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크리에이터’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스타 로컬 크리에이터가 떠오르면서 듣기 편하고 낙관적인 이야기만 나왔죠. 이제는 과연 로컬 크리에이터가 지속가능하게 성장하고 있는지, 이를 위해 투자자와 중간지원조직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시점입니다.”
지난 16일 강원도 강릉시 테라로사 커피뮤지엄에서 IFK임팩트금융의 주최로 열린 ‘로컬임팩트테이블 2020’ 현장.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의 일성이다.
이날 행사는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개념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어떻게 지역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로컬 크리에이터, 임팩트 투자사, 창조경제혁신센터, 공공기관 등 100명이 넘는 다양한 참가자들이 1박 2일 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주제별로 토의했다.
IFK임팩트금융은 지난해 9월 지방 청년 창업가 및 기업들을 위한 네트워킹 행사인 ‘서울 밖에서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공개 대잔치 <지방에서 왔습니다>'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당시 참여한 강릉 로컬 크리에이터 '더웨이브컴퍼니'(대표 김지우)가 주관했다. 테라로사에서 행사를 진행한 이유에 대해 김지우 대표는 "테라로사가 강릉 지역에서부터 성공한 브랜드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에 공헌하기 때문에 알맞다고 생각했고, 테라로사 측에서도 흔쾌히 수락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환경을 고려해 진행했다. 주최측은 사전에 참가자들에게 개인 컵과 필기구를 따로 제공하지 않으니 직접 들고 오라고 공지했다. 현수막은 아예 준비하지 않았으며, 장소 안내를 위한 최소한의 배너를 사용했다. 개요나 자료집 등은 인쇄물로 제공하지 않고 홈페이지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류인선 IFK임팩트금융 전략팀장은 "하루만 쓰고 버리는 것들인데, 환경을 해쳐가면서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더웨이브컴퍼니와 함께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간 기반, 초기 창업자 많고 자금 채널 부족하다
주관사 더웨이브컴퍼니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현황 조사 설문 결과를 내놨다. 로컬 크리에이터에 대한 전국적 조사으로는 처음이다. 김 대표는 “권역별, 업종별로 56명의 로컬 크리에이터의 목소리를 담아 당사자성에 주목했다”며 “로컬 크리에이터의 성장을 논의할 때 의미 있는 재료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설문 결과에 의하면 지금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대부분 기술, 공학보다는 예술, 디자인, 건축 분야에서의 경험이 많고, ‘지역성’을 띠는 만큼 공간을 기반으로 창업한 예가 다수다. 업체 사무실 외의 공간을 운영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61.8%에 달했다. 웹이나 애플리케이션 운영이 주요 서비스라 답한 응답자는 한 명도 없었다. 또한, 창업 준비 기간은 80%가 1년 미만이라 답했으며 응답자의 74.5%가 3년 미만의 초기 창업자였다.
재원 조달 방법에서는 투자금을 받는 비율이 낮다는 특징을 보였다. 초기 창업 자본금 평균은 약 3,104만 원으로, 창업자가 직접 조달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작년 기준 평균 임직원 수는 2.43명, 임직원 인당 매출액은 약 3,800만 원이었다. 참여자 중 연 최고 매출액은 7억 원이었다. 김 대표는 “매출액은 절대적 숫자로는 별로 높지 않은 편”이라며 “현장에 다양한 재원이 없거나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채널의 연결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투자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벤처캐피털을 들어본 적이 없는 로컬 크리에이터는 35.7%, 임팩트 투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로컬 크리에이터는 32.1%로 투자 생태계 기본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또한, 응답자들은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지방자치단체를 현재 지원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앞으로는 임팩트 투자사나 벤처캐피털, 액셀러레이터 등과도 연결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투자 정보 자체를 잘 몰라 향후 접점이 필요하다는 것. 김 대표는 “행사에 투자 생태계에서 20명 이상이, 로컬 크리에이터가 50명 이상이 참석했으므로 관련 논의를 잘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로컬 크리에이터와 임팩트, 무슨 상관인데?
더웨이브컴퍼니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20명은 자신들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35.7%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흔한 인식과 달리,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당사자들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전승범 임팩트스퀘어 투자총괄은 이날 ‘사회 문제,’ ‘사회적 가치,’ ‘소셜 임팩트’ 등의 의미를 정리했다. 임팩트 시장에서 ‘사회 문제’는 현저하게 다수가 구조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소수가 아닌 다수가 고통받고, 개인 노력으로는 해결이 불가하며, 해결하지 못하면 참기 어려운 정도의 문제다.
‘사회적 가치’는 사회 문제가 해결된 크기를 말하며 일반적인 효용 가치와는 구분된다. 전 투자총괄은 “통용되는 표현이라 막연하게 ‘좋은 것(something good)’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임팩트 시장에서는 문제가 해결된 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측정이 가능하다는 게 핵심이다.
‘소셜 임팩트’는 목표한 변화를 통해 만들고자 하는 영향력을 뜻한다. 전 투자총괄은 소셜 임팩트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한 활동이나 직접적인 결과가 아님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국어 점수가 또래 집단보다 10점 정도 낮은 게 사회 문제라면,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거쳐 아이들의 점수가 올랐을 때 아이들이 또래와 잘 어울리는 등 다른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나타난 게 소셜 임팩트다.
전 투자총괄은 “생각보다 많은 기업이 비즈니스로 임팩트를 추구하고 창출하는데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로컬 크리에이터도 마찬가지”라며 “의도하지 않았지만 임팩트를 창출한다는 걸 인지했을 때 소셜 임팩트 기업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되는 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돈과 연결되는 법
이날 로컬 크리에이터의 자금 조달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다. 대부분 투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김정태 MYSC 대표는 “일단 원하는 자금이 지원금인지, 대출금인지, 투자금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비즈니스 모델에 하는 것이므로, 모델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덧붙였다. 명확한 투자는 법인 형태에 할 수 있으므로 자영업인지 법인인지 사업 구조를 정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한 투자 팁도 오고 갔다. 박기범 비플러스 대표는 “비플러스는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모두 보는 대출형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라며 “비즈니스 모델이 인구 소멸 문제 해결 등 지역의 취약성을 개선하면서 자생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하고 다양성을 훼손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식당을 창업하는데 식당의 특징이 지역과 특별한 연관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펀딩이 어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황인범 와디즈 이사는 “와디즈가 지키는 기본 조건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신의 사업이 혁신을 추구하더라도 지역 특유의 규제 사안 등에 어긋나는지는 않는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고 전했다.
임팩트 투자를 받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사례도 소개됐다. 부산 영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알티비피 얼라이언스의 김철우 대표와 알티비피 얼라이언스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사 쿨리지코너 인베스트먼트 권혁태 대표가 패널로 참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알티비피 얼라이언스는 해양·수산 분야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조선·기계업종 실직자들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며, 공간 활성화 사업도 한다. 작년 부산에서 임팩트 스타트업 포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두 대표가 만난 게 투자까지 이어졌다. 권 대표는 “‘장인’에 가까운 김 대표의 모습을 봤는데, ‘기업가’의 면모를 끌어낼 수 있으면 기업가치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알티비피 얼라이언스가 항구도시를 살릴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보였다.
사진제공. 더웨이브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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