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문, 당신은 xx직으로 프로모션 되었고, 연봉은 $$입니다. 다른 문의 사항 있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전화를 끊고 1년 반의 박사 후 연수과정을 종지부 찍는 오퍼레터를 받았다. 불안정한 삶을 사는 비정규직 외국인에겐 연봉의 액수보다 비정규직의 ‘비’자가 빠지고, 연구소 아이디에서 비정규직 표시가 사라지고, 보험과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하고 기뻤다.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의 린다 뱁콕 교수는 취업과정에서 절대로 입 밖으로 내면 안 되는 말이 “취직만 된다면 연봉이 얼마이든 전 상관없어요”라고 그의 저서 ‘Women Don’t Ask‘에서 이야기한다. 정확히 필자가 전화기를 붙잡고 감사하다고 굽신거렸던 그 장면과 겹쳐진다.

앨리스 폴 태퍼가 '손들기 운동' 걸스카우트 패치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뉴욕타임즈

미국에서도 여성의 평균 연봉은 남성의 평균 연봉에 미치지 못한다. 여성들은 직장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최고의 일자리에서 조차 평가절하 되곤 한다. 뱁콕 교수는 이러한 문제점은 의식적, 무의식적 차별뿐만 아닌, 또 다른 미묘한 불평등의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성적과 실력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에 대해 “묻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MBA를 졸업한 남성의 경우 초기 연봉이 같은 직급의 여성에 비해 평균 7.6%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고용주가 제시하는 초기 연봉을 받아들였으며, 단지 7%만이 협상을 시도했다. 이는 57%의 남성이 연봉 협상을 한 것에 비하면 8배나 낮다.

채용과정에서의 연봉협상은 현실의 남녀의 경제적 불평등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23세 대학 졸업자의 초봉을 2만 5,000달러라고 가정했을 때 많은 남성은 연봉협상을 통해서 3만 달러를 받아낸단다. 60세까지 일을 한다는 가정 아래 매년 임금인상률 3%를 적용하면, 60세에 받는 그들의 연봉은 남성은 9만 2,243달러, 여성은 7만 6,878달러다. 38년 동안 남성이 더 받은 임금은 36만 1,171달러. 이를 3% 이자가 붙는 세이빙 계좌에 넣었을 경우, 남성은 은퇴 시에 56만 8,834달러를 더 손에 쥘 수 있다. 은퇴 후 경제력 차이는 곧 은퇴 후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뱁콕 교수는 단지 “한 번의 협상”의 결과라는 조금은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

그렇다면 여성은 왜 묻지 않는 것일까?

태중에서부터 여성에게 ‘여성성’을 장착해 ‘여성화’되게 만드는 과거·현재의 사회화 과정에 문제가 있다. 10살의 걸스카우트 대원이었던 앨리스 폴 태퍼는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갔다. 남자아이들은 앞에 서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데 여자아이들은 뒤에서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충격 받았다. 틀린 답을 입 밖에 냈다가 창피를 당하거나, 선생님의 관심을 못 끌까 봐 겁이나 침묵하는 거라 판단했다.

여자 아이는 어려서부터 핑크로 정형화시켜놓은 여성의 길을 걸어간다. 다소곳해야 하고, 시끄럽지 않아야 하며, 말대꾸를 하지 않고, 말 잘 듣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자라야 하고, 어른이 돼서는 결혼을 해야 하며, 완벽한 아내이자, 엄마, 며느리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정형화된 길 어느 길목에도 손을 들어 “저기요!”하고 용기 있게 외칠 틈이 없다. 태퍼는 자신의 걸스카우트 친구들과 이 문제를 토론하기 시작했다. 손을 들어 “저기요!”하고 외치는 건 완벽할 필요가 없는 문제이니 삶의 어느 길목에서도 용기 있게 손을 들자는 ‘손들기 운동(Raise your hands)’을 시작했다. 그는 걸스카우트 패치를 만들어 미국 전역의 걸스카우트 대원들과 함께 ‘손들기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여학생들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비영리단체 ‘걸스 후 코드(Girls Who Code)’의 대표 레시마 소자니는 여학생들에게 필요한 게 ‘완벽’이 아닌 ‘용기’라고 이야기한다.

걸스 후 코드의 첫 주 교육시간에는 많은 학생들이 우왕좌왕하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무슨 코드를 쓸지 모르겠어요”라고 질문을 했다. 모니터 앞에 선 선생님은 빈 문서편집기를 마주했다. 하지만 이 학생은 아무것도 안하고 20분 동안 하얀 모니터만을 들여다보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선생님이 ‘뒤로 가기’ 버튼을 몇 번 누르자 20분 동안 쓰고 지웠던 코드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코딩을 시도했고 거의 성공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던 것. 소자니는 완벽한 성공이 아니면 실패라는 생각을 버리도록 여학생들에게 용기를 심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경제 사회적으로 여성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여성의 삶은 더 이상 ‘여성답다’라는 말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더 이상 사치가 아닌 필수다. 10살 소녀의 번쩍 높이 드는 손이, 코딩으로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아가는 소녀들이 전화 한 통화에 넙죽 엎드렸던 과거 필자의 모습을 부끄럽게 만든다.

2020년 새해가 밝았다. 더 묻고, 더 요구하고, 더 외치고, 더 용감해지는 이 땅의 여성들이 되길 소망한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