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임팩트시장에 비춰본 한국 "규모 작아도 논의수준 뒤처지지 않아"
글로벌 임팩트시장에 비춰본 한국 "규모 작아도 논의수준 뒤처지지 않아"
  • 미국(샌프란시스코)=이로운넷 박유진 기자
  • 승인 2019.11.01 0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SOCAP19] 소셜벤처·중간지원조직 글로벌 역량 강화 프로그램 연수 성료
5000억 달러 규모 美 임팩트 시장 접한 한국 연수단...현지 선수들과 고민·경험 나눠

성수동에 ‘소셜벤처 밸리’라는 별명이 붙고, 정부가 임팩트 투자 펀드를 발표하는 등 국내 소셜벤처 생태계에는 최근 몇 년간 다양한 자원이 투입되며 단기간에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가 정신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국내 대중에게 익숙한 개념이 아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임팩트 생태계 안에서도 끊임없이 논의하는 중이다.

5000억 달러 이상의 임팩트 시장 규모를 가진 미국에서는 임팩트를 어떻게 바라보고 확산할까? 지난 22~25일(현지시간), ‘소셜벤처·중간지원조직 글로벌 역량 강화 프로그램’으로 뭉친 20명의 한국 대표단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임팩트 투자 컨퍼런스 ‘SOCAP(Social Capital Markets)’에 참가해 그 현황을 확인했다. SOCAP은 임팩트 투자자, 사회적 기업가, 학계 관계자 등이 모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과제를 논의하는 연례행사로, 올해 12회를 맞았다. 대표단은 각자 4일간 SOCAP 현장에서 열리는 세부 세션을 듣거나 투자자·기업가 등과 미팅을 진행했다.

SOCAP 행사장 한켠에 마련된 한국 대표단 부스.

대표단은 9개 중간지원조직과 7개 소셜벤처로 구성됐으며, ‘Korean Delegation(한국 대표단)’이라는 이름 아래 직접 ‘SOCAP19’ 후원사 목록에 올랐다. SOCAP19 후원단체로 참여한 대표단에는 행사장 한쪽에 부스를 설립해 홍보할 기회가 주어졌다. 부스에는 각 조직의 설명을 담은 책자를 두고 홍보 영상을 틀어 방문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일본 공유 오피스 ‘임팩트 허브 도쿄’에서 온 키에(Kie)는 “임팩트를 위해 활동하는 한국인들이 직접 대표단을 꾸려 SOCAP에 참여한 모습이 인상 깊다”고 말했다.

한국 임팩트 생태계 알려...현지 투자 기관 세미나도

노유진 위커넥트 디렉터가 현지 임팩트 투자자들 앞에서 IR 피칭을 하는 모습.

대표단 중 7개 소셜벤처는 22일 임팩트스퀘어가 초청한 현지 임팩트 투자자 앞에서 직접 사업 모델을 설명했다. SOCAP 행사장인 포트 메이슨 예술 문화 센터 내 미팅룸에서 ▲노을 ▲위커넥트 ▲LAR ▲라이브스톡 ▲오파테크 ▲수퍼빈 ▲서울아티스틱오케스트라 관계자가 각각 5분 동안 영어로 IR 피칭(기업설명) 실습을 하고 투자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투자자들은 사업 모델 자체가 만드는 임팩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김 캡락 투자위원회 이사는 “피칭 시작 30초 안에 투자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며 “사업의 존재 목적, 하는 일, 필요한 요소 등을 가장 먼저 설명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브라이스 버틀러 Access Ventures 창업자는 “자신의 사업 모델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 발표를 듣는 투자자들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정권 노을 CSO는 "노을의 비즈니스 모델은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영어로 피칭할 기회가 생긴 게 좋았다"며 "한국어로 한국인들에게 피칭할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고 말했다. 노을은 인공지능으로 질병진단 플랫폼을 만드는 바이오/인공지능 개발 소셜벤처로, 말라리아 진단 키트를 개발한 바 있다. 그는 "바이오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설명해야 하는지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9년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에 참여하며 사업 초기 단계를 밟고 있는 서울아티스틱오케스트라(SAO)의 강수경 대표는 "이미 투자유치 관련 IR 경험을 보유한 다른 기업들과 달리 이제 막 기업의 문턱으로 향하고 있는 SAO에게는 전문 투자자들을 마주하는 첫 시간이었다"며 "피칭 세션 이후 따로 찾아와 SAO의 가치에 진심으로 공감해준 다양한 참석자 덕에 국제 무대 전문가들이 바라볼 때도 가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프로그램 중 대표단은 샌프란시스코 대학 다운타운 캠퍼스에서 비영리단체 'Not For Sale' 설립자인 데이비트 배트스톤 교수와 세미나를 진행했다. /사진=임팩트스퀘어

25일에는 직접 비영리단체와 임팩트 투자 조직을 만든 데이비드 배트스톤(David Batstone) 교수를 만나 사회적 목적을 담은 창업 경험을 들었다. 배트스톤 교수는 국제 인신매매를 퇴치한다는 목표로 2006년 비영리단체 ‘Not For Sale’을 설립했으며, 이 단체에 지속가능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11개 사업을 성공시켰다. 배트스톤 교수가 벌인 사업에는 건강음료 ‘REBBL,’ 친환경 신발 ‘Z-Shoes,’ 수프 ‘Not For Sale Soup’ 등이 있다. 또한, 그는 임팩트 투자 조직 ‘Just Business’를 운영하며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영리 기업에 투자한다. 배트스톤 교수는 경쟁력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내 사업의 경쟁자는 다른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제도권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기업들”이라며 “사회적 기업이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실리콘 밸리에서 창업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OCAP으로 바라본 한국 임팩트 생태계

대표단은 150개의 세부 세션 중 각자의 관심사에 맞는 내용을 찾아 들었다. 또한, 국내 임팩트 생태계 선수로서 임팩트에 관한 공감대를 공유하는 국외 참가자들과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을 나눴다. 소셜벤처 관계자들은 즉석에서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 협업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들은 행사 마지막 날 진행된 연수단 내부 세미나에서 4일간 세계 최대 임팩트 투자 컨퍼런스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공유했다.

김수지 수퍼빈 매니저가 현지에서 만난 SOCAP 참가자에게 사업을 설명하는 모습. 대표단은 현장에서 기업가, 투자자 등을 만나 협업 가능성을 모색하고 고민을 나눴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미국에서는 임팩트 생태계가 한번 정돈된 상황인데, 그 결과 벤처 생태계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져서 오히려 임팩트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한국의 경우 아직 생태계가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떠오르는 가치측정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도 대표는 “표준화가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글로벌 수준에서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를 논하지 않으며, 이를 넘어 내부 검증(verification)을 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긍정적인 효과뿐 아니라 부정적인 효과의 중요성도 대두된다. 사회적 기업이 긍정적인 성과를 달성하려는 과정에서 희생되는 가치도 측정해야 한다는 것. 김수지 수퍼빈 매니저도 “미팅을 진행한 해외 투자자들이 우리 회사가 만들어내는 임팩트 측정 세부 결과가 어떤지 궁금해하더라”라며 “방법론 자체를 넘어 어떻게 확장하고 유지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는 수준으로 발전한 게 느껴져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시장 규모가 작을지언정 논의의 수준 자체는 뒤처지지 않는다는 해석도 있었다. 김빛고을 크레비스 연구원은 “대부분의 세션이 답을 찾기보다는 고민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진행됐고, 한국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 공감할 수 있었다”면서도 “미국은 우리보다 먼저 경험한 게 많아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MYSC CSO는 “해외의 혼합금융 경향이 궁금해 관련 세션을 주로 들었는데, 규모나 집중하는 지역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나라가 못하지 않더라”라며 “다만 미국은 재원의 층이 더 세부적이던데, 국내에서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혼합금융을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혼합금융(Blended Finance): 사회, 환경,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사업에 공공재원과 민간재원을 혼합해 조달하는 방식. SDGs(지속가능개발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 조달 방법으로 주목받는다.

주영광 라이브스톡 COO는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 크게 성장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는데, 여기서처럼 시장 규모가 커지면 결국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규모를 키울 혁신적인 솔루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행사 진행 방식 자체에 관한 이야기도 오고 갔다. 보통 컨퍼런스는 주로 명망 있는 연사가 기조연설을 진행하며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시간이 있지만, SOCAP19에서는 모든 세션이 같은 수준으로 중요했다. 발표자 구성 시에도 유색인종과 여성을 거의 모든 세션에 포함해 눈에 띄었다.

이번 소셜벤처·중간지원조직 글로벌 역량 강화 프로그램은 중소벤처기업부의 후원과, 임팩트스퀘어·기술보증기금·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의 주관으로 이뤄졌다. /사진=임팩트스퀘어

이번 소셜벤처·중간지원조직 글로벌 역량 강화 프로그램은 중소벤처기업부의 후원과, 임팩트스퀘어·기술보증기금·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의 주관으로 이뤄졌다. 임팩트스퀘어 도현명 대표는 “한국 소셜벤처 생태계의 성장과 함께 글로벌 조직들과 교류 및 학습의 필요성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제약되기도 했다”며 “한국 대표단의 SOCAP 참여는 그 기회를 성공적으로 넓힌 시작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27일 귀국한 대표단은 SOCAP 참가로 경험하고 배운 내용을 정리해 11월 중 성과 공유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사진 제공. Sreel Photography / Courtesy of Social Capital Markets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