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가난한 공장노동자 28명으로 시작한 협동조합은 이제 세계 96개국 265회원 단체가 가입하고 조합원수가 10억 명에 달하는 국제연합 산하 최 대 비정부기구로 성장했다. 협동조합 100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협동조합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그 역사 속으로 안내한다.

1. 1844년 12월 21일. 영국의 공장노동자 28명이 출자금을 모아 협동조합을 열었다. 22년 뒤 1851년 로치데일 소비자협동조합을 시작한다. 사진 영국협동조합연합회

어두컴컴한 영국 로치데일의 낡고 빛바랜 벽돌건물 앞,?1844년 12월 21일. 동짓날 저녁은 스산했다. 조합원 28명은 지난 1년 동안 각자 출자금 1파운드(현재 40만 원 정도)를 만들었고, 어렵사리 모은 28파 운드로 1층 토방을 빌려 협동조합을 열었다.


얼마 안 되는 출자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란 뻔했다. 버터 25킬로그램, 설 탕 25킬로그램, 밀가루 6봉지, 곡물가루 1봉지, 양토 24개가 진열 상품의 전 부였다. 1층 토방은 창이 작아 낮에도 어둡고 추웠는데, 상품마저 썰렁했다. 새로운 경쟁상대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찾아온 마을상인들은 이 부끄러울 정도로 초라한 가게를 보고 비웃으며 돌아갔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한 로치데일협동조합은 정확한 물량, 불순물이 들어있 지 않은 좋은 품질, 정직한 판매, 이익이 ‘남으면’ 조합원에게 이용한 만큼 배당을 해주는 ‘이용액배당’ 같은, 로치데일 주민들이 정말 바라는 활동을 하면서 들불처럼 커져갔다. 그 뒤 22년 동안 조합원수 는 50배, 자본금은 400배로 늘어났고, 1851 년에는 날마다 새로운 점포를 열었다. 소비자협동조합의 시작이었다.

‘처음에 미약하였으나 나중에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28명의 가난한 공장노동자 로 시작한 협동조합은 이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최소 10억여 명 넘는 조합원이 참 여하는 세계의 나무로 자라나고 있다.

협동조합의 연합회가 만들어지다

1872년 독일의 노이비트에서 ‘라인농업협동조합은행’이 설립되었다. 라인 협동조합은행은 라인주에 있는 75개의 신용협동조합 회원이 참여한 연합회 로, 단위조합에 대출을 해주거나 결산뿐만 아니라 공동구매를 담당했다.

1849년 독일에서 라이파이젠이 농민 조합원으로 한 신용협동조합이 시작됐다. 라이프파이젠은 신용협동조합의 아버지라 불린다. 사진은 라이파이젠 신협의 로고

독일은 자본주의 발전이 늦었고, 라인 강변의 소농들은 돈이 없었다. 1849 년 라이파이젠은 프람멜스펠트 빈농구제조합을 설립해 농민들이 가축을 구 입할 수 있도록 했다. 조합원 60명이 무한연대책임으로 자본가의 돈을 빌려 가축을 사고, 5년 동안 나누어 갚는 제도를 도입했다. 라이파이젠 신용협동 조합은 마을이나 교구처럼 조합원이 서로 눈에 보이는 작은 규모로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조합마다 자금수급 조정을 할 수 있는 연합조직 이 필수였다.

국제조직의 탄생과 협동조합 원칙의 제정

1895 런던에서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처음 열렸다. 1995년 100주년을 맞아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을 발표했다. 사진은 국제협동조합연맹 (ICA)로고
1895년 런던에서 국제협동조합연맹(ICA) 1차 대회가 열렸다. 1884년 프랑스와 영국의 협동조합운동가들이 협동조합발전을 위해 국제 상호교류를 하 자고 제안한 지 11년 만의 일이었다. 국제협동조합연맹은 많은 산고 끝에 태어났다. 숱한 논란 속에서 생산자협동조합 말고도 소비자협동조합, 농업 협동조합, 신용조합 같은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을 포괄하여 설립하되 협동조합원칙에 대해 지속해서 토론하면서 만들었다.

그 뒤 국제협동조합연맹은 협동조합원칙을 만들고 보완해 나갔다. 설립 40 년 만인 1937년 프랑스 파리대회에서 7대 원칙을 정했고, 196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수정원칙을 제정했으며, 협동조합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1995년 100주년 행사에서 영국 맨체스터에서 현재의 원칙을 담은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을 발표했다.

지금은 96개국 265회원 단체가 가입하고 조합원수가 10억 명에 달하는 국제연합 아래 최대 비정구기구로서, 소비자, 농업, 주택, 신용, 노동자생산, 장인(匠人), 어업협동조합 등 모든 협동조합유형을 포괄한다

노동자협동조합의 새로운 시작, 몬드라곤

1956년 스페인, 몬드라곤에서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가 석유난로를 생산하는 노동자협동조합 을 만들었다. 현재 120개 협동조합을 가진 스페인 고용순위 3위 협동조합이다.

스페인의 바스크지방은 산악이 많은 험준한 지형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시골마을인 몬드라곤에 1941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가 부임 했다. 호세 마리아 신부는 교육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10대 소년들에 게 기능과 산업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기술학교를 만들었다. 1943년에 20명으로 시작한 기술학교는 졸업생 11명 가운데 개척자 5명과 함께 1956년 ‘울 고’라는 석유난로를 생산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자칫 평범한 한두 개의 노동자협동조합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몬드라곤은 1960년 협동조합은행인 노동인민금고를 만들면서 크게 발전해 나갔다. 현 재는 120개 협동조합과 130여 개 자회사가 있는 스페인 고용순위 3위의 협동조합그룹이 되었다. 자본주의의 한계와 사회주의의 실패에 따라 개인이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서로 경쟁이 아닌 힘이 되어 주는 새로운 사회의 모 델을 생각하는 사람들에 큰 영감을 주고 있다.

?사회를 향해 손을 내미는 협동조합

1974년 이탈리아 볼로냐에는 독특한 협동조합이 선을 보였다. 그전까지 협 동조합은 사회경제적 약자인 조합원들이 힘을 모아 공동의 이익을 만들어 가는 공익을 추구했지만, 새로운 협동조합은 사회경제적 약자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방향으로 공익의 의미가 확대되었다.

까띠아이(CADIAI)는 병자, 고령자, 아동에 대한 거주를 원조하는 협동조합 인데, 말 그대로 국가의 복지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협동조합이다. 가사원조노동이나 간병노동을 하던 여성 27명이 모여 불안정 한 비정규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했다. 그 뒤 이탈리아에서 ‘사회적협동조합법’이 만들어지고 공적기관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업영역을 확 장했다. 현재 직원은 1,246명이며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을 포함해 한해 27,400여 명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원칙인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는 협동조합의 사업 자체로도 가능하다는 모델을 보여준다.

고베대지진과 협동조합의 활약

1995년 1월 17일 일본 효고현(兵庫縣)의 고베시와 한신 지역에서 당시까지 일본 지진관측사상 가장 큰 진도 7.2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6천여 명의 사망자와 140조 원의 피해가 발생한 대재난 속에 고베시민들은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산적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고베 생협은 가장 먼저 움직였다.

정부가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고베생협은 150개 점포를 모두 문을 열어 보유한 물건을 원래 가격으로 판매했으며, 생협중앙회는 전국 생협에 긴급구호를 요청하여 지원품을 보내도록 하였다. 생협 봉사자들은 고베 부 근에 도착하여 교통망이 끊어진 상황에서 자전거로 물품을 운반하기도 했 다. 그들은 실어온 것은 희망이었다.

고베시민 절반은 고베생협 조합원이었다. 일상에서 협동 활동으로 쌓인 주 민들의 연대정신과 전국 생협의 발 빠른 지원은 60년 전 아비규환과 공포, 폭력으로 물든 동경대지진과 다르게 고베대지진을 협동과 연대로 꽃핀 감 동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1961년의 농협과 1986년의 한살림농산

우리나라 협동조합 가운데 가장 활발한 것은 농협과 생협이다. 군사정부가 주도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6월 농협중앙회의 설립을 의결했다. 그 뒤 두 달 만인 8월, 군 조합 140개소, 이동조합 21,042개소, 특수조합 101개소로 구성된 농협중앙회가 출범했다. 협동조합 정체성에 대한 끝없는 의문 에도 불구하고 농협은 현재 세계 협동조합 가운데 3∼4위 사업규모를 갖추 고 있으며, 세계농업협동조합을 주도하고 있다.

1986년 한국에서는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 한살림 농산이 시작되었다. 사진 한살림

반면 농협의 민주화를 지속해서 제기하던 가톨릭농민회 회장을 지낸 박재 일 선생은 25년 뒤인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한살림 농산’이란 작은 상회를 연다. 한국형 소비자생협의 첫 발걸음이었다. 우리나라의 협동조합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다른 시작과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

2011년 12월 29일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이, 앞으로 맞이할 협동조합 200주년에서 기념비적인 의미를 갖게 될지 여부는 이제 우리 모 두의 과제이다.

글│김기태

김기태 님은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이다. 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했고 가톨릭농민회에서 활동했으며 한국농어민신문 기자와 지역농업네트워크 이사를 지냈다. ≪농민조합원을 위한 농업협동조합의 이해≫를 펴냈으며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운동을 연구,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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