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한 뇌성마비 피아니스트 김경민씨가 월광소나타 1악장을 연주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클라리넷 연주자 이상재 교수는 시각장애인이다. /사진= 백선기 

 

“아무리 노력해도 주먹으로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뇌성마비는 연주를 할 수가 없어요.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 제 인생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1악장을 멋들어지게 연주한 피아니스트 김경민 씨는 관객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세계 유일한 뇌성마비 피아니스트다. 어렸을 때는 장애가 심해 스스로 앉지도 걷지도 못했다. 지금은 두발로 우뚝 서고 걷는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당시 걸을 수는 있게 됐지만 손가락만큼은 여전히 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먹으로 쳤다. 굽어진 손가락을 펴기 위해 그는 손가락 사이로 연필이나 숟가락을 억지로 끼워 넣고 건반을 두드렸다. 그렇게 3년을 두드리니 손가락이 모두 펴졌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노력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보통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이룰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힘차게 내일을 준비한다면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곡 ‘희망’을 더 들려줬다. 지난달 31일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에서 열린 소셜 포럼 ‘다양성과 포용을 향하여 2’의 마지막 순서로 진행된 음악회 현장 상황이다. 

아름다운 음악회(Beautiful Concert)라는 이름이 부쳐진 그날 연주회는 사단법인 뷰티플마인드(BeautifulMind)가 맡았다. 뷰티플마인드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전 세계의 소외된 이웃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는 문화외교 자선단체다.

김경민 씨는 뷰티풀마인드와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연주를 한다. 지난 2012년 런던대학교에서 열린 런던장애인올림픽 기념연주를 비롯해 2014년에는 뉴욕 UN 본부의 무대에도 섰다. 한 –요르단, 한-라오스 등 전 세계 수교 기념 공연 연주회에는 60회 넘게 참석했다. 

사회를 맡은 뷰티풀마인드 총괄이사인 배일환 이화여대 교수는 “ 아무리 유명한 대가의 연주를 들어도 이런 감동은 안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악회에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상징하는 또 한 인물이 등장했다. 클라리넷 연주를 맡은 이상재 나사렛 대학교수다. 그는 세계에서 유일한 시각장애인 음대 교수다.

“ 7살 때 교통사고를 입고 수술을 9번 했습니다. 하지만 다 실패했어요. 결국 10살이 되는 해 2월 마지막 수술을 끝으로 시신경이 없어져 빛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됐습니다.”


이 교수는 비록 앞을 볼 순 없었지만 클라리넷이란 악기를 들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피바디 음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세계에서 유일한 음대 교수가 됐다. 그 역시 뷰티풀마인드랑 10년 넘게 전 세계 30개국을 돌며 연주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 교수가 선택한 곡 중 하나는 조지 거쉰(G. gershwin)이 작곡한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에 나오는 아리아 ‘늘 그런 것 만은 아니다 (It ain’t necessarily so)’였다. 연주에 앞서 그는 선곡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가 조금 힘들고 어렵고, 때론 적응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미래는 더 밝고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고 희망찬 일들이 많을 겁니다.”

그날의 음악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점차 확산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는 참석을 꺼리는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연주자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관객들의 가슴에 와 콕콕 박혔다.

전염병으로 국경이 폐쇄되고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면서 지구촌은 요즘 세계화의 어두운 면을 온몸으로 감내해가고 있다. 인간의 기본권인 재산권과 건강권이 위협받으면서 사람들은 날로 예민해져간다. 

이 틈새를 비집고 사재기나 인종차별, 배타성과 같은 해묵은 과제들이 고개를 불쑥불쑥 내민다. 이럴 때 우리가 곁에 두어야 할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그날의 음악회가 보여준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공동체 의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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