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탓이 아니야”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아!”

“죽음에서 피어나는 꽃이 있다”

“혼자가 아니야”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

가족 중 누군가 자살하면 그 죽음은 당사자의 것만이 아니다. 남은 가족이 겪는 트라우마는 상상할 수 없다. 이처럼 상처를 안은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모였다. 지난 16일 정동 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2019 세계 자살유가족의 날’ 행사다.

“함께 하는 사람들, 따뜻한 친구들이 확대돼 당사자와의 따뜻한 연결을 계기로 촘촘한 안전 사회가 구축이 되길 바랍니다."

이번 행사는 '자살유가족×따뜻한 친구들'(대표 김혜정) 주관, '생명존중시민회의'(상임대표 박인주) 주최로 진행됐다. 자살유가족 당사자이기도 한 김혜정 대표는 “자살유가족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존중받는 사회를 희망한다”며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생명존중시민회의 박인주 상임대표는 “자살유가족의 슬픔 회복을 위해 이제는 자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죽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장 중앙에 꽃과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 카드가 장식되있다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 시 낭독이 끝나는 순간.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마지막 시구와 함께 참여자들의 숨과 생기가 더해졌다.

행사에서는 남동생과 남편의 자살을 경험한 한국 유가족 당사자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야기를 마친 유가족 당사자들은 “그동안 가족들에게도 숨긴 채 꺼내놓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놓고 나니 마음의 묵직함이 조금은 가벼워져 편안해졌다”고 밝혔다. 또 다른 당사자는 “생면부지의 사람이 이렇게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경험이며 어둠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며 마음을 털어놓았다.

뒤이어 자살유가족×따뜻한 친구들의 2018-2019년의 발자취를 동영상을 통해 함께 나누었다. 영상에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당사자가 주최가 되어 열렸던 2018년 행사와 작년부터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자조서클 ‘우리들의 다락방’ 2019년 활동들이 담겨졌다.

'우리들의 다락방' 자살유가족 자조서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행사를 위해 부드러운 기타 연주의 음률이 자살유가족 당사자와 함께 참석한 따뜻한 친구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생명존중시민회의 임삼진 공동대표의 진행으로 일본 유가족들의 사례도 소개됐다. 임 대표는 “일본의 경우, 유가족 당사자의 목소리가 활동의 출발점이 되어 자살 예방을 넘어 자살 대책으로 한 단계 승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유가족이 유가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역 기반의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살유가족과 따뜻한 친구들의 공동체 구축은 물론, 점진적인 확산을 위해 서클댄스를 느리지만 편안한 리듬에 맞춰 함께 추며 서로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앞날을 축복했다. 서클댄스는 이선, 강휴 강사가 초빙되어 고요한 움직임으로 상호간 깊은 공감이 형성됐다.

당사자와 따뜻한 친구들을 너머 생명이라는 존재로 함께 서클댄스를 추고 있다

참석자들이 희망하는 사회를 돌아가며 힘차게 외치며 서로를 격려하는 악수와 포옹의 행렬이 더해져 행사장 안은 훈훈했다.

행사장 안에는 꽃과 다양한 모양의 인형, 그림책이 촛불과 함께 전시됐으며 개나리빛, 연두빛, 주황빛의 습자지가 군데 군데 장식돼 참가자들의 다양한 에너지들이 흘러가고 채워지는 것을 형상화했다. 참가자들 중에는 오브제로 설치된 투명한 우산에 자신이 희망하는 욕구와 가치들을 색색별 습자지에 담아 우산을 직접 써가며 스스로에게 희망의 빛을 선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참가자들의 다양한 에너지가 흘러가고 채워지는 것을 형상화한 오브제가 전시돼 있다

사진 제공=자살유가족×따뜻한친구들 / 생명존중시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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