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시간, 똑같은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원하는 때에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개인의 업무 스타일에 맞춰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 방식을 ‘리모트 워크’라 하는데,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보편화했다. ‘혁신’이 중요한 스타트업에서 다양한 지역의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업무 자율성’은 필수라고 한다.
이런 주장은 “인재들의 요람인 실리콘밸리에서 출퇴근 시간을 확인하는 회사는 없다”로 연결된다. 지난달 말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위)에서 개최한 대정부 권고안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4차위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다양한 노동 형태를 포괄하도록 ‘주 52시간제 일률 적용’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병규 위원장도 이 맥락에서 발언을 했다. 성공한 1세대 벤처인이기도 한 그는 “주 52시간제가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측면이 있지만, 당장 내일 망할지 모르는 스타트업에도 적용되면 혁신은 멀어진다”며 “국가가 개인의 일할 권리를 뺏어 의도치 않게 혁신을 막는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시대의 ‘인재’란 전통적 노동자와 달리 일한 시간이 아닌, 오직 성과로만 평가받기 때문이라고.
권고안 발표 이후 노동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참여연대는 “노동 시간이 아닌 성과로만 평가받고 해고와 이직이 일상인 인재는 누구를 위함이냐”며 “반(反)노동적 권고를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정의당에서는 “과로가 일상인 한국사회에서 ‘장시간 노동을 선택할 권리’란 허구”라면서 “기업의 이득이 아닌 보통 시민들의 이해를 생각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일하고 싶은 시간과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고, 성과로만 평가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만큼이나 될까. 4차위에서 우리 사회의 경쟁력을 높일 주체로 규정한 ‘인재’란, 다수의 시민이 아닌 소수의 엘리트만 해당하는 듯했다. 시간을 들여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먹고 사는 절대다수의 ‘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권고문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 과로사, 산업재해. 4차 산업혁명은 국내에서도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노동 현실에서 이런 단어는 여전하다. 성과로 평가받는 인재는 중요하다. 하지만 장시간 업무에 묶인 노동자들과 달라진 환경에서 이들의 권리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 기본권을 지키며 미래를 내다보자는 주장이 혁신을 거스르는 시대착오적 발상인지부터 논의를 해보자는 것이다.
2020년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분신한 전태일의 사망 50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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