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이 개최한 ‘2030 세이가담-로컬, 가치를 담은 미래’ 컨퍼런스에서는 사회적경제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가치로 '지역'을 조명했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 울릉도, 강원도 등 전국 각지에서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콘텐츠로 활동하는 이들을 통해 지역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했다. 본지는 이번 컨퍼런스를 시작으로 지역에 기반해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만들어가는 로컬크리에이터들을 연속으로 조명해 본다.

“그럼 너 이제 어디로 가니?”

옥천 지역잡지 ‘월간 옥이네’를 퇴사한 그가 요새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문정리에 사는 김예림 기자는 3년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퇴사했다. 인터뷰 섭외를 위한 전화 통화에서 "어쩌지, 새로운 로컬 크리에이터를 섭외해야 하나” 걱정부터 들었다.

“연고가 없는 지역에 살고 있으니 당연한 질문이겠죠.”

김 전 기자는 경기도 안산시 출생, 연고 없는 지역에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게 조금은 어색한 나이 22세다. 지역신문사 인턴으로 시작해 조금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3년 옥천군을 누비며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더 성장하고자 회사 바깥으로 나왔다. “아는 게 더 많아지면 같은 얘기를 들어도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공식은 그에게 옛말에 불과했다. 성장은 성장이고 서울은 서울이다. 김 기자는 계속 옥천에 남기로 했다. 그동안 지역에서 형성해 온 관계라는 자산을 이용해 더 큰 성장을 계획하고 있다. “저의 모든 관계가 이곳에 있는걸요. 일단 이 지역에서 아등바등 살아봐야죠. 재밌고 새로운 일들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사를 통해 옥천에 뿌리내린 청년

김 기자는 충청북도 옥천군을 기반으로 하는 언론사 ‘옥천신문’에서의 인턴십으로 옥천군과 첫 인연을 맺었다. 옥천신문은 한국 지역신문 최초로 군민의 모금으로 창간한 ‘군민주’ 신문사다. 시작도 지역민과 밀접했고 현재는 5만 명 군민 중 4천여 명의 유료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지역의 공공성을 지키는 풀뿌리 언론’을 표방하고 있다.

제천 간디학교에서 소식지와 학교신문을 만들던 경험이 옥천신문에서의 직업체험을 제안받았다. 그렇게 인턴십 활동으로 옥천신문 기자들과 함께 옥천군의 구석구석을 취재하면서 “여기서 일하면 사무실보다 훨씬 재밌겠다” 생각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경기도에서 서울로 가느라 올라탄 붐비는 지하철에 학창 시절 때부터 지쳐있던 터였다. 부모님도 별다른 반대가 없었고 그렇게 옥천신문에 입사했다.

옥천신문의 문화콘텐츠사업에서 출범한 '고래실'이 발간하는 옥천군 지역잡지 '월간 옥이네'. 지역잡지 중에서도 군 단위의 콘텐츠는 드물다고 한다./사진=월간옥이네 페이스북.

2016년 옥천신문은 지역신문사로 30년동안 쌓은 문화콘텐츠를 사업화시키기 위해 사내 문화사업단을 꾸렸다. 이 사업단은 ‘고래실’이라는 독립법인으로 출범해 2017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돼 지역문화창작공간 운영 등 지역문화사업을 벌였다. 2019년에는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문화사업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게 지역잡지 ‘월간 옥이네’ 발간이었다.

김 전 기자는 2017년 7월 창간부터 ‘월간 옥이네’ 기자로 활동했다. 창간 준비를 위해 수원의 ‘사이다’ 등 여러 지역잡지 사례를 탐방했지만 옥천군처럼 작은 지역의 잡지는 없었다. 친구들은 “그 작은 동네에 쓸 게 그렇게 많냐” 물었다. 하지만 그에겐 “쓸 얘기가 너무너무 많았다”. 지역 정치인, 상가 아저씨, 수십 년 째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는 할머니까지 김예림 기자에겐 작은 동네 옥천은 기록하고픈 이야기로 가득했다.

“재밌는 거 해보자” 모인 옥천의 문화기획집단, 옥뮤다

김 전 기자는 개인적 성장을 위해 공부를 하는 한편 옥천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기획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어울려 지내던 다른 옥천 청년들이 있었다. 4명의 청년은 “옥천에서 재밌고 예쁜 것 해보자” 입을 모았고 올해 8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팀 이름은 ‘옥뮤다’다.

옥천은 ‘웃픈’ 별칭이 있는데,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따온 ‘옥뮤다’다. 우리나라 국토의 중앙 부근에 위치한 옥천군에는 대형 물류회사의 허브 화물터미널이 있다. 대량의 물류가 옥천을 거쳐가는 만큼 택배 분실·누락의 거점이 되기도 한다. 해당 물류회사를 이용하다 분실을 경험한 이용객들이 옥천에 ‘옥뮤다 삼각지대’라는 별명을 붙였다.

옥뮤다의 로고. 버뮤다 삼각지대 말고 '출구없는 매력'의 옥뮤다./사진=옥뮤다 페이스북.

김전 기자를 포함한 옥천의 4명이 뭉쳐 ‘옥뮤다’를 결성했다. 택배 분실의 거점이 아닌 ‘출구 없는 매력’ 뽐내는 옥천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옥뮤다파티’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기획하는데, 최근에는 가수 겸 영화감독 ‘이랑’을 섭외해 목장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이랑의 목장음악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준비한 100석 전석이 매진됐다. 전국에서 모인 관객에게 시골목장에서의 낭만 가득한 시간을 선사했다. 10월부터는 투어 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있다.

9월 옥뮤다파티로 기획한 '이랑의 목장음악회'는 준비된 좌석 전부 매진됐다./사진=옥뮤다 페이스북.
옥뮤다는 11월부터 투어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사진=옥뮤다 페이스북.

로컬의 미래, “어렵지만 찾기는 찾아야죠”

부쩍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인 줄 알았는데, 옥천에선 “관심을 체감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에서 주목할 만 한 현상을 만들어내지만 그것만으로 괄목할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그는 “옥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전부 떠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청년이 남을 수 있도록 조금 더 적극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주어진 ‘로컬의 미래’라는 다소 무거운 타이틀에 대해선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한편 “미래를 지치지 않고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엄청난 책임을 느낀다기보다 그저 앞으로도 옥천에서 살기로 했고, “여기서 일단 살 길을 찾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한 곳에 평생을 머물거라 다짐하기에 그는 아직 젊다.

가수 겸 영화감독 이랑과 옥뮤다 멤버들. 김예림 기자는 왼쪽에서 두 번째./사진=옥뮤다 페이스북.

다만 확실한 건 그가 훗날 어딜 가든 그동안 겪은 ‘옥천살이’의 경험이 남아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김예림 기자는 퇴사하는 날 선배가 해준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전에는 누가 떠난다 하면 말렸는데, 이제는 응원해주고 싶다. 지역에 살다 다시 대도시에 간다고 나쁜 게 아닐뿐더러 언제든 옮겨갈 수 있는 거다. 다만 이곳에서 남들과는 다르게 보았던 것, 배운 것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옥천이라는 ‘작은 동네’에 또 새로운 볼 것들을 찾고, 또 만들어 갈 그의 행보를 응원하게 되는 한편 그가 갖게 될 남다른 시각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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