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숙의 화톳불 옆 소소담담] 6. 내 안의 낯선 나
[윤명숙의 화톳불 옆 소소담담] 6. 내 안의 낯선 나
  • 이로운넷=윤명숙 시니어 작가
  • 승인 2020.02.03 0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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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 밤중에 뒷간 가는 것 말고는 딱히 무서움을 타는 게 없는 아이였다. 자라는 내내 추리소설이나 공포 영화를 즐겨 보았고, 실제에서도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 들어 별거 아닌 일로 잘 놀랜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익숙하지 않은 환경 때문일 거라고 이해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빈번해지니 납득이 안 된다. 왜 늦은 나이에 내게 놀랄 일이 일어나는가? 왜 갑자기 헛것이 여기저기서 출몰하는가?

하루는 새벽에 화장실 가려고 방문을 열었다가 기절할 뻔했다. 희뿌연 어둠 속에서 중절모를 쓴 시커먼 사람이 바로 눈앞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억” 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 밝혀진 그 정체는 하필 그날 1.5m 코앞 정면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어놓은 남편의 검은색 외투와 모자였다.

/윤명숙
/윤명숙

한밤중에 일어나 비몽사몽 화장실로 가다가 내 그림자가 만들어낸 헛것과 마주치고 놀라기를 반복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잠결에 커튼 사이로 어둠을 비집고 들어와 벽에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도로의 자동차 불빛을 보고 영화에서나 봤던 서양 귀신이 지나간다고 등골이 서늘해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무서운 것 없다고 큰소리치던 내가 헛것 보고 놀라 자빠질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금의 새집으로 이사 오기 전 우리 부부는 고층 아파트의 29층에 살았다. 뒤로는 나지막한 매봉산이 병풍처럼 아늑하게 감싸고 앞으로는 남산과 관악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좋은 곳이었다. 통유리 외장에 방마다 설치된 베란다가 자랑거리였지만 나는 확장공사를 한다고 그 멀쩡한 베란다를 죄 뜯어내고 유리 벽에 이중창을 설치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는 실내공간이 네모반듯하기 마련이지만 이 아파트는 한 층에 평수가 다른 네 가구가 소위 ‘타워형'이라는 구조로 배치되어 있어 우리 집의 경우 방과 거실의 한쪽 벽이 사선으로 잘려져 있었다. 이중창을 설치할 때 그 삐딱한 벽면을 반듯하게 잡으려다 보니 유리 벽과 이중창 사이에 삼각형의 쓸모없는 작은 공간이 생겼다.

가뭄과 함께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된 7월의 어느 날, 평소처럼 남편은 오전 10시쯤 작업실로 나갔고 나는 미뤄왔던 대청소를 시작했다. 이중창 안쪽의 얼룩을 닦으려고 자투리 공간의 창틀에 선뜻 올라선 나는 유리 벽에 등을 대고 걸레 든 왼팔을 길게 뻗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하며 팔을 늘이는데, 이중창 손잡이를 잡고 있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 그만 문이 밀렸고, 철컥 닫혀 버렸다. 손잡이를 돌려보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중창은 보안상 안쪽에서만 열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좁은 틈에 나는 옴짝달싹 못 하게 끼어버렸다.

핸드폰은 수중에 없고 남편도 방금 나갔으니 적어도 9시간은 나를 구하러 올 사람이 없는 셈이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아파트 정원을 내려다보니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입구에 경비실이 보이고, 소독 장비를 둘러매고 정원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는 정원사들도 보였다. 순간 속이 울렁울렁 메스꺼웠다. 머릿속도 하얘졌다. 그때 한줄기 상큼한 바람이 불어와 달궈진 내 얼굴을 식혀주었다. 그나마 등 뒤 외벽에 20도 각도로 들려 열린 창문이 있으니 최악은 아니라고 자신을 달래보았다.

달리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 나는 들고 있던 걸레로 창문의 얼룩을 마저 닦았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어 옆집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들릴 리 만무하였다. 팔을 뒤로 꺾어 노란 걸레를 창밖으로 흔들어도 보았다. 순간 섬뜩한 상상이 되었다. 걸레를 잘못 놓치면 그나마 내게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얼결에 팔을 거두어들이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다시 단단히 움켜쥔 그 걸레를 창밖으로 내다 흔들다가 팔이 아프면 다시 거두어들이기를 반복했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나의 구조신호를 알아챈 사람이 있었다. 까마득히 높은 창문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노란 점이 정원사의 눈에 띈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한 정원사가 아파트 보안요원에게 말을 전했고, 경비원들이 대략의 위치를 가늠해 28층부터 30층까지 인터폰으로 일일이 각 집에 확인했다. 우리 집에서만 아무 반응이 없었단다. 앞 동에 사는 며느리한테 연락이 갔고, 며느리가 내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창문의 잠금장치를 풀기까지 정확히 1시간 40분이 걸렸다.

쓰러질 것을 대비해서 들이댄 경비원의 등을 가볍게 밀치고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린 나는 땀을 좀 흘렸던가? 며느리가 내 입에 냉수 한 컵을 들이댔다. 며느리와 경비원이 한숨 돌리며 돌아간 다음에야 나는 잠시 쉴 요량으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마우스가 작동하지를 않았다. ‘왜 안 되지?’ 먹통인 마우스를 연신 흔들며 투덜대다가 일어나 시계를 봤는데, 이상하게도 그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잠깐이었던 것 같은데 서너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혼란스러운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잠시 나갔다가 현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한참을 집 밖에 우두커니 서 있기도 했고, 자기 전에 늘 보던 TV 드라마 스토리가 생각나지 않기도 했다. 계속해서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고 위가 울렁거렸다.

이중창에 갇힌 그 순간부터 무언가가 멈춘 듯했다. 샤워하고, 남편의 작업실에 가서 보수공사 과정에 참견하고, 밥을 사 먹고, 운전해서 집에 오는 것 같은 행동은 몸이 알아서 습관적으로 해냈지만, 내 의식은 창틈에 갇힌 채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2시간 가까이 갇혀 있었지만 내가 체감한 시간은 10분 정도였다. 도대체 거기서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창에 끼어 노란색 걸레를 흔들고 있었을 때 사실 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다음날 정신이 들고 보니 기억나는 장면이 있었다. 어린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집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갈수록 길은 좁아지고 옆을 보니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최근 기억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아주 생생한 장면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힘든 상황에 맞닥뜨리면 피하거나 포기하거나 직시한다. 하지만 목숨이 오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이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가 보다. 옴짝달싹 못 하는 공간에서 오직 시간과 사투를 벌여야 했을 때, 내 뇌가 선택한 방법은 백일몽이었다. 상황을 비현실적으로 느껴서라도 그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뇌가 내 정신을 다른 세상으로 피난을 보낸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헛것을 보기 시작하는 것도 죽음이라는 위협과 관계가 있으려나? 심리학을 공부한 딸에게 요즘 헛것이 보인다고 했더니 그건 노란 걸레 사건과 상관없는 노화의 과정인 것 같다고 말한다. 논리적 판단과 추론 과정에 전력했던 전두엽이 약해지자 그 약해진 마음에 이미지로 쉽게 연상되는 것들이 따라붙는 것 아니겠냐고 전문가답게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좀 무섭다.

근래에 우리 부부는 CT 촬영을 하고 왔다. 깜박깜박 건망증도 심하고, 헛것도 보이고, 망령들 나이도 되었으니 머릿속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내심 궁금했던 터이다. 의사의 진단은 간단했다. 남편은 객관적 인지장애, 나는 주관적 인지장애가 진행 중이란다. 간단히 말해, 남편은 남이 보기에도 조금  이상하고, 난 멀쩡한데 스스로 이상하다고 안달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고 모르겠다. 백일몽에 익숙해지고 허깨비와 친하다 보면 이럭저럭 노년이 끝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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