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성공한 사회적 기업이 되려면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다는 마음으로 임하세요.”

데이비드 배트스톤 교수는 2017년 UNWFPA(유엔여성평화협회)으로부터 평화상을 받은 바 있다.

인신매매 퇴치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 NGO '낫포세일(Not for Sale)' 설립자 데이비드 배트스톤(David Batstone)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2006년 세운 낫포세일에 지속가능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에 착수했다. 건강음료 ‘REBBL,’ 친환경 신발 ‘Z-Shoes,’ 단백질 바 ‘Square Organics’ 등 그가 설립에 참여한 브랜드들은 지금도 성공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중이다.

지난 10월 25일, 중소벤처기업부의 '소셜벤처·중간지원조직 글로벌 역량강화 프로그램' 일환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다운타운 캠퍼스에서 배트스톤 교수를 만났다. 그는 낫포세일과 더불어 직접 임팩트 투자 조직 ‘Just Business’를 운영하며, 사회적 목적을 가진 영리 기업이 규모를 키우게 돕는다.

책 1권→마을 1개가 된 인신매매 퇴치 프로젝트

배트스톤 교수가 인신매매 퇴치에 사명감을 느낀 건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주 다녔던 인도 레스토랑이 샌프란시스코 인신매매의 중심지였다는 걸 알았어요. 14~19세 아이들 500명 이상이 강제 노역에 시달렸죠. 식당을 운영하는 가족일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인신매매 피해자들이었다니. 대체 이런 끔찍한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연구하고 찾아보기 시작한 게 여기까지 이어졌습니다.”

배트스톤 교수는 인신매매의 고리를 직접 확인하고 책을 쓰기 위해 1년간 휴직했다. 한국, 캄보디아, 우간다 등 대륙을 넘나들며 세계 이곳저곳에서 인신매매를 탐구했다. 그 결과 3000만 명이 현대판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2007년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원제 Not For Sale)’라는 제목으로 인신매매의 현실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

데이비드 배트스톤의 저서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원제 Not For Sale)'

그러나 그렇게 내딛은 발걸음은 한 발짝에서 끝나지 않았다. 배트스톤 교수는 태국에서 인신매매 피해 아동을 돕는 ‘크루남(Kru Nam)’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직접 만나러 갔다. 크루남은 태국 치앙마이시에서 앵벌이와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아이들 27명을 구출해 직접 데리고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베트남, 라오스, 중국, 미얀마 등지에서 잡혀 온 무국적 아이들(stateless children)이었다. 크루남과 아이들은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지붕 밑 허름한 건물에 살고 있었다. 책을 판매한 수익으로 이들에게 집을 하나 지어주려 했지만, 책을 완성할 때쯤 크루남이 구출한 아이들은 88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낫포세일을 만들게 된 계기다.

낫포세일의 활동으로 아이들 88명은 마을 하나를 이루고 살 수 있게 됐다. 마을에서 아이들은 직접 농작물을 기르고, 학교에 다닌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태국 내 첫 무국적자 출신 대학생을 배출하기까지 했다. 태국에서는 무국적자 아이들도 대학생이 되면 국적을 얻을 수 있다. 현재까지 45명의 대학생을 배출했다.

크루남은 태국 인신매매 상인들로부터 아이들을 구출해왔다. /사진=Not For Sale

‘봉사 정신’보다 중요한 ‘기업가 정신’

낫포세일은 페루와 루마니아에도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위한 둥지를 만들었다. 성공적인 비영리기구 모델로 성장했지만, 배트스톤 교수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마음을 여는 순간, 지성을 닫아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이렇게 일시적인 기부·봉사 행위에만 기대면 낫포세일의 활동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벤처캐피털리스트이자 비즈니스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저는 기업가 정신을 접목해야겠다고 결심했죠.”

Dignita는 2015년부터 영업을 시작해 최근 4호점까지 열었다. /사진=Dignita Amsterdam 페이스북

그는 낫포세일의 자생력을 위해 다양한 사업 모델을 지닌 사회적 기업들을 설립했다. 사업을 운영하면서 경쟁력을 도모하기 위해 애썼다. 착한 희생정신으로 일해줄 봉사자가 아닌,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찾았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성매매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식당 ‘Dignita’를 만들 때는 영국의 인기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Jamie Oliver)를 섭외했다.

낫포세일의 재원 조달을 위해 만들어져 지금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 중인 사업은 11개. 배트스톤 교수는 직접 운영하는 대신 투자하거나 이사회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개입한다. 그는 “내 사업의 경쟁자는 다른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코카콜라나 하드 록 카페 등 제도권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기업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사회적 기업에 정부 재원이 많이 투입된다고 들었다”며 “만약 내가 사업 초기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면, 다음 단계는 투자를 유치하도록 경쟁력을 키우는데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25일 중소벤처기업부의 '소셜벤처·중간지원조직 글로벌 역량강화 프로그램' 일환으로 한국 대표단이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다운타운 캠퍼스에서 배트스톤 교수를 만났다. /사진=임팩트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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