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골동품 집산지였던 황학동 벼룩시장. 1983년 장안평에 고미술상가가 조성되며 점포들이 옮겨가고, 그 자리에 중고품 만물상들이 모여들었다. 최근에는 골동품 수집가들부터 빈티지 패션을 즐기는 젊은이들까지 즐겨 찾는 명소다. 드라마 세트장같은 옛날 물건이 가득하다. 추억의 레코드 판부터, 패션 소품, 먹거리,헌 책, 전자기기까지, 탱크 빼고 없는 게 없었다던 옛 황학동의 전성기를 느낄 수 있다.


시장 길을 따라 걷다보면, 동묘공원이라는 비석이 서 있다. 서울 흥인지문(보물 제1호) 밖에 있는 동묘는 중국 촉한의 유명한 장군인 관우에게 제사지내는 묘로 원래 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이다.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 왕이 직접 보내온 현판과 함께 만들어졌다. 동묘를 구경 하고 나오면 바로 앞에 끝없는 좌판이 펼쳐져 있다. 동묘앞 3번 출구부터 시작되는 벼룩시장은 주말에 특히 활기가 넘친다.

한국 문학사의 공백을 메우는 '책 수집광'
벼룩시장 초입에 나타나는 점포가 있다. 바로 '둥지 갤러리'다. 작년 11월 둘째주 일요일,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가 문승묵 대표(56)를 만났다. 문 대표는 이미 청계천 쪽에서는 12년간 골동품 가게를 운영해온 잔뼈 굵은 수집가다. 소장품이 많아 청계천 매장을 창고용으로 두고 두 달 전 동묘 벼룩시장 안에 둥지 갤러리를 열었다. 직장을 명예퇴직한 뒤 꾸준히 모아왔던 물건들을 내놓았다.

“어릴 때부터 수집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 우표수집으로 시작해서 중고등학교 화폐수집, 대학교때는 시집과 소설책을 중심으로 책 수집을 해 오던 것이 시작이 됐죠.” 근대사에 관심이 많았기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문학작품들을 발굴해 발표함으로써 문학사의 공백을 메우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문예 계간지 '미네르바'를 통해 신동엽, 서정주, 백석 등의 작품을 잇따라 발굴해 공개했다.


‘떠나가는 배’ 로 유명한 박용철 시인의 책은 한 권에 몇 백만 원의 가치가 있다. 책의 가치는 작가의 인기, 희소가치에 의해 결정되는데, 초판이어야 하고 상태도 좋아야 한다. 인쇄본은 유일본이 아니다. 내용은 다 아는 것이므로 실물로써 완전해야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한 장이라도 훼손 되면 가치가 떨어진다. 요즘에는 책 중에서도 만화 값이 오르는 편. 70년대 붐을 일으켰던 고우영 성인만화 시리즈도 인기가 많다.

오만 잡동사니? 분야별 최고의 물건들만 모았다
“수집기준은 주로 나보다 고객들의 입맛에 맞추고 있어요. 인형을 점포 앞길에 깔아 수집품을 보여주고 있지요. 우리 가게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의미에요. 동묘 벼룩시장에서는 구제 옷이 제일 잘나가는데, 깔끔하게 차린 데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오히려 저희 가게 들어오려 하면 눈치를 봐요. 일단 들어오면 동묘앞 벼룩시장도 싸구려 물건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값이 나가는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둥지의 수집품은 책을 중심으로 하지만 다양한 분첩 콜렉션과, 당대의 여배우 사진으로 이루어진 1978년 달력, 타자기, 유리제품, 종이 딱지, 라디오, 인형, 아프리카에서 온 가면, 상아 조각 등 박물관이 따로 없다. 취급하는 제품이 뭐냐는 질문에 “오만 잡동사니죠.” 라고 말하지만, 매장 내에 있는 모든 물건은 하나하나 직접 고른 제품이다. 상인들이 갖다주는 것도 있고, 시장이나 지방으로 직접 돌아다니기도 하고, 인터넷 경매를 통하기도 한다.

"수집가로서 1등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가치가 있을 만한 것을 파악하고, 물건의 폭을 좁혀야 해요.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서 최고가 되라는 거죠. 폭을 좁히면 어디가서도 자기가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손을 안되게 되거든요. 그 대신 자기 수집품에서 최고로 평가되는 물건이 항상 있어야 합니다. 그런 물건이 기다리고 있다가 딱 나왔을 때 수집가들은 그걸 살 수 있는 거죠.”

꾸준한 수집으로 전시회도 하고 책도 쓰고, '결과물'로 평가받고자 한다는 둥지. 다른 가게와의 차별화가 가장 큰 목표이다. “상아 같은 경우도 이빨 자체보다 상아를 이용한 조각이나 아이보리라는 색깔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있는거죠. 그 자체로는 원시적이고 재미가 없잖아요.” 어느 가게에 가도 있을 만한 것들은 취급하지 않는다. "둥지에만 있는 물건을 보여주고 싶다"는 문 대표의 고집이다.

문의) 둥지 갤러리 02-2236-3792 / 011-258-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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