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마음이 힘든 분들을 만나다보면 꼭 하시는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요?”

저는 이 질문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생제도 일주일 내지 이주일 동안 꾸준히 복용해야 감염증에서 벗어날 수 있고, 결핵약 같은 경우는 6개월 정도는 제대로 약을 복용해야 결핵이 완치될 수 있습니다. 고혈압약 같은 경우는 적정 혈압 수치를 유지하기 위해 평생 복용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몸에 대한 약과 마찬가지로 마음에 대한 약 같은 경우에도 몇 주를 복용해야 할지, 몇 달을 복용해야 할지, 몇 년을 복용해야 할지 약을 복용하는 당사자가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과연 정신과 약은 어떻게 복용해야 할까요? 몸의 질병마다 약 복용을 해야 하는 기간이 다르듯이 마음의 병에 따라서도 약을 먹는 기간이 다릅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교과서를 기준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울증의 경우는 최소한 6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항우울제를 복용 해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우울증 에피소드의 기간이 6개월 보다 길 경우에는 우울증 에피소드의 기간에 준해서 약 복용을 해야 합니다. 중증 우울증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2년 반 안쪽으로 우울증이 재발 된 경우 5년 동안의 예방적 치료가 필요합니다. 심각한 자살 사고가 있었거나 정신사회적 기능에 중대한 손상이 있었던 경우에도 예방적 치료가 필요합니다.

"마음에 대한 약을 드시는 것은 마음의 깁스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사진=한국저작권위원회

 저는 진료실에서 발병한지 6개월 미만인 초발 우울증 환자분들께 비유적으로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면 깁스를 하고 부러진 부위의 안정 돕잖아요. 마음에 대한 약을 드시는 것은 마음의 깁스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충분한 안정을 취한 후에, 즉 충분한 종류와 용량의 약을 복용 한 후에 6개월 정도 지나고 나서 우리가 함께 약을 점점 줄여가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거예요. 너무 급하게 할 필요도 너무 천천히 할 필요도 없고요. 그리고 과정 중에 약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르시면 저한테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좀 더 심한 마음의 병인 양극성장애(조울증)의 경우에는 급성기 치료 뿐만 아니라 예방적 치료가 우울증 이상으로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조증 에피소드 같은 경우는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참고한 정신과 교과서인 ‘Synopsis of Psychiatry’의 경우에는 양극성장애에 대한 예방적 치료기간에 대해서는 별다른 안내가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재발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예방의 효과가 있으면서도 부작용이 최소한인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상대적으로 정신질환 중에서 장애를 가장 많이 일으킨다고 알려진 조현병의 경우에는 여러번의 급성기 증상을 경험하는 경우는 최소한 5년 이상의 유지치료가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평생 약을 지속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약을 중단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안타까운 건 진료 현장에서 만난, 기존에 정신과 치료를 경험했던 적지 않은 분들이 약 중단을 자의로 하신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 중에 상당수는 진료 현장에서 적지 않은 경우 치료 기간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저는 치료 기간에 대한 설명은 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약을 갑자기 중단할 경우에는 금단증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담배의 금단증상이 그러하듯이 금단증상은 사람의 마음 뿐만 아니라 몸에 있어서도 불편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금단증상을 주의해야 할 약은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항불안제입니다. 자낙스(성분명: 알프라졸람), 바리움(성분명: 디아제팜), 아티반(상품명: 로라제팜)과 같은 약이 이 계열의 약입니다. 빠른 항불안 효과와 안정을 도와주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장기간 사용할 경우 신체적 및 심리적 의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은 1~2주 정도의 단기간 사용될 경우 내성, 의존성, 금단증상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이 그 이상의 장기간 사용될 경우 내성, 의존성이 발현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하여 우울, 불안의 급성기에만 필요 시에 단기간 사용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로만 조절되는 증상을 가진 경우에는 약을 지속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적절하게 약 용량을 서서히 줄여가야 합니다. 그 적절한 수준은 1주일에 25% 정도의 용량입니다. 서서히 줄이지 않을 경우에 경험할 수 있는 금단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안, 예민함, 불면, 손떨림, 청각과민, 지각과민, 근경련증, 구역감, 섬망, 집중력의 어려움, 경련 등.

약의 복용기간에 대한 대략적인 말씀을 드렸습니다. 약 복용기간에 대한 궁금증은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약의 복용으로 인한 증상호전, 부작용 발현이 개인의 삶의 질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약의 갑작스러운 중단으로 인한 금단증상의 발현 또한 일상생활을 적지 않게 불편하게 혹은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받으시는 경우 마음의 병에 대한 진단명을 제대로 알고, 치료 계획에 대한 설명을 담당 의사에게 듣고, 약물 치료 중단에 대한 치료적 논의도 잘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신과를 이용하시는 경우에 적절한 진단을 받으시고 적정기간 충분용량의 약 복용을 통해 마음의 힘든 상태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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