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단필단상(短筆斷想)] 8. 힘과 정의
[이정재의 단필단상(短筆斷想)] 8. 힘과 정의
  • 이로운넷=이정재 시니어 기자
  • 승인 2019.10.16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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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정의에서 나와, 누구를 위한 정의인지 먼저 생각해야

당나라 초기의 공신이자 학자인 위징(魏徵)은 황제에게 직간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태종이 때로는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내어도 조금의 굽힘 없이 쓴소리를 서슴치 않아 주위의 신하들이 조마조마 할 정도였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듯, 귀에 거슬리는 충언이 지겨울 법도 한데 당태종은 그 말을 저버리지 않고 잘지켜 정관의 치(貞觀의 治)를 이루었다. 여러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지고 일부의 말에 치우치면 어리석어 진다.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간언한 위징은 물론 그 쓴 소리를 귀담아 듣고 훌륭한 정사를 편 당태종은 정의를 실천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6.25 발발 직후인 그해 7월, 경찰에 특명이 내려졌다. 좌익이나 북한군에 부역한 혐의로 보도연맹에 명단을 올린 수십만 명을 모두 사살하고 후퇴하라는 지시였다. 전남 구례경찰서에 보도연맹원 480명이 끌려왔다. 이때 안종삼(安鐘三) 당시 구례경찰서장은 이들을 운동장에 모와 놓고 “지금부터 여러분들을 모두 방면합니다. 살기 위해 우익도 하고 좌익도 했지만 하고 싶어서 했겠는가? 애국의 기회를 줄 테니 나가서 나라를 위해 충성 하십시오. 이 조치로 내가 반역에 몰려 죽을지도 모르지만, 죽으면 나의 영혼이 여러분 각자의 가슴속에 들어가 여러분을 지킬 것이니 새 사람이 되어 주십시오”라며 모두를 석방해 줬다. 군민들은 만세로 화답했고 죽음의 문전에서 풀려난 이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그 후 지리산 권역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로 인해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구례에서는 피아간에 큰 피해가 없었고, 민간인 학살이 최소화될 수 있었다. 이념보다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고 정의를 결단하고 항명한 안종삼 의인이야 말로 인도주의를 실천한 참 영웅이다.

영웅은 범인(凡人)으로서는 해내기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선천적으로 탁월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영웅이라고 꼭 특출한 재능과 지혜를 갖춘 사람은 아니다. 영웅은 할 일을 하는 사람이며, 보통 사람은 그것을 바라만 보는 사람이라는 점이 다르다. 단, 영웅은 남다른 비전을 가지고 일을 꾀하고 이끌어서 결국엔 이뤄내고야 마는 한발 앞선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시대의 흐름(天時)을 바로 읽고 상황(地利)을 정확히 파악하는 지혜는 물론, 주변의 협조(人和)를 이끌어 내어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를 가진 이들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힘이지만, 그 힘은 정의에서 나와야 한다. 정의가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 없는 정의는 무능이다. 힘 있는 자가 정의롭지 못하면 위험에 빠지고, 정의로운 자가 힘이 없으면 비굴해진다. 힘은 정의로운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며 힘의 행사와 의사표현은 어떠한 경우에도 강압적이지 않고 비폭력적이어야 정당화 된다. 한두 명의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수십 수백 명의 특공대와 엄청한 물자를 쏟고, 설사 100명에게 불이익을 가져오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사람의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정의다.

흔히 권력은 그것이 발휘하는 ‘힘’을 ‘정의’로 포장한다. 권력이 도덕을 외면하고 자신의 힘을 정의라고 내세우는 현상이 확산될 때 사회 곳곳에서 절망의 목소리인 ‘니힐(Nihil)’의 외침이 높아진다. 권력이 대중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힘이 정의’라는 논리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삶을 살아가던 군중이 동조하게 될 때, 그 권력을 향한 동조는 ‘파시즘’의 토양이 되고 만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정의가 한순간 승리자의 편에 선다 할지라도 역사는 정의의 편이다. 정의를 말하기에 앞서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가 진정 누구를 위한 정의인지 살펴봐야 한다. 정의는 자신과 소속집단을 위한 것이 아닌 대의와 공의에 바탕이 되어야 진정한 힘을 가진다.

의사에게 칼은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되지만 광인에게 그것이 주어지면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된다. '힘이 있는 자는 정의로워야 하고 정의로운 자는 힘이 있어야 하나니 고로 힘과 정의는 함께 있어야 하는 것', 파스칼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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