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와대 교수직을 놓고 한국에 온 김우재 박사를 지난 2일 서울 강남에서 만났다.

“한국은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비 규모가 세계 1위(4.55%, 2018 과학기술통계백서)예요. 그런데 실제로 뜯어보면 연구 자체에만 들어가는 비용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가성비는 제일 떨어지죠. 최근 구글이 양자컴퓨터를, 중국이 안면인식 기술을 개발해 이슈가 됐는데, 이렇게 세계를 뒤흔드는 기술 중 한국이 내놓은 건 없잖아요.”

기초과학자,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박사의 일성이다. 캐나다 오타와대에서 5년간 교수로 일하던 그는 올해 사직서를 내고 한국에 돌아왔다. 2019년은 그에게 파란만장한 해였다. 봄에는 4건의 고소에 휘말렸고,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해외고급과학자초빙(Brain Pool)' 사업에 참여차 한국에 왔으며, 현재는 한국 과학계의 변화를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진행 중이다. 지난 2일, 서울 강남 모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과학자 목소리 대변할 ‘과학기술인협회’ 필요

“제가 변호사나 의사였다면 섣불리 저를 고소하지 못했을 거예요. 대한변호사협회나 대한의사협회가 나섰을 테니까요. 저는 과학자고, 과학자들끼리 뭉쳐 서로를 보호해주는 이익집단은 없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봅니다. 만만하게 여긴 거죠.”

김 박사는 각종 매체를 통해 한국창조과학회와 명상단체 단월드 관련 기관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가 제도권 과학계로 들어오려 한다고 비판했다가 양측으로부터 모욕·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당했다. 4건 중 3건은 죄가 없다고 판결이 난 상황이다. 그는 “유사과학단체가 과학자를 무시하고 고소했는데, 어떤 과학 학회와 단체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에서는 혈액형과 만화 캐릭터의 성격 관계, 사주팔자와 콜센터 상담사의 직무 스트레스 관계 등을 연구한 논문을 내놓았다. 또한, 지난 4월 단월드 관련 기관 한국뇌과학연구원이 주최하는 ‘브레인 명상 콘퍼런스’ 행사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후원명칭을 승인했다가 과학계 반발로 취소한 사례가 있다.

김 박사는 “유사과학이 유사과학으로 남는 건 괜찮지만, 제도권 과학계나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와 과학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게 되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다.

김우재 박사의 크라우드펀딩은 12월 말 종료된다. 현 시점 300% 이상을 달성했다. /사진=와디즈 홈페이지 캡처

김 박사는 과학기술인들이 연대해 사회를 변화시킬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 만들어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있지만, 젊은 과학기술인들을 끌어 당겨주고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확성기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과학기술인협회’ 창설을 계획하는 이유다.

20~30명 수준으로 시작해 규모를 점점 늘려갈 생각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말부터 크라우드펀딩을 진행 중이다. 김 박사는 “유사과학단체가 과학자를 고소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법적 대응을 하고, 유사과학단체의 활용을 모니터링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과학기술인협회를 설립하는 게 크라우드펀딩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사회지도세력이 과학기술 존중해야

“우리나라의 문화부터 사회를 이끄는 지도세력이 따르는 사상이나 철학적 지향점은 인문학입니다. 청와대에는 이공계 출신이 거의 없어요. 국내 과학자에게는 권력층으로 올라갈 사다리가 없거든요.”

문제는 과학기술인 이익집단 부재뿐만이 아니다. 김 박사는 과학기술인의 시각으로 국가를 생각할 고위직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 인물들만 봐도 모두 의사나 변호사였고, 현재 청와대에 이공주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보좌관, 문미옥 과기정통부 1차관 등을 제외하면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없다”며 “사회지도층 자체가 과학과 친하지 않으니 진보나 보수나 내놓는 과학 정책에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한국일보가 조사한 바 20대 국회의원의 1/6은 법조인 출신이었다. 김 박사는 “의사나 변호사만 똑똑해서 그런 게 아니다”라며 “자격증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직업이 있어 정치에도 눈을 돌릴 수 있는 건데, 과학기술인들에게는 그런 안전망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김우재 박사는 "정부가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 미래가치를 약속할 수 있어야만 국민의 호응도 더 커지고 다음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사회 지도세력이 과학기술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좋은 과학기술정책을 내놓고 과학자들의 사회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기존 정치에 쓰인 유교적 틀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라는 것. 그는 “현재 정치는 인문학의 한계에 갇혀 있다”며 “청와대도 말로만 4차산업혁명·AI 등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실제적인 운용은 과거의 패러다임과 똑같이 굴러간다”고 꼬집었다.

모두가 과학자 되는 타운랩 사업 구상...“문화로 스며들어야죠”

김 박사는 과학이 기본적으로 국민 삶 속에 스며들어야 혁신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어렵고 전문적인 영역이 아니라 문화로 소비돼야 한다는 것. 그는 “영국 '네이처(Nature)'와 미국 '사이언스(Science)'는 원래 중산층의 평범한 회사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과학 잡지일 정도로 외국에서는 과학을 고급 교양이라고 인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타운랩’이라는 걸 실험하려 한다. “모두가 과학자가 되는 실험실”이라는 개념이다. 피아노를 배우러 피아노 학원을 가는 것처럼, 과학을 배우러 타운랩에 가는 거다. 교과서나 강연은 배제하고, 데이터 분석과 실제 실험을 통해 영어로 논문을 쓰는 방식이기 때문에 학교 시험공부를 위한 과학 학원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이미 캐나다 오타와대에서 타운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한국에서도 실시하기 위해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인협회 창설보다 타운랩 만들기가 더 하고 싶어요. 저는 과학자라 연구가 더 재밌으니까요. 100년 후에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 실험하고 논문을 써보는 사회가 되는 재밌는 상상을 했어요. 인건비와 유지비로 1년에 1억 원 정도면 충분해요. 과학과 사회를 연결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 전석병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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