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번째 시집 '엄마 반가사유상'을 출간한 손종수 시인을 서울 종로구의 한 미술관에서 만났다./사진=전석병 작가

“도대체 시인들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 돈도 되지 않는 시를 쓰나?”

오랫동안 시를 써오면서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라고 했다. 당장 돈이 안 되지만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견딜 수 없는 정신적 갈증과 허기 때문”이라고.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풍족해졌다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몸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우기에 바쁘다. 이런 때 시는, 문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본지에 칼럼 ‘생각의 풍경’을 연재 중인 손종수 시인(61)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2014년 계간지 ‘시와 경계’ 가을호를 통해 등단한 그는 50대 중반 나이에 공식적으로 ‘시인’이 됐다. 등단 전에는 바둑계와 인연을 맺어 1989년 ‘월간 바둑세계’를 시작으로, ‘주간바둑361’ 편집국장, ‘일간스포츠’ ‘중앙일보’의 관전기자 등으로 꼬박 30년을 활동했다. ‘바둑시인’이라는 특별한 수식어를 가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2017년 첫 시집 ‘밥이 예수다’를 출간한 이후 지난 9월 두 번째 시집 ‘엄마 반가사유상’을 출간한 그를 만났다.


손 시인은 '엄마'라는 단어가 나오자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내가 써온 거의 모든 글의 동력이 엄마로부터 비롯됐다"고 말했다./사진=전석병 작가

-올해 나온 두 번째 시집을 소개해주세요. 시인의 말에 “어쩐지 키가 조금은 자란 느낌이다”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9월 시집이 나오고 출판기념회를 3번 진행했는데, 주제를 ‘위로’라고 잡았습니다. 제가 시를 쓰는 이유는 저 자신에 대한 위로가 첫 번째이고, 나아가 제 시를 읽는 독자들도 치유가 됐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첫 시집은 오래전에 써놓은 것들이 많았고, 스스로 긴장이 돼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딱딱하고 난해한 내용이 많았어요. 이번 시집의 시들은 의도적으로 쉽게 쓰려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러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표제작인 ‘엄마 반가사유상’은 제가 마음이 힘들었을 때 파주 약천사에 방문해 ‘약사여래불’ 앞에서 합장하고 돌아온 밤, 엄마가 꿈에 나타난 뒤 생각을 쓴 시입니다. 생전 익숙한 모습이 아닌 부처님 반가사유상의 생김새를 한 엄마였죠. 꿈을 꾸고 나서 곧바로 막 쓰게 됐습니다. 반가사유상에 엄마를 붙인 단어는 아마 처음일 거예요. 평범하지 않고 독특한 느낌을 주니까 주변 시인들과 편집자가 이 시를 표제작으로 추천했습니다.

첫 시집은 ‘밥이 예수다’였고, 이번 시집은 ‘엄마 반가사유상’이라 종교적인 무언가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어요.(웃음) 저는 종교는 없지만 ‘영적 교감’은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미국의 유명 팝 가수 닐 다이아몬드의 음악을 들을 때나 프랑스의 천재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을 볼 때면, 그 사람과 전혀 인과관계가 없어도 교감이 일어나 시로 연결돼요. 

-“내가 써온 거의 모든 글의 세계관, 동력이 엄마로부터 비롯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찾자면 ‘엄마’일까요?

▶지금도 ‘엄마’라는 호칭이 나왔을 뿐인데,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옵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인연’ 중 ‘엄마’라는 글이 있어요. “내가 다른 사람한테 칭찬받고 잘된 부분은 모두 엄마에게 물려받았고, 부족하거나 모자란 부분은 엄마와 오래 생활하지 못해서”라는 내용이 담겼는데, 저한테 그대로 적용돼요. 저는 10대 후반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객지를 오래 떠돌았거든요. 1997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산 세월이 얼마 되지 않아 후회가 많이 남았어요.

시에 엄마 얘기를 많이 썼는데, 이번 시집에 훨씬 더 많아요. 첫 시집에서는 엄마에 대한 감정이 너무 격해서 감당이 잘 안 됐는데, 이번에는 감정을 잘 다독이고 가라앉혀서 시를 쓸 수 있게 됐어요. 어려서는 잘 몰랐는데 성장한 뒤에 돌이켜보니, 저희 어머니 같은 분이 없더라고요. 가난하게 살면서도 누구에게도 굽신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사셨어요. 김장철 돈이 없어 재래시장에 버려진 배추 겉대를 주워 김치를 담아 먹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죠. 살면서 그런 일들이 참 많았는데, 엄마에 관한 생각들을 시에 담았어요.

2017년 출간한 첫 시집 '밥이 예수다'와 2019년 출간한 두 번째 시집 '엄마 반가사유상' 표지 이미지./사진제공=도서출판 북인

-무엇을 이루기에 늦은 나이란 없지만, 50대 중반 등단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평소 소재는 어떻게 찾아 시로 완성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해 시인을 꿈꿨지만 금방 포기했습니다.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도 중간에 그만뒀는데, 주변에서 ‘시 같은 거 해서 밥 못 먹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저에게는 ‘가난’이라는 명제가 너무 컸기에 섣불리 시인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후 습작처럼 꾸준히 시를 썼고, 우연한 기회에 2014년 ‘시와 경계’를 통해 등단했습니다. 물론 꼭 등단해야만 시를 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등단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달갑진 않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더라고요.

저에게는 일상이 곧 시라서 언제 어디서든 소재를 만납니다. 오늘처럼 기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시다가도 무언가를 느꼈다면 바로 쓸 수 있는 거죠. 예전에 파스타를 먹은 다에 쓴 ‘파스타 하루’, 맛있는 아포카토 가게를 발견하고 쓴 ‘에스프레스 아포카토’는 15분 만에 금방 쓴 시들이에요. 반면 엄마에 대해 쓴 ‘검은 방’은 제가 쓴 거의 최초의 시에 가까운데, 감정적으로 정리가 잘 안 돼서 몇 년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시인이 되려면 습작기를 오래 거쳐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습(習)이 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보고 특정 단어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준비해 가지고 있던 단어를 연결시키는 것이죠. 시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은유 같은 표현법은 오래 연습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어려우니까요.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라’는 글쓰기 계명이 시인을 포함해 모든 작가에게 해당하는 말 같아요.

-등단 전에는 바둑계에서 오랜 시간 몸담았습니다. 시와 바둑 사이에 공통분모가 있나요?

▶1989년 3월 8일 ‘월간 바둑세계’라는 잡지에 편집 아르바이트로 들어가 인연을 맺은 뒤, 올해로 벌써 30년이 됐어요. 은퇴한 프로기사이자 정치학 박사인 문용직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나는 시 한 편과 바둑 한 판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고요. 그 말이 굉장히 멋있고 공감이 돼서 그 친구에게 ‘네가 나보다 더 시인 같다’고 말했죠.(웃음)

바둑은 규칙이 간단해서 5분이면 배울 수 있는데, 잘 두기는 참 어려워요. 시도 그냥 쓰면 되니까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좋은 작가가 되는 건 아주 힘들죠.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면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바둑은 무조건 생각을 해야 하는 게임이라서 ‘생각의 힘’이 매우 중요해요. 시도 사유의 힘으로 쓰는 거니까 그런 점이 비슷합니다.

또 바둑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경기가 끝난 뒤 승자와 패자가 머리를 맞대고 ‘복기(復碁)’하는 과정이 있는데요. ‘어디에서 잘못됐는지, 무엇이 최선이었는지’ 등을 논하면서 상대를 높여주는 하나의 미덕입니다. 시를 놓고 보면 여러 시인들이 서로의 작품에 대해 치열하게 평하고 이야기하는 ‘합평회’가 있는데, 이 과정을 많이 거친 시인일수록 시가 좋아요.

손 시인은 "바둑은 한번 판에 놓으면 돌은 움직이지 않지만, 상황은 끊임없이 달라지는 '정중동'의 게임"이라며 "시에서 '은유'가 조용한 가운데 움직임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사진=전석병 작가

-그렇다면 ‘당장 돈 안 되는 문학’이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시가 돈이 안 되는 건 틀림 없어요.(웃음) 아무리 유명한 시인이라도 시만 써서는 먹고살 수 없으니, 출판사를 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해요. 그럼에도 ‘왜 시를 쓰는가’라고 했을 때, 시인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일 거에요. 저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무얼까’를 생각했을 때 글쓰기였어요. 또 다른 이유는 ‘위로와 치유’죠. 시를 쓰면서 저 자신부터 치유를 받았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효험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에 필요한 도구, 바로 문학과 예술의 최대 가치예요.

한편에서는 요즘 시가 너무 어렵고 난해해서 읽기 힘들다는 평도 많아요. 독자한테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라는 반응부터 나오는데,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겠어요. ‘일상이 곧 시’라는 것도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일, 보통 사람 가까이 있다는 공감이 필요하다는 뜻에서예요. 독자들이 시, 문학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작가들이 더 노력해야 합니다. 대중이 공감하고 감동하는 작품들이 주류가 됐으면 해요.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지,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 시는 사물을 보고 생긴 사유를 쓰는 경우가 많아서 ‘이미지즘’이 강하다는 평을 많이 들어요. 실제 사람들의 생활이나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사유가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끼거든요. 앞으로는 지평을 넓히는 의미에서라도 사람들의 일상을 더 관찰하고 싶습니다. 등단할 때는 매년 시집을 한 권씩 내고 싶었는데, 여건상 2년마다 출간하게 돼서 죽기 전에는 10권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자전적 이야기, 바둑을 소재로 한 소설책이나 수필집도 내고 싶어요. 

저 역시 생계 위해 지금도 바둑 관련한 취재나 관전기 작성 같은 여러 일들을 하고 있어요. 바둑이나 글쓰기를 소재로 한 강의도 하고요. 이미 정해진 제 삶의 방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특별히 고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라는 말처럼 스스로 자립하지 않으면 남을 돕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 건강하게 오래 글 쓰는 게 바람입니다.


손 시인은 "주위에서 '아름답다'는 말을 하는 경우는 많지만, 실제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아름답다는 말 대신 하고 쓰고 풍경들을 찾아 쓰는 작업이 즐거워서 수필도 그런 소재로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사진=전석병 작가

마지막으로 손 시인에게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시 한 편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번 시집에 실린 ‘아름답다는 말 대신 쓰고 싶은 풍경들’을 꼽았다. “원래 이 시를 표제작으로 삼고 싶었다”면서. 시의 일부를 발췌해 올린다.

“푸른 언덕 삼층집 옥탑방 창문으로 내다본 이른 아침 해오름의 찬란/ 마을공원 울타리 아래 담배꽁초 쓸어내고 정겹게 줄지어 선 화분들/ 주택가 골목길 모퉁이 담벼락 밑이나 돌계단 틈새로 얼굴 내민 민들레/ (중략) 어두운 골목 비탈길 오를 때 마을공원 축대 위에 도열한 길고양이들의 환호/ 모처럼 구름 걷힌 밤하늘 달과 금성과 화성 그 은은한 빛의 트라이앵글/ 그리고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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