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된 동네 빵집을 시민들의 힘으로 살린 홈 베이크드(Homebaked), 낙후된 도시 리버풀을 핫플레이스로 만든 그랜비 스트릿, 지역민들이 모여 단돈 9파운드에 지역문화공간을 인수한 스트래포드 퍼블릭 홀...  위 사례는 모두 시민 참여로 공동체가 함께 지역의 공간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시민자산화 모델들이다. 이곳들의 또 하나 공통점은 모두 영국의 사례다. 영국은 지역자산 공동 소유운동이 활발한 나라다. 근대 협동조합의 발생지다 보니 사회혁신활동이 활발한데다, 시민이 지역자산을 공동소유하기 용이한 여러 법, 제도가 갖춰져 있고,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이를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 등이 존재한다. 현재 성공했거나 현재진행형이지만 주목받는 영국의 시민자산화 모델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영국의 사회혁신연구소 스프레드아이의 김정원 대표는 시민자산화 성공 모델들에는 모두 지역문제를 공동체 문제로 인식하고 실천한 ‘주체’가 있었다고 강조한다. 영국의 시민자산화 모델 3곳이 자산화를 일궈온 준비과정 등을 통해 국내 시사점은 무엇인지 김 대표에게 들어봤다. 

 #1. 시민자산화 초기 : 주체의 등장→공동체 모아내기→공감대 형성 
<지역문제를 공동체 문제로 인식하고 행동한 주체들이 있었다>  

 

시민자산화가 이뤄진 지역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초기 단계에서 결핍과 분노 등 공동체가 함께 풀어야할 크고 작은 과제들이 있는 곳들이다. 특히 그곳에서 발생된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지역이 함께 풀어야 할 공동체 문제로 인식한 화난 주체들이 있었다. 이러한 주체들이 중심에서 함께할 공동체를 모아냈고, 그 힘이 모여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시켜 자산화에 성공하게 된다. 

그랜비 스트릿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가 된 글래스가든. 청년예술가그룹인 어셈블이 주민들이 빈집을 활용해 함께 만든 공간으로 어셈블은 이 공간으로 영국에서 큰 상을 받았다./사진=어셈블 홈페이지

그랜비 스트릿은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호황을 누렸던 리버풀의 번화가였다. 대량실업과 가난 등으로 1980년대 후반 철거가 결정됐다. 이곳에서 거주하던 68가구 중 8가구 12명이 퇴거를 거부하며 시와 대립했고, 1993년 그랜비주민협의회를 결성했다. 협의회는 시의회를 끊임없이 설득해 4개의 길 위에 있는 집을 철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주민들은 거리를 지키기 위한 작은 노력들을 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주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공동체를 강화시켜가기 위한 노력이었다.

김 대표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삶터에서 쫓겨나면서 주민들은 분노했고 이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해 거리에 꽃 심기, 벽화로 단장하기, 빈집, 차 없는 거리에 매월 벼룩시장을 열었고, 벤치와 피크닉테이블 설치 등을 하면서 긴 시간 공감대를 형성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남은 주민들은 청년예술가그룹인 어셈블을 직접 찾아가 재생된 그랜비를 목표로 의기투합했고, 빈집을 활용해 조성한 글래스가든은 영국에서 큰 상을 받으면서 이곳의 이슈는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된다. 이곳이 유명세를 타면서 리버풀시도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홈 베이크드가 위치한 안필드 지역도 지역상권이 쇠락하고 도시재개발이 결정되면서 거주자들에 대한 철거 명령이 내려졌다. 몇 년 후 재개발 계획은 취소됐지만 도시는 점점 쇠락해갔다. 100년 넘게 대를 이어 온 유명 빵집 ‘미첼스(Mitchell’s)’도 문을 닫아야했다. 무너져가던 지역에 희망이 생기기 시작한 건, 지역을 살려야 한다는 주체들이 나서면서부터다. 100년 된 빵집을 다시 살리기로 의기투합한 주민들은 빵집 운영을 위한 협동조합을 만들고, 크라우드펀딩으로 돈을 모아 재기에 성공했으며, ‘홈베이크드’는 현재 성공한 시민자산화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빵집을 다시 살려가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동네투어 등으로 지역의 관심을 높여가는 건 물론, 다양한 유명 스폰서들을 섭외해 지역을 넘어서는 홍보를 진행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0년 된 빵집을 다시 살리기 위해 나선 주민들의 힘으로 다시 태어난 '홈 베이크드'./사진=홈 베이크드 홈페이지 

120년 된 건물을 지역민들이 운영하고 있는 스트래포드 퍼블릭 홀도 시작은 지역의 가장 오래된 건물이 매각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구청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구청이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오랫동안 동네에서 살아온 친구 3명이 먼저 뭉쳤다. 3명의 동네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된 움직임은 ‘스트렛포드 퍼블릭 홀을 지키자’는 캠페인으로 이어졌고, 결국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의 친구들’ 단체를 설립했고 지역주민이 함께 운영하는 모델을 만들어냈다. 

김 대표는 “시민자산화를 실현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지역공동체가 자산을 직접 소유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알리고,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때 지역을 넘어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감대를 불러오는게 중요하다”며 캠페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 시민자산화 중기 : 공동체 비전 수립→공동체 운영→중간지원조직 지원→비즈니스모델 수립
<지역이 함께 운영하는 지속가능한 비전과 사업모델 수립이 중요하다>

 

지역공동체가 자산을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게 되면 이때부터는 공동체의 비전을 세우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김 대표는 “이런 모델은 시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형태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동체의 비전을 구성원들이 함께 세우고 함께 운영해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스트래포드 퍼블릭 홀은 주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초기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전담 직원을 두고 중요한 결정 시에는 집을 직접 방문하거나 편지, 메일 등으로 주민들과 소통한다. 주민들로 꾸려진 자원봉사자 그룹도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오래된 건물의 페인트칠, 행사 보조 등 다양한 형태로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 운영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응급조치, 화재경보 조치, 위상생태 등 전문교육을 제공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관계망을 강화해 가고 있다. 이곳의 한 관계자는 “지역공동체가 운영한다는 취지에 맞게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자들의 역량을 키우고 더 확대하는 것이 앞으로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며 지속적인 의견 청취, 자원봉사자 관리 전담 직원 보완 등 다양한 방안을 계획 중이다. 

시민자산화로 지역공동체가 공공건물을 공동 소유한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은 공간운영에 자원봉사자들이 적극 참여한다./사진제공=스트레포드 퍼블릭 홀 

자산화 공간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하면 의지와 열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부동산에 대한 이해는 필수며, 공동체 자산 취득, 비즈니스모델 설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성이 담보돼야 한다. 김 대표는 “대다수의 시민자산화 건물은 노후된 공간이라 건축가, 법률가, 회계사 등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며 “앞서 강조한 캠페인이 중요한 이유다. 전국에 퍼져있는 전문가들이 이런 캠페인을 통해 이곳의 가치를 알고 참여하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네주민들이 나서 공간을 인수한 스트래포드 퍼블릭 홀의 초기 이사회는 자원봉사를 자처하는 동네주민들로 주로 구성했지만, 최근에는 법률, 회계, 사회투자 전문가 등 안정적으로 건물 운영이 가능한 인력 풀로 보완했다. 지속가능한 구조로 운영될 수 있는 전략기획에 이사회 역할을 집중해가고 있다. 그랜비 스트릿도 지역 및 전국의 건축가그룹, CIT(시민자산화협동조합)네트워크, 복수의 비영리 임대주택 사업자와 협력하에 운영을 하고 있다.  

아무리 성공한 모델이라 하더라도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모델은 중요하다. 영국에서 시민자산화를 일군 3개 지역 주체들도 끊임없이 자산운영이 가능한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고민한다. 이 과정에서 중간지원조직들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된다. 영국의 경우 로컬리티 등 시민자산화를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들의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국내는 아직 그런 지원조직이 없어 어려움이 있다. 

연간 매출 35만 파운드를 올리며 성공한 시민자산화 모델로 주목받는 홈 베이크드는 지역 재료를 사용해 지역민들에게 저렴하지만 질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자리, 직업훈련 장소 제공 등을 실천하며 지역에서 오랜 기간 살아남는 모델을 고민한다. 지역공동체가 공동 소유·운영하는 빵집인 만큼 수익금이 지역사회로 다시 흘러 들어가는 새로운 방식의 비즈니스를 꿈꾸는 것이다. 최근에는 공동체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 CLT)을 만들어 홈베이크드 주변 빈집을 개조해 공급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스트래포드 퍼블릭 홀도 지속가능한 공간 운영을 위해 일부 공간을 리모델링해서 3가지 컨셉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건강 및 웰빙 수업을 비롯해, 어린이 대상의 미술 수업, 합창단 활동 등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 운영, 프리랜서 및 스타트업을 위한 코워킹 공간 운영, 대강당을 지역의 가장 큰 문화공간으로 조성해 운영하는 등 공간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3. 시민자산화 후기 : 협상과 자산 이전 계약
<시민자산화 안정화 후 공공자산 소유권 이전 진행해야>

 

자산운영의 주체가 모이고 공동체 번영에 기여할 비전 및 비즈니스모델이 수립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이 명확해졌다면 그 다음 단계로 공공자산 이전에 대한 협상과 계약이 이뤄져야 한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건물을 이양 받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모델 수립까지 완료한 후 지자체랑 협상을 시작하는 게 좋다”고 제언했다. 특히 소유권 이전 과정에서 ‘협상’은 주요하게 넘어야 할 산이다. 

스트래포드 퍼블릭 홀은 구청이 소유하던 공공공간을 단돈 9파운드에 인수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지역공동체가 공간을 소유하는 방안을 구청에 제안하면서, 제안서 작성 과정에서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가가호호 방문하며 지역민들의 의견을 직접 들었다. 이후 구청이 입찰매각 공고를 냈고, 경선을 통해 현재 운영자인 프렌즈가 이곳의 운영권을 얻게 되었다. 2015년 구청이 프렌즈에 건물의 소유권을 완전히 넘기면서 스트레포드 퍼블릭 홀은 다시 주민공간으로 거듭났다. 

홈 베이크드, 그랜비 스트릿도 지역 내 빈집들의 소유권을 지자체로부터 최근에야 이양 받았다. 주민들 사이에서 시민자산화가 어느정도 이뤄진 후 진행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련 법, 제도도 중요하다. 영국의 경우 10년 전 만들어진 지역주권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역주권법은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에 더 많은 권한을 줘 시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로, 대표적으로 지역에서 가치 있는 자산이 매각될 때 6개월 동안 토지 소유자가 개인에게 이를 팔 수 없도록 유예 기간을 두는 규정을 담고 있다. 지역주권법이 보장하는 권리는 △입찰에 대한 공동체 권리(Community Right to Bid) △건설에 대한 공동체 권리(Community Right to Build) △도전에 대한 공동체 권리(Community Right to Challenge) △지역계획(Neighbourhood Planning) 4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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