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기와 거주하기> 표지. /사진=김영사

『짓기와 거주하기』는 저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의 오랜 작업인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의 완결편이다. 세넷은 미국 뉴욕대학교와 영국의 런던정경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노동과 도시화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에서 세넷은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스스로 삶을 만드는 존재인 인간(호모 파베르)이 개인적 노력, 사회적 관계,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설명한다.

세넷은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기술이 현대사회에서 마땅한 대접을 못 받고 있음을 설파한 『장인』에 이어, 『투게더』에서는 실제로 일을 하는데 필요한 기술인 협력에 주목해 사회적 협력을 강화할 방법을 제안했다. 이 책은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의 3번째이자 마지막 책으로, 문명의 물리적 환경인 도시와 호모 파베르의 관계를 탐구한다.

책은 고대 아테네에서 21세기 상하이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도시에 대해 사유한다. 파리, 바르셀로나, 뉴욕이 어떻게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됐는지를 돌아보며 제인 제이콥스·하이데거·발터 벤야민·한나 아렌트 등 주요 사상가의 생각을 살펴본다. 또한, 남미 콜롬비아 메데인의 뒷골목에서 뉴욕의 구글 사옥, 한국의 송도에 이르는 상징적 장소를 돌아다니며 물리적인 도시가 사람들의 일상 경험을 얼마나 풍부하게 하고 사회적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지, 혹은 그 반대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과거 프랑스어에서 ‘도시’의 의미는 ‘빌(ville)’과 ‘시테(cité)’라는 단어로 구분됐다. 전자는 물리적 장소로서 ‘지어진 것(the built)’을, 후자는 지각·행동·신념으로 편집된 정신적 도시로서 ‘사는 것(the lived)’을 의미했다. 세넷은 “19세기 도시 제작자들은 이 둘을 연결하려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20세기에는 시테와 빌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는 방식으로 도시 만들기가 진행돼 도시는 내적으로 빗장 공동체(gated community)가 됐다”고 설명한다. 빗장 공동체란 출입구가 있고 차량과 보행자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주택단지로, 중상층 이상이 주로 거주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도시는 수십 개의 언어를 쓰는 다양한 성분의 이주자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비틀려 있다. 또 그 속의 불평등성이 너무나 확연하기 때문에 비틀려 있다. 날씬하고 세련된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하는 장소에서 바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지친 청소부가 있고, 젊은 졸업생 수는 너무 많은데 일자리 수는 너무 적다. 물리적 빌(ville)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도로를 보행자 전용으로 만들려는 계획이 주택 위기를 감소시킬 수 있을까? 건물에 강화 단열 유리를 사용하면 사람들이 이민자들에게 더 관대해질까? 도시는 시테와 빌이 비대칭성이라는 고난을 겪는다는 점에서 비틀려 있는 것 같다.”(10-11쪽)

세넷은 빌과 시테 사이의 균열이 ▲도시의 팽창, 고속 성장 ▲타자의 배제 ▲테크놀로지 이슈 등 3가지 이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다. 과거 '한강의 기적'이 그랬던 것처럼, 시민의식보다 도시가 빨리 성장하면 결국 몸살을 겪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종교적, 인종적, 계급적으로 타자를 분리시킨다. 이를 기술로 해결하고자 만든 송도 같은 스마트시티는 빈틈없는 설계로 균형만을 추구하기 떄문에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정태적인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세넷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에게 ‘열린 도시’를 제안한다.

2018년 기준 한국의 도시지역 인구 비중은 92%에 이른다. 세계적으로도 인구 절반이 넘는 55%이 도시에 거주하며, 이는 계속 증가해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 10명 중 7명이 도시에 살 것으로 예상된다. 분리와 차별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열린 도시’로 향해야 하는 이유다. 열린 도시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고 받아들이며, 기후 위기 같은 위협과 불확실성에 맞서서도 더 잘 회복할 수 있다.

짓기와 거주하기(도시를 위한 윤리)=리처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김영사 펴냄, 512쪽/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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