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대규모 원금손실 사태를 일으킨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피해자가 역대 최고수준의 배상비율인 80%까지 배상받을 수 있게 됐다는 기사가 났다. 투자경험이 없는 난청 79세 치매환자가 주인공이다. 은행 직원은 투자자 성향을 고려하여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데 인지력이 떨어지는 치매환자에게 초고위험상품인 DLF를 권유하면서 ‘원금전액손실 가능성’ 등 투자자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불완전판매를 했던 것이다.

치매 노인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투자하도록 해 큰 손실을 입힌 독일 국채 파생 상품 DLF 사태에 대해 올해 초 금융분쟁조정위원회가 80%의 배상 조정안을 내놨다. /사진=KBS 뉴스 캡처

오늘날 치매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일 수 있다. 중앙치매센터가 전국의 치매유병 현황 및 치매환자의 의료 및 장기요양 관련 서비스 현황을 조사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18’ 보고서(‘19.03.20.)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명중 1명꼴로 치매를 앓고 있으며 치매 환자가 약 7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국내 치매 환자는 2024년에는 100만 명, 2050년에는 300만 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6%가 치매증상을 보일 수 있다.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인구대비 치매 환자 수 증가가 사회 전반적 문제로 대두되는 가운데 금융권도 기억력과 판단 능력이 부족한 치매 환자 고객을 위한 금융서비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가령, 치매에 걸려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는 게 어려워지면 법률상 권한을 가지는 성년후견인을 두지 않았을 경우 예금인출 등의 법률행위 진행 절차가 매우 번거로워 고객의 금융자산이 금융사에 묶여 사실상 동결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한 단신 치매고령자가 생활비가 없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은행 계좌에 1억 원이 넘는 저축금이 있었다고 한다.

다이이치(第一) 생명경제연구소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일본의 고령화율은 2018년 28%를 넘어섰는데 2017년 기준으로 치매 환자가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이 143조 엔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년에는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40%에 맞먹는 215조 엔(약 2200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만일 이 돈이 동결될 경우 일본 경제는 동맥경화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렇기에 일본 정책당국은 금융기관과 힘을 합쳐 치매환자의 자산동결 방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고 한다. 유언대용신탁, 유언신탁, 후견제도지원신탁 등 고령자 신탁상품을 판매해 대출수익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은행권도 치매 고객 대응을 위해 성년후견제도를 활용한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내놓기 시작했다. 성년후견이란 치매, 질병, 장애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재산관리 및 일상생활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 2013년 7월1일 민법 개정에 따라 도입된 제도다. KB국민은행은 치매 대비를 위해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법률상담을 제공하는 ‘치매안심상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치매 발병 시 후견인에게 정기자금을 지급하는 ‘성년후견제도 지원신탁’을 판매한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치매 안심 성년후견 지원신탁’을, 신한은행은 ‘후견제도 지원신탁’을 취급 중이며 후견제도 활성화를 위한 은행과 대형 법무법인 간 업무협약 체결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보험업계의 치매보험 판매도 급증하고 있다. 경증치매 보장 확대 등의 이유로 지난 1분기 가입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연간 치매보험 신규 계약 건은 2018년 60만 건이었는데 올해 1~3월에만 약 88만 건을 달성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치매가 보편화되고 있는데 그 비용이 부담되기 때문에 보험상품을 통해 준비하고자 하는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앞에 언급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 환자 1인당 의료비와 간병비는 연간 2,074만 원으로 소득이 없는 노인이 감당하기엔 부담스럽다.

치매보험에 가입할 때 CDR, 보험기간, 해지환급금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야겠지만, 은행 신탁상품처럼 가입자가 인지능력이 저하될 때를 고려한 '지정대리청구인제도'를 이해해야 한다. 지정대리청구인제도는 보험 가입자의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워져 보험금 청구가 힘든 상황에 대비해 운영하는 제도로, 대리인을 지정하면 대리인이 보험 계약자를 대신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지난 10월 8일 전재수 더불어민주당(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보험사별 치매보험 지정대리인 청구 현황’에 따르면, 2019년 33개 생보사와 손보사에서 누적 판매된 치매보험 280만4103건 중 대리청구인을 지정한 비율은 17만8309건(6.3%)에 그쳤다고 한다. 보험사는 치매보험을 계약할 때 계약자, 피보험자, 수익자가 동일한 경우 대리청구인 제도를 안내해야 하지만 권고사항일 뿐이며, 설계사가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종의 불완전판매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 문제와 직결된 부분에서 소극적인 태도로 소비자 피해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치매보험 계약 시 지정대리인을 의무적으로 기입하게 하는 대책도 제시된 바가 있다.

앞에 언급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18’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치매관리비용은 약 14조 6,000억 원으로 GDP의 약 0.8%를 차지한다. 늘어나는 재정부담을 해소하고자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장기요양보험료를 8.51%에서 10.25%로 변경(1.74%p 인상)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지난 2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에 대응해 장기요양보험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으로서,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어,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모두 1월분 소득월액부터는 변경된 보험료율이 적용되게 된다. 치매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활경제에서 피부로 느끼게 되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문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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