며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가하는 것은 곧 지구에게 상처를 가하는 일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구와 나의 문제를 별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구를 함부로 다루고도 내게는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는 무책임한 ‘낙관주의’에 빠져있었습니다. 하지만 둔감한 우리들도 이젠 지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지구와 내가 하나의 공동 운명체임을 자각해야 할 때입니다. [/alert]

나무심기편

미운 감나무, 백조로 변신하다

지난 겨울 서울 북한산 자락 우이동을 떠나 경기도 고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을 찾고 찾아 몇 년 만에 구한 집이었습니다.

이사를 와서 보니 한 겨울 속 벌거벗은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더군요. 무슨 나무인지도 몰랐습니다. 봄이 왔건만 여전히 나무는 그저 황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봄기운이 자욱해지면서 집 앞 공원이며 이웃집에 벚꽃, 목련들이 흰 눈송이처럼 화사하게 피어났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 나무는 4월 중순이 되어서도 여전히 꽃은커녕 나뭇잎조차 채 나오지 않았습니다.

꽃나무를 기대했는데 결국 감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쉬움이 컸습니다. 감을 썩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사과나무나 복숭아나무처럼 꽃이 향기롭고 아름답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감잎들이 점차 초록으로 짙어갈 무렵 약간씩 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는 꽃나무가 아니면 어때! 그래도 괜찮아'라고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주워들은 몇 가지 상식들을 활용해보았습니다. 밥 지을 때 나오는 쌀뜨물을 버리지 않고 나무에게 주었고, 음식물 남은 것이나 과일이나 야채 껍질을 모아다가 나무 위에 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음식물은 가급적 남기지 않으려고 하지만, 아주 가끔씩 남길 때가 있습니다. 그걸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모아 버릴 때까지는 약 열흘이 걸립니다. 그러는 동안 그 봉투 주변에서 나오는 각종 썩은 냄새는 늘 골칫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때그때 나무 위에 음식물 찌꺼기를 뿌리니 저절로 햇볕과 바람에 말라 냄새도 나지 않고, 점차 까만 퇴비가 되었습니다. 쓰레기봉투 값 아끼고, 냄새 안 나고, 퇴비까지 되니 1석 3조였습니다.

어느 날 나무를 보니 작은 감 모양의 초록 열매가 송이송이 나뭇가지에 올라오고 있더군요. 그것이 조금씩 자라날 때마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처럼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번은 농사짓는 어르신이 우리 집에 놀러왔다가 "약을 치지 않으면 감이 거의 다 떨어질 텐데" 걱정을 했습니다. 요즘 시골에서는 감에 약을 치지 않으면 감이 채 다 익기도 전에 거의 다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웃 사람도 지난해 우리 집 감나무에 병이 들어 열매가 맺기 전에 다 떨어져 감을 거의 먹지 못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어차피 감을 팔기 위해 기르는 것도 아닌데, 다 떨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농약이나 화학비료 등 일체의 인공적인 방법은 쓰지 않았습니다.

올해 봄엔 기록적인 가뭄을 기록하며 비가 거의 오지 않았습니다. 나무들이 바짝바짝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앞산의 나무들이 '링거'에 의존해야할 정도로 혹독한 가뭄이었습니다. 나무가 죽지 않을까 이따금 물을 주기도 했지만, 아직 익지 않은 감들이 못 견디고 하나씩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7월 장마가 시작되고 비가 와주어 다행히 나무는 죽지 않고 겨우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연이어 불어댔던 초대형 태풍들로 나무의 수난은 끝이 없었습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감도 제법 떨어졌죠.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봄과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다 익지 못한 채 떨어진 감들이 제법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나무에 감들이 주렁주렁 푸짐하게 열렸습니다. 농약과 화학비료 한 번 주지 않았는데도 온갖 시련을 다 겪어낸 덕으로 단단하고 싱싱합니다. 요즘은 과일을 돈 주고 사먹지 않아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나무들은 동물로 말하면 개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주인에게 충직하고 배신할 줄 모르는 신뢰감이 가는 친구 말이죠. 우리는 나무들에게 무한 혜택을 받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집, 땔감, 가구 등 실용품을 비롯해 숨을 쉴 수 있게 만드는 양질의 산소, 수많은 먹을거리를 나무에게서 얻어내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산이나 숲을 찾아 치유하는 힐링(healing)효과는 또 어떻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동화처럼 그 많은 혜택에도 여전히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데는 나무를 너무 많이 베어낸 탓이 가장 큽니다. 아파트나 공장을 짓기 위해, 골프장 등 위락시설을 짓기 위해, 소 방목지를 만들기 위해 즉 개발과 쾌락을 위해 너무 많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숲을 파괴한 대가입니다.

이제라도 집 앞에 나무 한 그루를 더 심고, 나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스피노자가 말했나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노라"고.

(*편집자주 : 이 칼럼은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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