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9일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 지방에서 온 청년들이 모였다. 그냥 지방으로 간 청년(공장공장 대표 홍동우), 서울에 왔다가 지방으로 돌아간 청년(무브노드 대표 김신애, 다자요 대표 남성준), 지방에서 지방으로 간 청년(팜프라 유지황 대표)들이다. 청중들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동기, 프로그램 운영상의 어려움, 지방에서의 삶을 들으며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현장 이모저모를 ‘지방청년’이라는 사 행시로 엮어 전달한다.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 지방에서 온 청년들이 모였다

지: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

네 명의 청년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홍동우 : 우리는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중간지원조직기관이 아니다. 사법상 영리를 추구하는 주식회사이고, 돈을 버는 회사다. 지역 활성화나 인구 감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괜찮아 마을’을 시작한 게 아니다. 지역을 활성화할 만큼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다. 지금 당장 힘들고 지쳐있는 청년들에게 먼저 쉬라고 얘기하기 위해 시작했다.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 국가이지만, 사람들은 이에 많이 무뎌진 것 같다. 청년들에게 괜찮다고 할, 그리고 청년들을 보듬어줄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보통 힘들 때 노래방이나 영화관을 찾는다. 그리고 더 힘들 때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 이 두 활동 사이에 우리 마음을 쉽고 빠르게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청년들이 먼저 쉼을 제공받다보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선후 관계가 중요하다. 청년들이 중심이 돼야 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발표중인 공장공장의 홍동우 대표

유지황 : 대학 4학년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했는데, 1년이 되었을 때 쫓겨났다. 다른 땅을 쉽게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행정기관을 가거나 어르신들을 만나도 시작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데, 그때 받은 느낌을 간단히 말하면 ‘꺼져’였다. 다품종소량생산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니가 뭘 알아’는 식의 반응만 돌아오고 행정에선 계속 이 부서 저 부서 돌렸다. 그때 분노를 느끼고 오기가 생겼다. 그 후 2년 동안 세계의 여러 농장과 농업기관을 찾아다니면서 청년 농부들이 어떻게 터를 마련하고 농사를 짓는지 배웠다. 일본에서는 농사를 짓는 청년들에게 지원금을 줬는데, 농촌에 사는 것만으로 돈을 준 것이 궁금해서 정책을 만든 어르신에게 물었다. 어르신은 ‘지금 청년 세대가, 30-40대가 되었을 때 잘 자리 잡아야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을 케어할 수 있다’며 청년을 투자하고 지원해주는 게 사회 전반의 중요한 역할이라 이야기했다. 어르신의 말에 크게 자극을 받았는데, 나 스스로에게도 농사를 지어야 하는 ‘타당성’과 ‘정당성’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을 계속 다니면서, 사회시스템에 대해 문제 인식을 했고, 어른들이 농촌에 간 청년들을 위해 고민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설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어떤 시스템을 만들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촌라이프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발표중인 팜프라 유지황 대표

남성준 : 대단한 미션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은행원, 자영업자로 일 하다가 고향에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은행 경력 조금, 자영업자 경력으로 취업할 수 없어서 창업을 하게 됐다. 대학까지 제주에서 다닌 나는 고향에 풍부한 네트워크가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대다수가 자연 콘셉트로 영업을 하지만,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서 자연을 가로막고 없애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대규모 중국계 리조트가 많이 들어서고 있다. 또한 제주도에는 많은 관광객이 오는 반면, 많은 청년이 떠난다. 빈집이 많이 생기고 있다. 빈집을 활용해서 100개 객실의 800개 호텔을 만든다면, 250만 제곱미터의 면적을 보호할 수 있다.

발표중인 다자요 남성준 대표

김신애 : 작년에 태백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는 게임회사에 취업하기도 하고, 창업을 하는 등 치열하게 살았다. 과연 이런 삶이 옳은 삶일까, 뭔가 휩쓸리듯이 따라 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제주에서 제일 많이 했던 게 걷기였다. 5~6시간을 목적 없이 앞으로 걷는 행위만 했다. 걸으면서 냄새를 맡고, 새소리를 듣는데 그때 ‘지금 살아 있구나’ 느꼈다. 제주에서는 현재의 감각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느꼈는데, 서울에서는 과거 혹은 목표에 얽매여 살았단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서울에 살 필요가 없다 생각했고, 태백에 내려왔다. 태백에서 나 같은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지지하는 공간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역 청년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중인 무브노드 김신애 대표

방: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청년들의 동기나 포부는 좋았지만, 지방도 만만한 곳이 아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청년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다.

홍동우 : 목포에 빈집이 많다. 처음 지내던 곳에 많은 분이 문을 두드리며 빈집을 써보라 했다. 다른 지역에서 빈집을 쓰면서 월세를 너 다섯 번 올려야했던 경험이 생각났다. 서울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다. 목포에서 이를 극복하려 했다. 많은 분의 투자를 받아 공간을 빌렸다. 10년을 담보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동안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대계약서를 작성했다. 괜찮아 마을을 만들 때도 일부러 지역에 살려거나, 창업할 사람을 모집하지 않고 ‘오롯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청년’을 모으겠다고 얘기했었다.

유지황 : 여행을 하면서 공부하고 배웠던 것을 토대로, ‘집을 먼저 짓자’는 생각을 했다. 원활한 ‘촌 라이프’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주거이기 때문이다. 또한 쫓겨나도 집은 가져갈 수 있게 이동식 집을 구상했는데, 설계부터 건축까지 다 참여했다. 나처럼 집을 짓고 싶은 청년을 위해 매뉴얼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코부기 프로젝트(청년 농부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6평 이동식 목조주택을 짓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건축 소장님께 욕도 먹고 많이 혼났다. 평소에 대게 따뜻한 분이셨지만, 현장이 고돼서 서로 힘들었던 것 같다.

또한 팜프라를 하면서 청년들뿐만 아니라 높은 비율로 중·고등학생이 오고 있다.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중간자의 역할’이 많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과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은 큰 차이가 있다. 통영에서 폐교를 빌렸을 때 주민들이 잡초가 많이 자랐으니 뽑으라 했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참여자들이 있었다. 도시는 누군가 비용을 받고 관리를 해주지만 농촌은 직접 해야 한다. 중간에서 이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을 했고, 또 이러한 역할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서 고민이 많다.

커뮤니티 마실에 전시된 굿즈들1

남성준 : 빈집은 거주인만 없을 뿐 소유자가 있다. 비어있는 단독주택으로 숙박업을 할 수 있는 법령이 아직 없다. 거주자가 없는 건물로 민박업을 해서 농림부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크라우드펀딩 주주, 채권투자자, 이곳을 이용한 여행객들이 화나서 우리의 주주가 돼줬고 와디즈에서도 투자 의사를 밝힌 분들이 1500명이 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는데 규제 대응을 위한 ‘규제 프리존’ 입법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의 선의를 다른 이가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선의로 포장된 여러 가지 일들을 꼭 서류나 법률상으로 체크해봐야 한다.

청: 청년들, 있어도 괜찮아!

이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음에도 지역에 정착해서 더 많은 청년을 돕고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들이 지방의 삶에 만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유지황 : 작년에 창업했는데 스스로에 대한 돌봄은 부족했던 것 같다. 개인공간을 갖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을 때 행복을 느낀다.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들이 그것에 만족할 때 행복을 느낀다. 올해 8월에는 처음으로 월급을 받았다. 40만 원을 받았는데, 작은 돈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감동 받았다. 올해와 내년까지 촌라이프를 위한 수익 모델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자 한다.

김신애 : 사람을 싫어했다. 사람의 밀도가 낮은 곳에 있다 보니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서울에 있었을 때는 소통의 문제를 항상 겪었다. 나는 원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생각했던 것들을 행동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스스로 막혀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상대나 외부의 문제가 아니었다. 태백에 온 개인적인 이유는, 나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나와 비슷한 분들이 와서 치료나 힐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커뮤니티 마실에 전시된 굿즈들2

홍동우 : 괜찮아 마을에서 청년들의 활동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궁금한 게 있으면 배우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빈집의 지도를 그리거나 상상하고, 팀을 모아 치열하게 고민하고, 발표한다. 경쟁이나 평가 없이 모두의 응원 속에서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사회에서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과 조합을 이루어 무엇이든 새롭게 시도하는 게 좋았다. 서울 살 때는 숨만 쉬기 위해(월세, 밥값, 교통비, 핸드폰비) 135만 원을 내야 했다. 목포에서는 25만 원으로 생활이 가능하다. 110만 원을 아끼고 132시간을 벌었고, 그 시간 동안 책/영화를 만들거나 축제/플리마켓을 진행했다.

괜찮아 마을을 하기 전에는, 공동체라 하면 개인적인 생활이 침해될 것 같고 구성원들에게 억지웃음을 지어야 할 것 같은 편견이 있었는데 아니었다. 괜찮아마을은 개인주의적 공동체라 느꼈다. 자신의 방을 지키면서 같이 생활비를 아끼고 무언가를 함께 했다. 공동체의 좋은 점은 취득하면서 따로 또 같이 사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중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청년들

 

년: 연차를 쓸 수 없을지라도...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계속 다녀라. 직장 밖은 지옥이다.”(남성준)

“서울에서 하던 일보다 3배 더 많이 일하고 있다.”(김신애)

“지역에서 공동체로 돈을 버는 게 쉽지 않다.”(홍동우)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몫과 치러야 할 대가는 분명했다. 주변 환경이나 여건이 따르지 않을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 있고, 스스로 책임져야 할 몫이 커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본인들뿐만 아니라 지역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의 장재열은 “청년을 ‘디퓨져’로 보면 안 된다”고 했다.

“지자체에서 지역 활성화나 인구감소 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부담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청년들을 그저 가져다 놓는다고 ‘알아서’ 활성화가 되거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은 지역을 좋게 만들러 봉사나 창업을 하러 간 것이 아니다. 청년의 삶에서 필요한 것을 찾고 그것이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지역과 상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인과의 법칙을 바꿔야 한다. 혁신모델이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를 보완해줄 지지망이 필요하다.”

이날 행사는 정부가 추진하는 여러 지역 활성화 사업이 사업이 아닌 ‘청년’에 초점을 맞춰져야함을 보여줬다. 청년을 중심으로 한 적합한 지원책을 제공하거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와 실험에 나선 청년의 도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청년’ 그 자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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