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 흔히 있을 수 있는 상황 중 하나는 성인 보호자의 동석입니다. 함께 온 보호자는 가정에서의 친권자 혹은 양육자인 경우도 있고, 학교 교사나 시설 및 기관의 담당자일 수도 있지요. 대부분의 성인 보호자는 당사자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도 같이 진료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간주됩니다. 물론 법적으로 성인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의료처치나 수술도 있지만 진료실 내의 상담이나 검사에서 반드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져야 할 상황이 있습니다. 공교육에서는 이미 ‘성적 자기 결정권’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가르칩니다. 그 의미가 타인과의 성적 관계나 행동에 있어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권리라면, 산부인과 진료에서 당사자 동의를 구하지 않은 성인 보호자의 동석은 이런 권리와 배치되는 행동이 아닐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료실에 청소년이 어머니와 함께 들어옵니다. 이미 성적 관계를 실천하고 있지만 어머니가 그 사실을 모른다면, 자신의 성적 행동이나 건강과 관련하여 필요한 상담과 검사를 받을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성기와 관련된 지식에서부터 성매개감염, 임신과 피임에 이르기까지 당장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담을 하지 못함으로써 그 순간 자신의 건강은 방치되는 것입니다. 더 극단적인 경우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자신을 대리하는 성인 보호자로부터의 폭력이 있는 상황에서는 그 사실을 알리는 순간부터 더 이상 자신이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가필수예방접종으로 만 12세 여아에게 6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하도록 되어 있는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접종에 대한 동의 역시 성적 권리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유두종바이러스 감염은 성매개감염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성적 행동으로 옮겨진 다는 것을 전제로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접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에게 이 주사가 왜 필요한지, 주사를 맞을 의사가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만한 나이에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가정, 학교, 병원 어디에서도 그 결정과 책임을 청소년 자신에게 맡기지 않고 있는 셈이죠.

이런 점에서 의료인도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보장하는 역할에 있어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일단 청소년이 혼자 산부인과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 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성인과 다른 차별적 시선과 응대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소년이 진료받기 위해서는 성인 보호자가 필요하다며, 연령 제한이 명시되지 않은 응급피임약 처방에도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진료 거부를 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임신중지시술에 있어서 부모나 성인 대리인 동의를 특별히 더 요구하기도 합니다.

성 정체성에 대한 권리는 더욱 심각합니다. 누구나 ‘엄마, 아빠’와 같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연애와 결혼에 대한 수많은 동화책, 애니메이션, 영상들뿐만 아니라 또래와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여자같다, 남자답다’와 같은 차별적 판단을 포함한 말들에 이르기까지 사회에서 나누고 있는 성별과 성애에 대해 민감해지고 스스로 살아남을 방법을 몸에 새기면서 자랍니다. 그 속에서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혹은 타인에 대해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을 부정당하고 ‘비정상’으로 치부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요. 공교육에서 성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삭제하는 것, ‘동성애자 전환치료’, 인터섹스 수술이나 트랜스젠더의 호르몬 치료 방치는 분명한 아동·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한 침해입니다.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는 사춘기 몸의 변화가 오는 시기에 필요한 의료적 개입을 받지 못함으로써 성인 이후에 불필요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청소년 역시 성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필요한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은 “도달 가능한 최상의 건강수준을 향유”할 권리를 가지며 유엔사회권위원회는 이를 위한 국가의 핵심의무사항으로 “모든 사람 및 집단이 차별적이지 않고, 편견이 없고, 근거 있는, 아동·청소년의 발달하는 능력을 고려한 성과 재생산 건강에 대한 포괄적인 교육 및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강조합니다.

성인 보호자로서 진료실에 함께 들어가기 전에 먼저 당사자의 동의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의료인으로서 아동·청소년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성적 지식과 건강과 관련된 상담을 하고, 동의를 구하고, 안심되는 상태에서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가 책임져야 할 포괄적 성교육을 어릴 때부터 차별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가 사랑받고 보호받을 권리에 대해 반대한다고 외칠 정도로 용감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아이가 사랑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나와는 달리 혹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어떤 마음과 태도를 견지하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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