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협동조합 운동은 어떻게 가야 할까?’ 이러한 물음에 전문가들은 “협동조합다운 운영의 본질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한살림재단이 모심과살림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2019 생명·협동연구 결과발표회에서는 한국 생협운동을 비롯한 협동운동 전반의 현황을 논의하고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0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2019 생명·협동연구 결과발표회'

“협동조합 양적 성장 대비 질적 성장은 미약...생태계 조성 노력 필요”

국내외 경제환경이 저성장시대로 가면서 협동조합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일자리 감소와 소비 위축은 가치소비의 감소, 먹거리나 교육 수요의 감소로 이어지고, 이런 경제환경의 변화로 농업과 제조업의 매출도 줄고 수출액도 감소한다. 반면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기존의 양적인 성장보다 질적인 성장, 사회적 경제로의 전환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협동조합의 현실은 어떠할까? 협동조합기본법 이후 설립된 협동조합들 중 사업을 운영하는 협동조합은 2017년 기준 53.4%이다. 하승우 이후연구소장은 “저성장이 지속되면 협동조합의 수는 늘겠지만 생존율이 높을지는 의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설립 협동조합의 83.63%를 차지하는 사업자나 다중이해관계자협동조합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휩쓸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정부의 협동조합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매년 협동조합 총회 횟수는 줄고, 직원 교육도 협동조합 관련 교육보다 직무교육 위주”라며 “고용율은 높아지지만 고용의 질이 담보되지 않고 사회적경제간 연대도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하 소장은 종합적으로 “협동조합 목적에 맞게 잘 운영되느냐 살펴봤을때 지표상으로 봐서는 부족하다”며 “그동안 정부가 주도하는 양적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하 소장은 협동조합이 일상을 재조직해서 저성장의 삶을 준비하도록 하고 민주적인 관계망을 재구성해 지역적인 위기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조건변화에서 약자인 여성, 청년, 노인들이 협동조합의 주체로 서고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고 협동조합을 통해 안전한 노동과 삶을 보장받으며 공유지를 넓혀나갈 때 협동조합의 힘도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별 협동조합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하 소장은 “생태계를 조성하는 노력이 중요하고, 협동조합운동을 끌어갈 힘도 필요한데 여기서 앞서 협동조합을 만든 생협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협동조합답지 않은 운영이 경영위기 초래...내적 요인 먼저 찾아야”

현재 협동조합이 겪는 어려움을 저성장이라는 외부적인 요인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찾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신양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장은 “협동조합이 협동조합답게 운영되지 않는 경영의 위기”라고 현재를 진단했다. 김 회장은 “실제 많은 협동조합이 주인노릇하지 않는 조합원, 임금노동자의 노동에 의지한 조합의 운영, 경제적 참여를 하지 않는 조합원으로 인한 자본 부족, 노사 갈등 문제 등 참다운 협동조합운동의 노선을 많이 벗어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외 몇몇 협동조합 사례를 제시하며 ‘협동노동’ 등을 저성장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협동조합 운동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김 회장이 제시한 대표 사례는 저성장으로 접어든 시기 설립되었지만 여전히 지속적인 성장을 거두고 있는 ‘프랑스의 비오쿱’이다. 비오쿱은 2018년 12월 31일 기준, 전국에 559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으며, 매년 60여개 정도 신규 매장이 설립되며 안정적인 성장을 보이는 중이다. 비오쿱의 성공 전략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비오쿱은 전국 규모의 조직이지만 권력이 중앙집권화되지 않고 각 매장에 독립성을 부여한다. 물류 체계 또한 4개 권역으로 분산하고, 지역물품도 자유롭게 취급할 수 있어 지역화와 중앙화의 균형을 이룬다. 그러다보니 매장이 어려울 때 본사가 매출을 보조해 지원함으로써 연대를 실천해 충성심과 소속감을 이끌어낸다. 또한 고객은 조합원이 아니지만 비오쿱의 철저한 유기농 정책, 에너지전환 정책에 신뢰를 가지고 있기에 비오쿱의 이용을 정치적 선택으로 사고해 충성도를 확보한다. 좋은 직장이 되기 위한 노력도 이곳의 성공 비결이다. 비오쿱의 직원 95%는 정규직이며, 원하지 않을 경우 비정규 직으로 채용하지 않는다.

프랑스 파리의 소비자협동조합 라 루브 매장./사진제공=김신양

또다른 사례는 미국 뉴욕에 소재한 친환경로컬푸드협동조합 파크슬로프푸드 쿱(Park Slope Food Coop, PSFC)의 모델을 적용한 프랑스 파리의 소비자협동조합 ‘라루브’다. 라루브의 성공비결은 협동노동과 충실한 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라루브는 철저한 조합원제도로, 라루브의 목적과 운영방식에 동의하는 사람만 조합원으로 가입시킨다. 또한 다른 매장보다 저렴하게 유기농 제품을 구매할 수 있고, 다른 수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제품 또한 비교적 싼 가격으로 제공해 조합원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도 특징이다. 이곳에서는 조합원의 25%인 저소득층들도 건강한 먹거리를 이용한다. 라루브가 이렇게 질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데는 조합원들의 협동노동이 큰 역할을 한다. 7000여명에 이르는 라루브의 조합원은 한 달에 3시간씩 노동을 제공한다. 조합원들과의 일상적인 소통도 중요한 성공 요소다. 김 회장은 “모든 캐셔 일을 맡는 조합원들은 계산을 하는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조합원들과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화함으로써 협동조합 수퍼마켓이 단순히 쇼핑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이웃간의 관계를 맺고 서로 돌보는 마을의 사랑방이자 사교의 공간으로 친숙함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도 좋은 사례가 있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살림의료사협의 경우 노동의 협동을 조직 운영의 중요한 축으로 여겨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참여 인원 및 제공된 노동시간 등을 관리한다. 대표적인 예가 ‘좋아랑(좋아서 자원활동하는 사람들이랑)'이다. 좋아랑 소속 조합원들은 조합에 필요한 노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김 회장은 “조합원들은 처음부터 주인의식이나 소속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함으로써 조금씩 변화를 겪는 사람들"이라며 "그 참여의 계기,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살림의료사협의 경우 환대의 문화, 노동참여, 교육 및 모임을 통한 자기성장이 조합원들의 의식변화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김 회장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협동조합다움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성장 시대라고 시장만 바라보며 한숨지을 일이 아니다. 협동조합은 그 안에 이미 이용자와 투자자와 노동자를 가지고 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시장 형성에 중요한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잠자고 있는 조합원, 무관심한 조합원, 냉소적인 조합원들로 인해 무력해진 조직을 살려 협동의 강력한 협동의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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