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4년 로치데일선구자조합의 성공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 협동조합운동은 협동조합만의 고유한 자기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1895년 전 세계 협동조합들은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을 결성했고, 2020년 125주년을 앞두고 있다. 125주년을 한 해 앞둔 2019년, '아프리카의 스위스' 또는 '천개의 언덕이 있는 나라'로 불리는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ICA 글로벌 정기총회가 개최됐다. '발전을 위한 협동조합(Cooperatives for Development)'이란 주제로 열린 올해 ICA 컨퍼런스는 사흘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여기서 말하는 발전은 UN이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추진한 MDGs의 종료에 이어 2016년부터 2030년까지 국제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동의 목표로 새롭게 제시한 SDGs, 즉 지속가능한 발전의 추구를 의미한다. 사흘 간의 컨퍼런스에서는 불평등의 해소와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등의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세션이 열렸고, 다양한 사례와 경험이 발표됐다. 공통의 지향은 지속가능한 발전에 어떻게 협동조합이 기여하고 있으며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해 협동조합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총회의 논의와 결의 내용은 2020년 서울에서 열리는 ICA 125주년 콩그레서에서 정식 채택될 예정이다. 총회에 참석한 김대훈 세이프넷지원센터장이 현장 이야기를 전한다. 
ICA 총회 시 사무총장의 사업보고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두고 있는 ICA는 주 사무소가 소재한 벨기에의 법률에 따라 매년 정기총회를 개최해야 하는데 통상 2년마다 전 세계 협동조합인들이 모이는 정식의 총회를 개최한다. 그 사이의 총회는 다소 실무적 성격의 총회 형식으로 개최한다.

?이번 컨퍼런스와 총회에는 94개국의 협동조합 대표들과 다양한 협력조직, 정부기구 등을 포함하여 1000여명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ICA의 정회원인 농업협동조합, 수산업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아이쿱생협), 노동자협동조합(일하는사람들의협동조합연합회)이 국내 협동조합 운동의 당사자로서 함께했다.

?더불어 내년에 있을 ICA 125주년 콩그레스의 준비를 위해 기획재정부(협동조합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협동조합지원본부와 함께, ICA 125주년 콩그레스 준비TF의 일원인 성공회대학교 장승권 교수가 내년 준비 논의를 위해 참가했다. 그리고 송경용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도 ICA의 초청을 받아 함께했다.

?ICA총회 역시 통상의 협동조합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총회를 통해 다루는 의안들을 다룬다. 회계연도 기간에 수행한 ICA의 사업과 회장의 활동, 회계 결산의 보고, 정관 또는 규약의 개정 사항에 대한 승인 등이 안건으로 제출, 검토, 의결된다. 올해 역시 회계년도 동안의 ICA의 사업 및 재정 상황, 주요한 정관, 규약의 개정이 이뤄졌다. 또한 총회에 앞서 각 분과기구의 총회도 함께 열렸다. ICA는 회원 협동조합들은 대륙별, 분과별로 구성된 기구에 참여하고 있는데 4개 대륙 조직과 8개 분과기구가 조직돼 있다.

컨퍼런스 중에는 각국에서 온 단체들의 부스도 운영이 되었다. 사진은 인도 여성 협동조합 SEWA의 부스

2019년 올해 총회는 크게 각종 위원회 및 지역/분과별로 개최되는 회의(10월 11일~14일)와 ICA 컨퍼런스(10월 14~17일), ICA총회(10월 17일 오후)로 일정이 나뉘어 진행됐다. 2019년 10월 13일(일요일)에는 소협, 노협, 의료, 주택 분야 등의 분과별 총회가 개최됐다. ICA총회와 마찬가지로 각 분과의 사업과 재정상황의 보고, 각 분과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 또는 전략의 공유와 검토가 이뤄진다.

필자가 참가한 소협분과(CCW) 또한 10월 13일 총회를 개최하고 각 지역별 활동을 보고, 공유했다. 또한 ICA가 추진하고 있는 협동조합 전략 2030에 발맞춰 협동조합시장에 대한 규제, 입법 및 정책 장벽을 해결하고 협동조합이 기여할 수 있는 정책 기회를 파악하고자 진행했던 전략적 정책가이드를 보고하고 11월 30일까지 ICA본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반다나 시바의 기조강연

컨퍼런스의 시작은 반다나 시바의 기조 강연으로 시작됐다. ‘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라는 저서로 유명한 반다나 시바는 기조연설에서 지금의 세계 경제는 약탈적 경제라고 평가하면서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협동하는 경제가 진정한 경제라는 점을 역설했다. 지속가능한 경제를 추구하는데 있어 특히 생산자 협동조합과 소비자 협동조합의 역할을 강조했다.

컨퍼런스 첫날 기조강연을 마치고 오후에는 네개의 동시세션이 진행됐다. 주제는 SDGs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의 핵심 행위자인 협동조합의 역할을 주제로 협동조합운동을 통한 불평등해소, 지속가능한 발전의 최전선에서의 여성의 권한 강화, 협동조합모델을 통한 기업가 정신의 혁신, 폭넓은 윤리적 가치사슬의 글로벌화를 주제로 열띤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오후 동시세션에 이어진 전체 세션에서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환경보존을 촉진하는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컨퍼런스 둘째날 오전 일정은 협동조합의 고용과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공헌 및 가치사슬에서의 협동조합의 전략적 위치를 주제로 두개의 전체 세션이 진행됐다. 가치사슬과 협동조합의 위치를 다룬 세션에서는 한국의 노동자 협동조합 해피브릿지 사례가 전 세계 참가자들에게 소개됐다. 오후에는 부문별 협동조합이 지속가능한 발전에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세개의 동시세션이 진행됐다. 오후 동시세션은 식량안보와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소비자협동조합의 글로벌 네트워크인 CCW와 농업협동조합 글로벌 네트워크 ICAO 공동주최), 의료/산업/서비스 협동조합의 불평등 감소에 대한 공헌, 주택과 에너지에 있어서의 협동조합적 모델을 주제로 진행됐다.

?컨퍼런스 셋째날 오전에는 평등과 평화에 기여하는 협동조합의 공헌을 주제로 전체 세션이 진행됐는데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평화의 개념은 전쟁 또는 분쟁이 없는 소극적 평화를 뛰어넘어 요한 갈퉁이 주창한 적극적, 긍정적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오후에 열린 ICA총회에서는 지속가능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협동조합이 서로 협동하며 폭력과 증오를 예방하는데 기여하는 한편, 평등과 공감, 양질의 일자리, 기업가 정신, 발전을 위한 협동조합의 기회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수준의 평화를 추구해가자는 취지의 ICA의 평화선언을 채택했다.

총회가 열린 키갈리 콘벤션센터

3일간 진행된 컨퍼런스의 결과를 종합하고 최종 결론을 도출하는 순서는 인도의 여성 협동조합 SEWA를 이끌고 있는 Reema Nanavaty와 유럽위원회의 싱크탱크 유럽정치전략센터(EPSC)의 수석 고문인 Dr Patrick Develtere가 진행했다. 만담(?)을 연상케 하는 신선한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현장에서 바로 접수, 조율해 최종 결론에 정리, 반영하는 과정은 꽤나 역동적이었고 인상적이었다. 패트릭 박사는 특히 유치원에서부터 경쟁을 배우는 아이들, 청소년들이 경쟁이 아닌 협력하는 법을 배우도록 교육의 관점, 교육과정을 바꿀 것을 제안했는데 주목되는 내용 중 하나였다.

?공식적인 ICA 글로벌 총회는 10월 17일 오후에 개최됐다. 총회는 총 16건의 준비된 안건과 현장에서 제안된 두개의 안건이 다뤄졌다. 보통의 협동조합이 총회를 진행하는 순서와 크게 다르지 않게 개회에 이어 의결정족수의 확인, 심의할 의안의 승인, 전차회의록의 승인이 이뤄졌고 회장과 사무총장의 사업에 대한 보고, 회계와 감사결과에 대한 보고가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특이한 것은 감사와 이사에 대해 그 해의 사업의 보고와 감사결과를 바탕으로 면책 승인을 한다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의 협동조합에 유사한 절차가 있지 않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나 미뤄 짐작하기에 한 해의 사업연도에 걸쳐 진행된 사업에 대해 평가와 감사결과 특이한 문제나 위법한 사항이 없었으므로 집행책임을 가지는 이사와 감사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여 책임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는 취지로 이해됐다(이에 대해서는 추후 ICA 본부에 정확한 취지의 확인이 필요하다).

한국 참가단이 내년 한국에서 열리는 2020 ICA 콩그레스 초청 메시지 발표 후 ICA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

총회에서 중요한 의안으로 검토, 논의된 것은 다음의 세가지 의안이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평화선언을 채택하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2020년부터 2030년까지의 10년의 비전을 담은 전략계획을 검토, 논의하는 것이었다. 세번째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반영한 회계기준을 개발하자는 제안이었다.

?먼저 전략계획은 기존의 2020년까지를 목표로 하는 [협동조합 10년의 청사진]을 2030년까지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계획으로 발전시킨 것으로서 2017년 11월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ICA총회에서 결정했고, 2018년 초안이 나온데 이어 2019년 키갈리 총회에서 5차 안이 제출됐다. 핵심 전략은 1) 협동조합 정체성의 증진 2) 협동조합운동의 성장 3) 협동조합 간의 협력 4)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기여로 구성됐다. 이 전략계획은 내년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ICA 125주년 콩그레스에서 최종 승인할 계획이다.

?협동조합의 회계기준 개발에 관한 안건은 영국의 협동조합 CO-OPERATIVES UK가 제안하고 덴마크의 KOOPERATIONEN이 제청하여 발의된 의안이다. 요지는 현재의 국제회계기준이 투자자 주도의 기업의 요구와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협동조합의 특성, 정체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한계(자본의 처리와 배당의 분배를 포함한 이슈 등)를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협동조합의 다른 정체성이 재무보고서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왜곡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2020년의 주요한 ICA일정을 보고하고 청년위원회가 제안한 결의안을 전체 회원에게 보고, 채택하는 것으로 ICA 총회의 마지막 의안까지 마무리를 짓고 다가오는 2020년 ICA 125주년을 기념하는 콩그레스 개최국인 한국 참가자들 전원이 연단에 올라 내년 콩그레스에 전 세계 협동조합인을 초대하는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을 끝으로 2019 ICA 총회 일정이 모두 마무리됐다.

# 르완다의 협동조합운동

1994년 매우 심각한 제노사이드를 겪은 르완다의 협동조합은 매우 취약한 상태였으나 제노사이드 이후 사회, 정치적인 안정을 되찾아가면서 2007년 협동조합에 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지금은 협동조합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현재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조합원의 수는 르완다 성인 인구의 절반이 넘는 380만명에 달하며 협동조합기업의 수는 2005년 919개에서 2018년 8,995개로 증가하였다.

김대훈 세이프넷지원센터 센터장

# 짧은 소감 한줄

ICA총회에는 서로 다른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협동조합들이 규모에 있어서도 천차만별인 협동조합들의 사례와 경험이 공유된다. 절대적 빈곤 수준에 있는 빈민계층의 생활의 개선을 위해 열악한 조건에서 수공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협동조합에서부터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협동조합까지. 세상에 이런 국제조직, 기구가 또 어디에 있을까? 협동조합이라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이라는 공통의 기반이 도무지 융합될 수 없어 보이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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