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오래 전부터 귀촌(지역살이)에 대한 막연한 꿈이 있었다. 바닷가에서 느리고 조용히 사는 꿈. 어린 시절 부산에 잠깐 살았던 기억 때문인지, 순천이나 강릉 아니면 제주도 같은 바다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었다. 대도시의 속도와 밀도가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인파에 떠밀려 사는 느낌이랄까.

2014년 초 드디어 귀촌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다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 완주에서 협동조합을 운영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커뮤니티비즈니스와 로컬푸드로 유명하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지만 몇 번 다니다보니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하던 일도 슬슬 지겨워지고 있던 차라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귀촌을 결정했다.

협동조합을 맡게 되었으니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해야 했다. NGO, 민간재단, 공공기관 등 비영리 분야에서만 일을 해왔던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난생 처음 돈을 버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잠시 고민하다가 금방 포기했다. 돈을 버는 재주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을 모아 재미있는 일이나 해보자는 생각에서다. 마침 완주에는 귀농귀촌을 한 청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사회적경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 문화예술에 재주가 있는 청년들, 그리고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는 청년들이 완주로 모여들었다. 

반면, 다른 방식의 삶을 모색하려고 도시를 떠나왔지만 지역사회에 ‘데뷔’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도 적지 않았다. 정서 차이, 인맥 부재, 신뢰와 이해 부족 등의 이유로 많은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청년들과 함께 이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었다. 사회적경제의 기반이 잘 갖춰진 완주는 청년들을 받아들일 좋은 조건을 가진 지역이기도 했기에. 무작정 찾아간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현 완주소셜굿즈센터)에서도 청년활동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렇게 지역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기획하기 시작했다. 청년문화 기획자를 양성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귀촌 청년과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장터를 열고, 지역으로 이주를 고민하는 청년들을 위한 캠프를 진행하면서 청년의 존재를 지역사회에 알리기 위한 일들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시작한지 2년쯤 지나자 청년 문제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16년 초 ‘지역과 청년’을 주제로 개최한 포럼을 계기로 행정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군 단위 지자체로는 최초로 완주에서 청년 정책이 추진되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협동조합의 지향은 ‘청년을 환대하고, 지역을 연결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청년을 환대하는 지역, 지역을 연결하는 청년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청년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자원이나, 지역사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존재로만 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인 일자리와 주거뿐만 아니라 교류, 문화, 교육 등 지역 청년들이 가진 다양한 고민에 지역사회가 좀 더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지역, 청년들이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할 수 있는 지역, 그런 지역에 청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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