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討論) 말고 숙론(熟論) 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전 세계가 부러워할 기가 막힌 정치가 한국에서 나올 겁니다.”

지난 2019년 말, 서울에서 ‘힘의 역전’을 주제로 한 인문사회 포럼이 열렸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한국 정치?경제?사회의 판을 흔드는 변수를 점검하고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점검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였다. 이날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우리 사회를 바꾸는 힘의 역전은 ‘대화’로부터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를 지난 3일 종합과학관 캠퍼스에서 만났다./사진=전석병 작가

대화와 토론이 실종된 한국 사회는 갈등과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는 각계각층의 성난 모습은 뉴스만 틀면 우수수 쏟아져 내릴 정도다. 최 교수는 서로 평행선을 긋는 사람들의 의견이 하나의 접점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대화’, 즉 숙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토론은 기어코 상대를 제압하고 무너뜨리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토론의 ‘토(討)’ 자에는 ‘공격하다’ ‘두들겨 패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거든요. TV 토론회만 봐도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고 궁지에 몰아넣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토론 대신 여러 사람들이 특정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해 좋은 결론에 다가가는 ‘숙론’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과학이나 기술에서 발현될 뿐만 아니라, 대화와 숙론에서 나온다는 의견은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디서 변화를 찾을까’를 고민하기 좋은 2020 새해의 시작점, 최 교수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1월 셋째 날 찾은 이대 캠퍼스는 겨울방학을 맞아 한산했지만, 그의 연구실은 문턱이 닳는 듯 분주했다. 얼마 전 귀국했다는 제자부터 인터뷰하러 온 기자, 회의하러 온 동료 등이 연달아 연구실로 들어섰다. “오늘따라 손님들이 많네요”라며 반겨주는 최 교수와 마주 앉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의 이야기를 경계 없이 나누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최 교수는 "여럿이 특정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는 '숙론'이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며 "새해에는 시민들이 나서 숙론의 장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사진=전석병 작가

“무너뜨리기 위한 논쟁? 임금-사대부가 부딪히며 결정한 조선 있는데”

- 최근 강연과 칼럼 등을 통해 ‘숙론’을 강조했습니다. 당장 국회만 봐도 고개가 저어지는데, 여러 사람이 서로 충분히 의견을 나누는 숙론이 우리 사회에서 과연 가능할까요?

▶흔히 저를 ‘통섭학자’라고 부르는데, 통섭(consilience)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consilience’라는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있는데, 이 상품을 만들기 전 창업주 4명이 모여 와인명을 짓기로 합니다. 각자 생각해온 이름을 하나씩 내놓고 ‘내 이름이 왜 좋은지’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데요. 이후 모자에 종이를 넣고 투표를 하는데 만장일치로 ‘consilience’가 뽑힙니다. 4명 중 3명은 자신이 가져온 이름을 기꺼이 버리고, 동료가 가져온 더 좋은 이름으로 마음을 바꾼 것이죠. 이게 바로 진정한 ‘디스커션(discussion, 숙론)’입니다.

‘discussion’의 목적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내 생각이 여기서 부족했구나’를 찾는 겁니다. ‘누가 옳은가(Who is right)’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What is right)’를 가리는 행위죠. 그런데 우리는 내가 제일 옳다고 이미 결정해놓고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논쟁을 합니다. 옛날 조선에서도 임금과 사대부가 모여 무엇이 옳은가를 찾기 위해 서로 부딪히며 결정을 했습니다. 우리는 분명 숙론을 할 줄 아는데, 현대사회 들어 더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방법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가능해져야죠.

- 몇 선진국에서는 숙론을 통한 정치가 진행되고 있는 듯합니다.

▶얼마 전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회의를 주재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최근 캐나다 정부가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찬반 논란이 일어나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죠. 한 남성이 “난민을 무차별적으로 받으면 국가 재정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주장하자, 상대방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면서 소리를 지르며 방해했습니다. 이때 트뤼도가 벌떡 일어나 소리 치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저분이 충분히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경청하는 게 민주국가다”라고 제지했습니다. 총리가 나서서 서로 다른 생각을 조율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고, 부럽기도 하더라고요.

- 처음부터 의견이 비슷하면 갈등도 적을 텐데,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기 다릅니다. 우리 사회에 다양한 목소리는 왜 중요한가요?

▶말로는 다양성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실제로는 의견이 조금만 달라도 야단법석을 치고 불편해합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시끄럽게 싸우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민주주의거든요. 다양한 사회는 결코 편안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면 지도자 한 명이 반역자 몇 명을 처단한 다음, 자기 뜻대로 쉽게 통치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회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견을 갖고 서로 부딪치고 갈등하는 게 정상입니다.

더군다나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균질의 사회’에서는 발전이 없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전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조용하고 안정적인 집단에서는 새로운 게 나올 수 없어요. 창의성은 시끄럽고 불편하고 골치 아픈 곳에서 나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분위기 속에서 발현되죠. 어느 천재가 골방에서 갑자기 떠올리는 경우는 거의 드뭅니다. 여러 사람이 의견을 내놓고 부딪치는 과정에서 불꽃이 튀어 커다란 불을 이루게 됩니다.

최 교수는 1990년 넬슨 만델라가 출소할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했던 방법을 담은 책 'Collaborating with Enemy'를 소개하며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 몇 가지를 정하고, 서로 신사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전석병 작가

“착실하게 출근해서 절대 다른 짓 안할 사람을 국회로”

- 사회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충돌하고 있는데, 소모적인 갈등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요?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할 얘기, 못할 얘기를 마구 던지면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모였다 하면 누가 옳은가만 따지는데,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면 몇 가지 신사적 룰을 따라야 해요. ‘절대로 상대를 비방하지 않는다’ ‘해당 사안에 관한 내 의견을 분명히 밝힌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는다’ 같은 아주 기본적인 규칙입니다. 툭 하면 욕부터 내뱉고, 박차고 나가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지금의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2020년은 국회의원 선거가 열리는 ‘정치의 해’입니다. 어떤 인물이 필요할까요?

▶이번 21대 총선에 누굴 뽑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툭하면 밖으로 나가는 사람 말고 무조건 앉아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뽑자고 답하겠습니다. 국민이 월급을 주면서 불러놨는데 일도 안 하고 있잖아요. 대의민주주의는 ‘나 대신 국회에 가서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이니, 일단 착실하게 출근하고 절대 다른 짓 안 하는 ‘골샌님’ 같은 사람만 골라 국회에 넣자는 거예요. 그런 의원들만 국회에 있으면, 어떤 어려운 문제도 며칠만 머리를 맞대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 한국 정치도 ‘대화’를 통해 변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실 한국이 정치 말고는 뒤처지는 게 없습니다. 머리 좋기로 유명한 사람들이 모였고, 누구보다 오래 성실히 일하는 국민들이 있고, 전 세계에서 끼로 밀리지 않는 BTS 같은 가수도 배출한 나라 아닙니까. 우리는 이미 다 갖춘 사회인데, 조금만 성숙하게 대화한다면 세계가 부러워할 기가 막힌 정치가 나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몇 번의 계기를 통해 하나를 배우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머지않은 미래에 굉장히 합리적인 정치를 하게 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로 ‘장례문화’를 들고 싶은데요. 5000년 이상 이어온 장묘의 전통이 10년 만에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시신을 매장하던 풍습이 화장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10년 안에 화장장이 부족한 나라가 됐을 정도입니다. 흔히 우리 국민을 감정적이라고 말하는데, 일단 머리에서 옳다고 이해가 되면 가슴으로도 공감해 전광석화처럼 실행에 옮깁니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멋있고 지적으로도 탁월하죠. 정치도 하루아침에 변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돌이 모형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최 교수.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2013년 7월 제주 바다에 제돌이 방류를 이끌었다. 그는 "제돌이를 통해 인생이 변화한 점이 크다"며 "죽기 전에 수족관에 갇힌 모든 돌고래를 전부 풀어주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사진=전석병 작가

“반려견? 반려인? 관계 새롭게 설정하면 학대는 있을 수 없는 일

- 우리 사회의 다양성 존중을 이야기할 때 ‘동물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인간은 현재 ‘반려?사육?관상?유희’ 등 여러 목적으로 동물과 함께하고, 또 이용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교회에서 강의를 했는데, 성경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만물을 맡겼다’는 부분에서 ‘과연 우리가 말씀대로 하고 있나?’라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한 대로 인간들이 잘 다스려주길 바랐지, ‘다 너희 것이니 마음대로 살리고 죽여라’가 아니었을 거라고요. 

최근 저희 분야에서 나온 새로운 학설이 의미하는 바가 큰데요. 반려동물 중 대표적인 개가 인간을 찾아와 ‘반려인’으로 택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동안 인간이 개를 잡아다 ‘반려견’으로 길들였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개가 인간을 찾아와 친구로 삼았다는 내용이에요. 인간 근처에 가면 먹을 것도 많고, 재밌는 일도 많아 개가 우리를 선택한 거라고요. 개와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면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찾아온 손님인데 버리고 학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2013년 ‘제돌이’가 바다로 간 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한층 높아진 것 같습니다.

▶돌고래는 하루 100km 이상을 헤엄치는 자유로운 동물이자, 스스로 갇혔다는 걸 인식할 만큼 지능이 높습니다. 누가 인간에게 돌고래를 가둬도 된다고 허락했을까요? 신이었을까요? 수족관이 아무리 넓어봤자 유리에 계속 부딪히고, 초음파가 벽에 반사돼 이명과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쇼에서 돌고래들이 하는 묘기는 원래 바다에서 기분이 좋을 때 하는 행동인데, 하지 않으면 굶으니 어쩔 수 없이 보여주는 참혹한 장면이에요. 
  
제돌이를 바다에 방류하면서 ‘죽기 전에 갇힌 고래들을 모두 풀어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여전히 국내에만 돌고래 38마리가 갇혀있는데, 수족관에서 저에게 요청한다면 전부 풀어주고 싶습니다. 물론 예산도 수십억 원이 들고 욕도 많이 먹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살던 흰고래 벨루가 3마리 중 2마리도 폐사했는데, 최근 롯데에서 나머지 1마리는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선언했어요. 영국, 캐나다에서는 고래를 가두지 않는 법령을 만들기도 했고 시민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으니, 조금씩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는 "인간은 원래 인성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는 아기였는데, 자라면서 공감력이 줄어들면서 인성도 옅어졌다"며 "공감력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게 어른들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사진=전석병 작가

“공감은 생쥐도 있는 능력, 인성교육 대신 본성 사라지지 않는 환경 더 중요해“ 

연구실을 떠나기 전, 세계적 동물학자인 그에게 2020년 경자년을 상징하는 ‘흰 쥐’에 대한 교훈을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최 교수는 “쥐는 희생을 통해 인간에게 큰 도움을 주는 동물”이라며 “실험이라는 방식을 통해 얻어낸 게 너무나 많기에 특히 고마운 존재”라며 말을 이었다.

“흰 쥐에 관한 실험 하나를 소개할까 하는데요. ‘과연 동물들도 공감력이 있을까’에 관한 실험을 위해 흰 쥐 5마리를 한 케이지에 넣고 밥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한 마리씩 따로 케이지에 넣은 뒤, 1마리에게만 밥을 주고 나머지는 굶겼거든요. 4마리가 배고픔에 신음하면서 울자, 그 소리를 들은 1마리도 결국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우리 시대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공감’은 흔히 인간만이 가진 속성이라고 오해를 한다. 최 교수는 “공감은 아주 작은 생쥐들도 가진 능력”이라며 “포유류 최초의 조상부터 있었고, 여러 종으로 가지치기하면서도 공유해온 본능이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공감력이 자라면서 무뎌지고 무시되는 거라고. 그는 “인성교육을 강화할 게 아니라, 본성이 사라지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어쩌면 타인과의 대화부터 최 교수가 강조한 숙론, 다양성과 동물권이 존중받는 사회까지 모두 인간의 ‘공감력’에서 시작될 것이다. 2020년은 흰 쥐만큼이라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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