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성 서울광역자활센터장이 지난 8월 17일(금) 서울 지역에서 유일한 인쇄사업단인 <디자인 스페이스(송파지역자활센터)>에 들러서 정문수 송파지역자활센터장과 김윤호 팀장, 참여자분들을 만났습니다.

< 디자인 스페이스> 사무실에서 : 좌로부터 서현숙, 김윤호 팀장, 이종헌 사업단대표, 정문수 센터장, 이용득, 천명희 참여주민

정호성 서울광역자활센터장(이하 '정) : <디자인 스페이스>는 언제 시작했나요?
정문수 송파지역자활센터장(이하 정문수) : 올 2월 22일에 시작했습니다.

정 : 인쇄사업단은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정문수 : 송파지역자활센터는 인큐베이터사업을 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사업공모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업을 하면 좋을지 계획서를 내라고 했죠. 그 때 지금의 이종헌 디자인 스페이스 대표께서 인쇄사업단 계획서를 내셨는데, 처음에는 뭐 사업단이 되겠느냐고 그냥 접었죠. 그런데 이 대표께서 와서 면담신청을 했고, 이 대표의 인쇄ㆍ기획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죠. 그 후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 정도의 기술과 경험이 있다면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 받아들였죠. 마침 옆에 있던 천명희 씨도 풍부한 경력이 있으니 같이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됐지요.

정 : 이 대표님께서는 인쇄사업단에 대한 비전을 어떻게 가지셨나요?
이종헌 대표(이하 '이') : 인쇄사업이란 자본이 별로 없어도 인력자원과 노하우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클라이언트(고객)와 또 인쇄소를 연계해주는 일을 하면 되거든요. 그리고 GNP가 높을수록 인쇄할 일은 더 늘어나기 마련이거든요.

<디자인 스페이스>에서 기획하여 만든 송파소식(점자책)
정 :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교재도 있는 것 같던데요? 직접 점자교재도 인쇄하시나요?
이 : 저희가 그런 시설을 갖춘 건 아니고요. 고객의 수주를 받아, 저희가 인쇄할 것을 인쇄소에 보냅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완성된 인쇄물을 가지고 책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들이 꽤 여러 개 됩니다. 매달 나오는 잡지들도 있고요.

정 : ‘인쇄사업단’ 이라 해서 직접 인쇄기를 들여놓고 하는 줄 알았어요. 아직 그건 아니군요?
이 : 인쇄기를 갖추려면 엄청난 돈이 들지요. 하다못해 마스터기를 장만하는데도 억 단위의 돈이 들고요, 센터에 요구도 해보았지만 사업비가 없어서 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주문을 받아 기획하고, 편집 작업을 해서 인쇄소에서 출력하고 인쇄를 하지요.

정 : 지금 인쇄사업단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몇 분이신가요?
이 : 처음 시작할 때는 네 분이었는데, 지금은 여섯 분이 일하고 있습니다.

정 : 여섯 분이 하시는 역할은 어떻게 되나요?
이 : 저를 포함해서 두 사람은 일감이 들어오면 찾아가 견적 및 제작 상담을 하고, 수주 시 기획을 하죠.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영업 및 홍보를 합니다.

<디자인 스페이스> 사업단에서 직접 참여자 교육용으로 만든 인쇄 기획 개론서
정 : 나머지 분들은 인쇄사업에 대한 교육을 어디서 좀 받으셨나요? 영업을 하더라도 좀 알아야 하실 거 아니겠어요.
이 : 우리 자체적으로 했지요. 시중에 인쇄에 관련된 서적도 드물고 해서 직접 교재도 만들었고요.

정 : 일감은 어떻게 확보하시나요?
이 : 센터장님께서 구청이나 지역 시각장애인복지관, 노인요양센터 등 사회복지단체에서 일감을 수주 받아주시는 경우도 있고요. 참여주민 분들이 아름아름 아는 분들 통해서 수주를 받아오기도 하고, 배포된 전단지를 보고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도 종종 있곤 해요.

정 : 그런데 다른 센터나 복지기관 등에서 이 곳 사업단을 통하면 더 비싸게 돈이 들거나 하는 일을 없을까요? (웃음)
이 : 다른 데보다 싸면 쌌지 비싸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자활에서 근무하다보니 봉사의 개념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거래처를 많이 확보해서 궁극적으로는 자활에서 독립하는 것입니다.

정 : 인쇄물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잖아요? 어느 것이나 다 하나요?
이 : 웬만한 것은 다 합니다. 판촉물도 가능하구요.

정 : 사업단을 꾸리신지 반년이 조금 지났는데, 지금까지 매출실적은 어느 정도 인가요?
이 : 한 1천 400만 원 정도는 했을 거예요.

정 : 자활사업에 참여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이 : 2년 정도 됐습니다.

정 : 대표님께서는 어떤 일들을 주로 해오셨나요?
이 :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군대에 갔다 와 국제상사에 들어갔지요. 그런데 부산 사상 범일동 국제화학에 배치를 시키는 거예요. 당시 프로스펙스 전신인 왕자표신발 등을 만드는 부서에서 디자인분야의 일을 했는데, 부하직원이 많을 때는 7백 명까지 데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 인쇄담당을 하면서 큰 실수를 했죠. 그 길로 그곳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광명인쇄라고 당시로서는 가장 큰 인쇄소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2년 정도 일을 배우고, 출판과 관련된 회사를 다니면서 일들을 했죠. 대한항공, 태평양화학 광고팀, 금성출판사 등이요.

정 : 그런데 어떻게 해서 자활에 오시게 됐나요?
이 : 출판에 자신이 생기다보니 은근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출판사를 차렸죠. 4년 정도 했는데 여기서 완전히 뒤집어졌어요. 설상가상으로 집사람마저 암에 걸리고, 이래저래 후유증으로 몇 년 어렵게 지내다가 자활에 오게 됐어요. 아내는?4년째 암 치료를 하고 있는데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정 : 대표님께서는 대학까지도 나오셨는데 자활에서는 드문 경우라 생각합니다. 자활에 오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이 : 자활사업은 중요한 일이고, 또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활이라는 게 쉽지는 않은 거 같아요. 자활은 개인의 열정이 성쇠를 가늠하는 것 같습니다.

정 : 앞으로 사업단의 포부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이 : 이곳에서는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거래처를 많이 확보하는 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자활을 졸업해야죠. 사회적기업 같은 것을 만들어서 받은 만큼 이제는 사회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alert style="white"] 정호성 서울광역자활센터장.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나 졸업 후 건설일용직, 식자재납품, 택시회사, 자동차정비공, 덤프트럭기사 등 20년 넘게 바닥으로 기었다. 지역운동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일자리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고 1997년 이후 자활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지역신문을 만들게 된 게 계기가 되어 글을 쓰게 되었고 <생산공동체운동><자활사업실무핸드북><노숙자자활을 위한 실무매뉴얼><집수리실무><자활사업종합보고서> 등 자활사업과 관련된 책을 여러 사람과 같이 썼다. [/al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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