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지자체에서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민간 전문가들과 담당 공무원이 10차례 이상 포럼 및 워크샵을 거쳐 사회적경제 정책을 만들어가고 있다. 교통운수, 지역통합돌봄, 아동 돌봄, 사회주택, 소상공인 분야에서 도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가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경제 정책 실행 단계에서 직면하는 문제는 결국 금융이다. 일정 수준의 지자체의 보조가 있다 해도 사회적경제조직이 출자나 금융기관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엔 어려움이 따르게 때문이다.

교통운수 분과는 수많은 택시노동자들의 문제에 집중한다. 올해부터 전면 시행되는 전액관리제로 사업주의 수익률 감소가 예상돼 사업을 중단하려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전액관리제란 택시기사가 벌어들인 수입 중 일정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나머지 돈을 가져가는 사납금제를 대신해, 수입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월급을 받아 가는 제도다.

이에 택시회사 노동자들은 사업주로부터 택시회사를 인수하고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해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고자 한다. 24시간 돌아가는 법인택시의 수익률이 떨어지는 주원인은 가동률이기 때문에, 회사의 소유주가 되는 택시노동자들이 일정규모 이상 확보되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예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수시점에 조합원들이 100% 모집되기란 쉽지 않고, 조합원들이 2,000~2,500만 원의 출자금을 일시납입해 회사 인수자금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택시노동자들이 회사를 먼저 인수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에 단기간 대출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충분한 출자금이 없는 택시노동자들에게 장기간 개인대출을 해줄 수 있는 금융기관도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의 금융기관들은 부분적으로만 위험을 감내하기 때문에 사업을 추진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지역통합돌봄 분과에서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생협,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자활기업 등 여러 사회적경제 주체가 참여하는 커뮤니티케어 복합타운을 구상하고 있다. 그곳에는 의료기관, 주야간보호센터, 주민건강센터, 커뮤니티 공간 등이 어우러져 있어, 도민들은 격리된 요양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노후를 보내게 될 수 있다. 하지만 타운을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적경제조직은 자본조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초기 건물 매입, 인테리어 등을 위해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기가 버겁다.

아동돌봄 분과에서는 ‘유치원 비리’ 사태 이후 사립유치원의 무단폐원에 맞서 공익형 대안 보육·교육시설로 협동조합형 유치원이 논의되고 있다. 국가·지자체·공공기관 시설을 임차해 유치원을 설립할 수 있긴 하나, 임대보증금, 시설 리모델링을 위해 설립 초기에 부모 및 교사들이 출자금을 모이기는 어렵다. 이에 대응하는 ‘다함께돌봄센터’는 시에서 공공시설이나 공동주택 커뮤니티센터 등 유휴공간을 활용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생에게 돌봄과 독서·숙제지도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지역 내 사회적협동조합이 이를 위탁받기 위해서는 5년간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데 출자금만으로 초기 자금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유아부터 초등 방과 후 돌봄까지 사회적경제조직이 공공성을 강화하면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지지해주는 금융이 필요하다.

사회주택 분과에서는 사회주택 공급 확대방안을 고민 중이다.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사회주택사업자들은 주거취약계층에게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예를 들어 80%)를 받으면서 최장 장기간(예를 들어 10년) 안정적인 거주공간을 제공한다. 공공이 제공하는 주택이기 때문에 갖춰야 하는 요건이 까다로워 인테리어 비용도 많이 든다. 임대료 상승도 일정 수준(예를 들어 5%)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그 대가로 공공이 일정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나,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규모를 키워 운영하지 않는 이상 참으로 힘든 사업이다. 사회주택이 원활하게 보급되기 위해서는 사회주택사업자들에게 10년 이상 장기간 저리로 대출해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일반금융에서는 위험이 높다고 외면하기 일쑤다.

소상공인 분과에서는 프랜차이즈협동조합을 확산해 자영업자들에게 비빌 언덕을 마련하고자 한다. 기존 프랜차이즈의 문제는 본사의 단기적 이익추구로 인한 가맹점의 피해와 불평등한 갑을관계로 종사자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데 있다. 반면, 협동조합 방식으로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면 본사 점주와 가맹점 구분 없이 모두가 회사의 주인이 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가맹점주들은 매장을 설립할 때부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역시 이들의 가치를 이해해줄 금융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좋은 사회적경제 정책들이 만들어져도 사회적금융이 뒷받침할 수 없다면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커뮤니티케어 복합타운이 만들어가는 따뜻한 노후와 협동조합 유치원·어린이집이 만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소중하다. 택시노동자과 프랜차이즈협동조합이 새로운 방식으로 잘못된 업계 관행을 고치고 스스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노력은 거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대도시 청년 주거 빈곤을 사회주택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에겐 이런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수 있는 금융이 필요하다. 이는 사회적경제조직, 사회적금융기관, 지자체 모두의 상호 신뢰 속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모쪼록 이번 사회적경제 정책추진단의 긴 여정이 사회적금융 분과에서 꽃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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