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계곡 속 진실을 은폐한 금융

1980년대 중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폴 볼커(Paul Volcker)는 강력한 고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잠재웁니다. 이후 1990년대 미국에는 이른바 저인플레이션, 저불황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이는 중국 등 신흥국가들이 값싼 제품을 찍어 내면서 인플레이션을 막아주고, 덕분에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었으며, 다시 그 덕분에 인터넷이 만들어낸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가 주식시장의 가치를 끌어 올렸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경제를 지배했던 인터넷과 신기술에 대한 광신이 만들어낸 거품은 1990년대 후반 정점을 찍고 2000년대 초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기술주의 붕괴를 막기 위해 추가적인 저금리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합니다. 2001년 6.5퍼센트였던 기준금리는 2006년 마침내 1퍼센트대로 하락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동산거품이 찾아왔습니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는데 소득은 늘지 않자, 주택보유자들은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소비를 하고, 또는 다른 집을 사서 새로운 담보물로 이용했습니다. 중산층은 물론 서민들까지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에 나서면서, 미국의 자가소유비율은 2005년 69퍼센트로 급상승합니다.

월스트리트, 사진출처: flickr, by Mathew Knott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로 큰 이윤을 남기면서, 더 많은 대출을 위해 위험을 분산하는 온갖 기법이 '금융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발명됩니다. 집을 산 사람들의 모기지대출을 아예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증권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파생상품이 우후죽순처럼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무리수는 언제나 뒤끝이 안 좋은 법, 자전거도 달리기를 멈추면 넘어질 수밖에 없듯이, 거품도 수요가 더 이상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면 터지고 맙니다. 미국의 주택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거품을 받치고 있던 주택가격이 하락합니다. 거품은 이제 재앙으로 돌변합니다.

사진출처: flickr,by Knile
채권자들의 디레버리지(deleverage), 즉 부채 축소가 시작됩니다. 은행들은 신규 대출을 축소하고 기존 대출을 회수합니다. 모기지대출로 집을 산 사람들은 당장 돈 갚을 길이 막막해졌고, 이로 인해 모기지대출을 담보로 한 증권투자자들은 손실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경제 전반에 신용대란이 촉발됩니다. 바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시작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입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이후 미국인들은 환상 속에서 산 것인지도 모릅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인플레이션이 해결되고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상승하면서 환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1980~2000년 열배로 뛰어오르면서, 마치 모든 미국인이 부자가 되었고 또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사실 중산서민층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부유층에 비하면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주식시장 붕괴의 타격은 늘 그렇듯 부유층보다 중산서민층에게 더 컸습니다.

수많은 중산서민층이 실상은 빚더미에 앉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빚을 내 소비를 하면서 자신의 소득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환상을 품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미국 자본주의는 이처럼 주식시장의 활황이 마치 경제성장을 판가름하는 척도인 양, 소비수준이 마치 자신이 진정한 소득의 결과인 양 은폐해왔습니다. 씀씀이는 커졌지만 실상은 더 가난해진 현실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거품과 부채에 의해 은폐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과대평가 이데올로기

시장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보상의 격차를 확대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에 올인하도록 만듭니다. 보상에 격차가 있어도 합리적인 수준이라면, 굳이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격차가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벌어지면, 사람들은 승자가 된 사람의 선례를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성공의 확률은 더 떨어질 텐데, 사람들은 오히려 승산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됩니다. 누구나 재능이 있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기회와 보상이 손에 잡힐 것 같은, 자기 승산에 대한 과대평가입니다. 나도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성공으로 가는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다는 헛된 믿음, 내가 안되면 내 자식이라도 그 사다리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입니다.

*편집자주 : 이 칼럼의 전문은 알투스에서 펴낸『죽음의 계곡』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연재된 칼럼은 옆 링크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eroun.net/author/bryu)


아무도 떠나지 않기에, 누구도 떠나지 못한다.

불안과 절박함으로 가득한 죽음의 계곡을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서른살 경제학]의 저자 유병률은 경제사에 그 답이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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