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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 '미소,' '청소연구소,' '배민커넥트,' '쿠팡플렉스,' '알바천국,' '째깍악어,' '에어비앤비,' '클래스101,' '숨고(숨은고수),' '놀담,' '짐싸'… 이 이름들을 모두 알고 있다면, 생활 편의에 있어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는 편이라 자부해도 좋다. 혹은 이 중에 일부라도 휴대전화에 앱(어플리케이션)이 깔려 있고 여러 차례 이용해본 경험이 있다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생활서비스에 익숙한 사람일 터.

그만큼 휴대폰 어플리케이션 또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각종 상품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중개해주는 ‘플랫폼 경제’는 한국에서 익숙한 모습이다. 유난히 발달된 인터넷 인프라와 유통 인프라를 통해 ‘물건’의 구매를 연결하는 온라인 소비시장은 일찍부터 발달해 있었지만, 최근 들어 이제는 물건뿐 아니라 ‘노동’을 판매하는 데까지 그 영역을 확장했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고객에게 더 편리하고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근로자들 역시 더 쉽고, 간편하고, 자유롭게 일하며 부가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그런데 이런 플랫폼을 통해 직접 제공되는 서비스(노동)가 어떤 방식으로 이용자의 집 앞 또는 집 안까지 찾아오게 되는지, 그 안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서비스를 받는 사람, 그리고 그들을 연결하는 플랫폼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고 어떤 이익과 어떤 부담을 나누어 가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플랫폼을 통한 생활서비스 경제의 명(明)과 암(暗)

플랫폼을 통해 생활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단시간 내에 이렇게 증가하고 성장한 데는 플랫폼 경제 자체가 가지는 특성의 영향이 크다. 플랫폼 기업은 물건이든 노동이든 상품 그 자체를 제공하지 않고 상품의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중개 역할만을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비용과 위험, 책임은 플랫폼 기업이 아니라 수요자와 공급자 당사자들에게 돌아간다.

노동력 고용이나 생산수단과 같이 기업을 ‘무겁게’ 만들고 성장과 함께 증가하는 비용이 극적으로 감소하게 됨에 따라 가볍고 빠르게, 지리적 제약 없이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자본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또 적은 위험으로 창업을 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많은 스타트업, 그리고 사회적경제 주체 중 상당수도 중개(intermediary) 역할을 수행하는 플랫폼 형태의 창업을 기획하곤 한다.

다만 동일한 특성에 의해 예전에는 부담하지 않았던 비용과 위험,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당사자도 있다. 첫째로는 플랫폼을 통해 노동을 제공하는 플랫폼 종사자들이다. 배달노동자를 예시로 들어보면, 매달 고정적으로 지급되던 월급 대신 건당 지급되는 수수료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각종 보험이나 안전문제 역시 오롯이 본인의 책임이 된다. 배달에 필요한 이동수단을 스스로 마련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 배달처에서 다음 배달처로 이동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도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다. 특히 플랫폼 생활서비스는 단가가 낮은 노동을 중심으로 번져나가고 있는데, 이처럼 대가가 적고 대체가능한 노동 영역에서 ‘유연하고 선택적인 노동’과 ‘불안정 노동(precarious work)’은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플랫폼 기업은 ‘부가수익’을 강조하지만, 현실적으로 상당수의 종사자는 이를 전업으로 하고 있어 ‘질 낮은 노동’에 종사하는 인구가 증가하는 괴리 역시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 비용이 소비자에게, 또는 사회 전체로 전가되며 통제할 수 없는 형태로 번져나가기도 한다. 플랫폼 기업은 중간 단계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같은 서비스를 더 낮은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일부 사실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기업은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같은 서비스’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고용이라는 직접적이고 강력한 관계가 사라진 관계에서는 감독과 책임 역시 공백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례로는, 최근 큰 화제가 되었던 ‘배달음식 빼먹기’를 들 수 있겠다. 플랫폼을 통해 건별로 음식주문에 대한 배달을 수행하는 ‘라이더’ 중 일부가 고객에게 배달되는 음식을 몰래 빼먹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플랫폼과 개별 음식점 모두 라이더와 고용관계에 있지 않다보니 직접 라이더를 통제하거나 대신 책임질 주체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또한 고용을 통한 경제적 안정성을 결여한 사회구성원이 증가하게 되어 발생하는 비용 역시 최종적으로는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하는 이상, 사회의 몫으로 돌아온다.

플랫폼 경제와 새로운 노동에 대한 최근의 국내외 판단 사례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의하면 2018년 10월을 기준으로 한국의 플랫폼경제 종사자의 규모는 47만~54만 명으로 추산됐다. 산업과 노동 모두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형태로 변하는 건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플랫폼 생활서비스와 관련해 기업 또는 노동자 또는 소비자 어느 한 쪽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단순한 금전적 비용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비용을 두루 고려하는 균형 있는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2019년 9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우버 드라이버와 같은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자로 간주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AB5)이 통과되어 큰 화제였다. ‘AB5’는 2018년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다이나멕스 판결을 입법화한 법안으로, (A)노무제공자가 업무 수행과 관련해 계약상, 그리고 실질상 기업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B)노무를 제공받는 측의 통상적인 사업 범위 외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C)제공하는 노무와 같은 성질의 업무를 처리하는 사업을 독립적으로 형성해 운영해야 한다는 세 가지 기준을 노무를 제공받는 측에서 모두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모든 노무제공자를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내용이다. 나아가 올해 5월, 미국 항소법원에서는 다이나멕스 판결의 판단 기준이 소급효를 갖는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Vasquez v. Jan-Pro Franchising International, Inc.).

반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북부지청은 2019년 10월 28일, 별도의 입법 없이도 ‘근로자성 판단’에 대한 기존 대법원의 기준에 따라 ‘요기요’ 배달원이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형식상 개인사업자로서 위탁계약을 체결했지만, 근무시간·근무장소 등을 회사에서 지정하고 출·퇴근을 보고하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업무형태와 계약내용을 고려한 판단이다.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최초의 근로자성 인정 사례다. 일반적인 배달 대행기사의 업무 실태와는 다소 차이가 있으며 구체적 사건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전제를 고려하더라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관계에 대해서도 기존에 축적된 근로자성과 노동에 대한 판단기준을 적용해 보호 필요성 있는 당사자를 보호하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명시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디지털 플랫폼의 특성을 고려한 실질 판단의 필요성

만일 일률적으로 기존의 판단기준만을 고집할 경우, 신유형 사업의 가능성이 큰 제약을 받을 수 있으며 민간에서는 기준을 피해가려는 편법에 치중하게 됨은 각계 각층에서 지적해온 바와 같다. 불안정 노동이나 모호한 책임분담 같은 문제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새롭게 ‘발명된’ 현상이 아니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이슈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노무제공은 휴대전화의 GPS장치나 어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플랫폼 기업이 플랫폼 종사자들에게 단순한 중개자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까지 훨씬 더 세부적인 사항을 감독하고 지시(micromanaging)할 수 있게 됐으며, 플랫폼 기업은 종사자들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다시 플랫폼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늘리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입법 내지 판결은 그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변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근로자성 여부의 판단에 있어 확고하게 ‘계약 형식이 아닌 실질을 기준으로’ 판단해오고 있다. 이미 근로시간 운용이나 고용형태에 관해 다양한 변형이 허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플랫폼 기업과 노무제공자 사이의 ‘위탁계약’이라는 형식과 ‘디지털 플랫폼’의 실질적인 운영방식을 고려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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