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의 사회적기업 ‘우시산’은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인형, 에코백, 텀블러, 티셔츠 등을 만드는 업체다. 회사가 자금난에 처했을 때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해 목표 금액을 최대 2517% 이상 초과 달성하며 시민 자본의 효과를 봤다. 

# 시흥의 예비사회적기업 ‘빌드’는 월곶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레스토랑, 카페, 실내놀이터, 지역 농산물 직거래 마켓 등을 운영한다. 지역재생 비즈니스 수행을 위해 필요한 자금 4000만원을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모았다.

# 전주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온리’는 폐종이를 재활용해 수제 씨앗카드 ‘종이정원’을 제작해 판매한다. 경영 악화로 위기에 처했을 때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인내자본 5000만원을 모아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회적경제 조직을 위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오마이컴퍼니' 메인 화면 갈무리.

후원형?보상형→지분형?대출형 확장…간접 투자에서 직접 투자로

은행에서 투자를 받거나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창업 초기 사회적경제 기업이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기존 금융권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자금 통로가 되면서 ‘대안금융’의 모델로 떠올랐다.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이란 대중을 뜻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을 조합한 용어로, 대중이 만든 기금을 뜻한다. 온라인 플랫폼 등을 이용해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종류에 따라 ‘후원형?기부형?대출형?지분투자형’ 등 크게 4가지로 나뉜다. 

크라우드펀딩은 순수한 선의 목적의 ‘기부형’, 후원 금액에 따라 제품?서비스를 제공받는 ‘보상형’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투자 수익을 위한 ‘지분형’, 개인간 금융 직거래 방식인 ‘P2P대출형’이 늘어나면서 전체 시장 규모가 커졌다. 국내에서는 2010년대 초반 다양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생기면서 취약계층이나 창작자를 위한 ‘지원금 조달’부터 창업이나 신제품 출시를 위한 ‘사업 자본’, 가치나 수익 창출을 위한 ‘투자 상품’ 등으로 역할이 확대됐다.

사회적경제 기업을 위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오마이컴퍼니’를 운영하는 성진경 대표는 “지금까지 투자자는 돈을 은행에 맡겨 심사를 통해 기업에 간접 투자하는 구조였다”며 “크라우드펀딩이 활성화하면서 시민들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를 선택해 직접 투자하거나 후원하고, 해당 기업에서 생산한 상품, 서비스를 구매할 수도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 우시산, 크라우드펀딩 목표액 초과 달성 ‘자금난 극복’

바다에 버려진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제작한 '고래 인형'을 들고 있는 변의현 우시산 대표./사진제공=우시산

크라우드펀딩 가운데 가장 대중적 방식의 ‘보상형’은 후원 금액에 따라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유형이다. 혁신적 아이디어나 상품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해 성공하면 제품이나 티켓 등 후원에 대한 소정의 대가를 받는 식이다.

‘바다와 고래를 지킨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사회적기업 ‘우시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울산의 명물 ‘고래’를 캐릭터로 개발하고, 바다에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해 인형, 에코백, 텀블러, 티셔츠, 배지 등 각종 상품을 만든다. 지난 2017년부터 네이버 해피빈, 오마이컴퍼니 등을 통해 꾸준히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해 투자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우시산은 올해 오마이컴퍼니를 통해 총 4차례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다. 1차 728%, 2차 319%, 3차 106%를 목표액보다 초과 달성했으며, 4차에서는 2517%를 넘기며 2500만원 넘는 수익금을 모았다. 지난 16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최한 ‘2019 사회적경제 IR 오디션 및 크라우드펀딩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변의현 우시산 대표는 “크라우드펀딩이 아니었으면 자금난을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윤리적 소비가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울산의 문화적 자산인 고래로 지역을 알릴 뿐만 아니라, 수익금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바다 생태계 보호 활동을 지원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대출형’ 성장세 가팔라…부작용 막을 ‘P2P금융법’ 국회 통과

'P2P대출형'은 개인이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하고, 투자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자료=한국p2p금융협회

국내 크라우드펀딩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유형은 ‘P2P대출형’이다. 개인에 대한 소액 대출 형태로, 개인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이용하고 투자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한국P2P금융협회에 따르면, 2019년 10월 말 기준 회원사의 누적 대출 금액은 5조 3000억원을 넘어서는 등 급성장 중이다.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을 이용하면, 기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 힘든 사업자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율로 자금을 빌릴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위험성은 있지만 금융기관의 저축 상품보다 고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P2P대출 플랫폼이 개인과 투자자 사이에서 대출 중계만 할 뿐,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허위 공시, 대출 돌려막기, 개인 유용 등 각종 사기·횡령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연체, 부실화가 커지면서 투자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금융위원회에서는 규제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기도 했다. 정부, 국회는 관련법 개정을 통해 투자자 보호 및 건전한 산업 육성을 이끌겠다고 나섰다. 지난 10월 31일 P2P금융법으로 불리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2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법 울타리 안에서 투자할 길이 열렸다. 향후 P2P업을 하려는 자는 금융위에 등록하고, 최소자기자본, 인적·물적 설비, 사업계획 타당성, 임원·대주주, 사회적 신용 등이 주요 요건으로 규정됐다.

강평중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과 사무관은 “그동안 규제가 없어 대출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는데, 개정법이 통과되면서 부작용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권에서 대출받기가 힘든 초기 사회적경제 기업은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이 더 필요하다. 착한 금융의 힘을 받아 건실하게 사업을 이어가는 사회적기업들의 따뜻한 사례가 더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가치’에 주목하는 투자자들…새 사업 시작, 재기의 발판 마련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주민 등으로부터 공간 조성 자금을 모아 문을 연 '월곶식탁'의 모습./사진제공=빌드

P2P대출형 크라우드펀딩에서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믿음’과 ‘고수익’이다. 손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이자율이 높아야 하고, 수익률이 낮다면 부도가 나지 않으리란 믿음을 줘야 한다. 최근에는 ‘가치’가 추가됐는데, 이자율이나 안정성은 낮지만 대출을 원하는 개인의 스토리에 공감해 기꺼이 투자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경제 기업이 진행하는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이 일반 기업과 다른 점이 바로 ‘가치’다.  가치 투자를 이끄는 대표적 플랫폼이 ‘비플러스’다. 비플러스는 공익 목적 프로젝트나 수익과 사회적가치를 함께 고민하는 투자자를 서로 연계한다. 개정법 통과 이전부터 다른 사회적기업을 통해 평판 조회를 거치는 등 부실 대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가동했다.

박기범 비플러스 대표는 “사회적기업의 크라우드펀딩 수익률은 약 4~8% 정도로 부동산이나 일반기업 등 이자율 10% 이상 고금리 상품에 비해 낮지만, 수익과 함께 사회적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비플러스를 통해 사업을 새로 시작하거나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있다. 예비사회적기업 ‘빌드’는 경기 시흥시 월곶동을 기반으로 주민 커뮤니티를 구성해 시민 자산화를 이끄는 팀이다. 2016년 로컬푸드 레스토랑 ‘바오스앤밥스’를 시작으로, 북플라워 카페 ‘책한송이’, 실내놀이터 ‘바이아이’, 지역 농산물 직거래 마켓 겸 공유 주방 ‘월곶식탁’을 매해 꾸준히 열었다. 

지난 8월 4호점 ‘월곶식탁’ 개점을 위해 비플러스를 통해 자금을 모았다. ‘연 수익률 2%, 멤버십 포인트 7%’를 제공하는 크라우드펀딩은 목표 금액 4000만원을 달성하며 성공했다. 예금 이자보다 싼 금리였지만 펀딩의 43%가 주민들의 투자로 이뤄졌으며, 지역 주민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협동조합 온리'는 임팩트 투자 플랫폼 '비플러스'를 통해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을 모집한 결과, 5000만원을 모아 경영난 해소에 나섰다.

또한 ‘협동조합 온리’는 지난해 10월 비플러스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인내자본 투자’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다. 경영 악화로 사용한 일수 대출을 일반 대출로 바꾸는 프로젝트로, 원금 상환 기간이 5년인 고위험 상품에 속했다. 

온리가 처한 상황을 듣고 어반비즈(꿀), 페어트레이드코리아(오일), 아름다운커피(커피), 모어댄(명함지갑), 동구밭(비누), 닥터노아(칫솔세트), 그래프트링크(팔찌), 이풀협동조합(약초차) 등 12개 사회적경제 조직이 투자자에게 줄 리워드를 제공하며 함께 뜻을 모았다. 가치에 공감한 투자자들이 모인 결과, 목표 금액 5000만원을 달성해 온리는 경영 정상화를 시작했다.

김명진 온리 이사장은 “폐업 이상으로 삶의 의지를 잃을 만큼 힘든 상황이었는데, 많은 사회적경제 당사자들의 도움 덕분에 자금이 모여 새로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며 “아직 경영난이 완전히 해소되거나 매출이 회복된 단계는 아니지만, 다시 출발한다는 마음으로 기회를 찾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