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출산 후 가사와 육아를 전담한 '김지영(정유미 분)'은 문득 가슴 속에 답답함을 느낀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온라인에서는 ‘별점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보지도 않은 작품을 향해 반대 세력은 ‘0점’ 테러를 가했고, 그에 맞선 지지 세력은 ‘10’점을 주며 평점을 올리기 바빴다. 댓글 창에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실종되고, 성별을 둘러싼 온갖 혐오와 옹호 발언만 이어졌다. 오는 23일 개봉을 앞둔 영화 ‘82년생 김지영’ 이야기다.

작품은 2016년 출간 이후 100만부 넘게 팔린 조남주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1982년에 태어난 ‘김지영’의 일대기를 통해 한국 사회 여성들이 가정?학교?직장 등에서 겪는 차별과 불평등을 조명했다. 출간 당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페미니즘’과 맞물리며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때문에 동명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발표됐을 때, 정유미와 공유 등 ‘톱스타’들이 주연 배우로 캐스팅됐다는 뉴스가 나올 때도 온라인은 들썩였다. 특히 정유미는 타이틀 롤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비난을 받았고, 시사회에서 “출연을 위해 용기를 낸 것이 아니냐”는 질문까지 받았다. 그는 “진짜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시댁은 부산에 있고 친정은 식당을 운영하며 남편은 육아휴직을 쓸 수 없어 '지영'은 딸의 육아를 도맡는다.

극은 원작대로 30대 중반의 ‘지영’이 결혼과 출산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과를 비춘다. 꿈 많던 어린 시절, 능력을 인정받았던 직장 생활을 거친 지영은 출산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가사와 육아를 전담한다. 반복적 일상 속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고, 자신도 알지 못한 사이에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늘어남을 깨닫는다.

내 주변에 있을 것만 같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은 지영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서 균열을 일으킨다. 지영이 갑자기 다른 누군가로 ‘빙의’되어 이런저런 말을 토해내는 것인데, 어떨 때는 친정엄마가 됐다가 다른 때는 시어머니가 되고, 갑작스레 대학 선배로도 변해버린다. 다른 이가 되어 내뱉는 말 속에는 지영이 그동안 마음속에만 품은 온갖 아픔이 녹아있다.

엄청난 영웅도 끔찍한 악인도 등장하지 않고, 지극히 보편적 인물과 평범한 에피소드가 이어지기에 작품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는 갈릴 것이다. 그러나 상영 중 극장 안에서 눈물을 흘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특히 지영의 삶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여성 관객들이 많이 울었다. 나 역시 눈가를 연신 비벼댈 수밖에 없었다.

'82년생 김지영'에는 지영의 엄마 '미숙(오른쪽, 김미경 분)'이 겪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시사회를 마치고 ‘82년생 김지영’ 관련 기사가 포털 메인화면에 걸렸고, 댓글 창을 열어보니 여전히 성별을 둘러싼 혐오와 논쟁 글로 가득했다. 그 중에는 “지난 세대를 겪은 여성, 다른 나라의 여성보다 82년생 한국 여성이 겪는 차별은 결코 크지 않다”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많았다.

작품은 ‘82년생 김지영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절대적 차별’에 대해 말한다. 가정에서 남자형제와 다른 대우를 받으며 성장했고, 학창시절 원치 않은 구애를 받으면 “니가 더 조신하라”며 혼났고, 직장에선 화장실 불법촬영을 당해 혹여 사진이 유출될까 마음을 졸였다. 출산 후 육아 전쟁을 치르다 잠깐 카페에 나와도 ‘맘충’이라 욕을 듣는다. 지난 세대나 다른 나라 여성 또는 남성들이 겪는 차별과 비교할 필요 없는 절대적 현실인 것이다.

그렇기에 ‘82년생 김지영들’이 처하고 있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낀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작품이다. 지영의 남편 ‘대현’ 역을 맡은 공유가 “작품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 위로와 공감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다. 더욱이 김도영 감독의 말처럼 “지영이 엄마 미숙보다는 지영이, 지영이보다는 지영이 딸 아영이 더 잘 살아가는” 사회를 희망하는 것은 보편적 바람일 것이다.

개봉 이후에도 작품을 둘러싼 ‘젠더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별점 테러와 혐오 댓글이 이어질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는 ‘N차 관람’은 물론, 극장에 가지 않고도 티켓을 구매해 응원하는 ‘영혼 보내기’ 운동을 펼칠 계획인 듯하다. 소설에 이어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한국 사회에 어떤 파장을, 어떤 모양으로 남기게 될까.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지영이 남편 대현(왼쪽, 공유 분)과 가족들의 응원으로 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제공. 봄바람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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