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글로벌 뷰파인더] 2. 매일 50억원 투자하는 빌-멜린다 재단
[김정호의 글로벌 뷰파인더] 2. 매일 50억원 투자하는 빌-멜린다 재단
  • 인도네시아(자카르타)=김정호 코너아시아 대표
  • 승인 2019.10.15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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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의 ‘이과적 두뇌’가 하는 일, 체계화 →최적화
인도주의적사업에 임하는 게이츠 부부의 ‘성급한 낙관’에 거는 기대
넷플릭스 다큐 공식 이미지

모든 일의 시작은 뉴욕타임스의 르포 기사로부터였다. 화장실이 미비한 저개발국가에서는 분뇨를 주변 하천에 그대로 버리는데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해서 많은 사람이 이질로 사망한다는 내용이었다.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런 이슈에 이미 길든 독자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기사였다.

미국 시애틀에서 사는 어느 부부는 여느 독자라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질문을 던졌다. 요즘 세상에도 설사 때문에 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야? 관심이 커지자 부부는 원인을 파고들기 시작했고 결국 해결책을 찾아냈다. 수천만 명의 목숨을 구한 부부는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멜린다였다.

최근 넷플릭스는 다큐 ‘불편한 진실 An Inconvenient Truth’로 친숙한 데이비스 구겐하임의 신작 ‘빌의 두뇌는 어떻게 작동하나(Inside Bill’s Brain)’를 방영했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빌 게이츠 부부가 만든 빌-멜린다 재단이 인류의 3가지 난제(화장실 개선, 소아마비 퇴치, 안전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3부작으로 자세히 묘사했다. 

빌 게이츠는 분신과도 같은 마이크로소프트를 2008년에 완전히 떠났다. CES 2008에서 한  기조 연설에서 ‘마지막 출근일’이라는 패러디 영상을 틀었는데 회사를 그만두면 뭘 하지 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모습으로 청중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영상과 달리 빌 게이츠는 무엇을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2000년에 창립한 빌-멜린다 재단에 올인하는 것이었다.

빌 게이츠 부부의 자선활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가장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20여 년의 세월 동안 빌-멜린다 재단은 한결같이 매일 50억 원(5억 원이 아님) 을 인도주의적 사업에 투자해왔다. 과거 세계 1위의 부자였고 지금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를 가졌으면서도 거의 전 재산을 재단에 쏟아붓고 있다. 3명의 자녀에게는 재산의 0.02%만(0.2%가 아님) 주기로 한 것도 화제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이크로소프트 재직 시절 독과점 혐의로 ‘실리콘밸리의 악마’ 소리까지 들었던 빌 게이츠가 사업에서 손을 뗀 후 천사가 되어 박애주의자로 변신한 것 같다. 그런데 빌 게이츠 다큐는 그 이상의 동기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빌 게이츠는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매년 ‘생각 주간’을 보내고 있다. 한적한 호숫가 작은 집에서 외부로부터 단절한 채 1주일간 여러 주제의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이런 식이다. 특정 이슈를 놓고 다양한 정보를 습득한다. 그다음 하나의 틀에 넣고 체계화한다. 세부적인 실행 방안은 생각의 폴더에 분류한 정보를 그때그때 재구성하면서 얻어진다. 컴퓨터 CPU가 작동하는 방식인데 멜린다는 남편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엑셀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것 같다고 평할 정도다.  

개인이 만든 재단으로 가장 큰 규모인 빌-멜린다 재단이 수행하는 프로젝트는 어느 것 하나 난제가 아닌 것이 없다. 재단의 두뇌 역할을 하는 빌 게이츠는 난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최적화(optimization)라고 부른다. 저개발국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인적, 기술적 자본이 필요하다. 한쪽에 편중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는 최적화 과정이야말로 빌 게이츠의 ‘이과적 두뇌’가 제일 흥미 있어 하는 코딩인 셈이다.  

저개발국가에 화장실과 분뇨 처리 설비를 만드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저개발국가는 대부분 제대로 된 상하수도 시스템 없이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그러다 보니 넘치는 분뇨를 근처 하천에 내다 버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오염된 하천이 유일한 식수원이라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이었다. 수많은 인구의 ‘싸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진국 수준의 화장실과 분뇨처리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가동하려면 엄청난 양의 물과 전력이 필요하다. 해결책은 외부에서 물과 전력을 공급하지 않아도 되는 분뇨 처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시행착오 끝에 ‘옴니 프로세서’라는 설비를 만들었다. 화장실에 모인 분뇨를 끓여서 증기를 내고, 그것으로 터빈을 돌려 화장실과 분뇨처리시설을 자체적으로 가동하는 장치다. 분뇨에서 추출한 수분을 정화해 식수까지 생산한다. 
 

서구에서는 1950년대 이후 완전히 퇴치된 소아마비가 아프리카에는 여전히 만연하다. 빌 게이츠의 목표는 지구상에서 소아마비를 근절하는 것이다. 첫 대상지 나이지리아에서는 백신과 접종할  자원봉사자를 충분히 확보했음에도 소아마비 발병률은 줄어들지 않았다. 원인을 분석해보니 지도가 문제였다. 영국인들이 1945년에 만든 후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은 지도를 보고 구석구석 퍼져있는 마을을 찾아다녀서 접종 대상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고해상도의 위성사진을 가지고 매핑 알고리즘을 짜서 정확한 나이지리아 지도를 만들자 효율적인 접종이 가능했다. 

빌-멜린다 재단의 가장 큰 목표는 인류를 위해 안전한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약 77억 명 인류는 생존을 위해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막대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그 결과 지구 온난화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수준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뜨거운 감자는 원자력 발전이다.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는데 가성비가 제일 좋은 수단이지만 후쿠시마 원전 폭발처럼 잠재적 위험성도 가장 크다. 풍력, 태양력 같은 대안이 있지만 인류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에 태부족이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빌 게이츠의 대안은 냉각수 대신 액체 금속을 냉매로 사용하는 고속 증식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난제에 부딪힐 때마다 지금까지 어떤 시도를 했는가, 그 시도는 왜 실패했는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신과 주변에 던졌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성급한 낙관주의자’라고 지칭한다. 결과는 낙관하지만 그 과정은 최대한 서두르겠다는 의미다. 이것만큼 그를 잘 묘사하는 말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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