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R&D(연구개발)는 산업경쟁력 강화의 도구였죠. 이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혁신의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송위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과학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송 위원은 지난 7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10월 월례조회에 초청돼 '사회문제 해결형 과학기술혁신과 사회적경제'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송 위원이 언급한 'R&D'는 'Research&Development'의 줄임말로 연구 결과를 응용해 상품을 개발하거나, 산업에 활용할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걸 의미한다.

국책 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송위진 선임연구위원은 사회문제 해결형 과학기술혁신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R&D, 문제 중심 접근으로 프레임 전환

송 위원은 "과학기술 정책에서 속도보다 방향성이 중요해졌다"며 "사회 통합을 이뤄내고 고용을 유지하는 지속가능한 혁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R&D로 혁신과 산업발전을 이루면 자연스레 사회문제가 해결되리라 여겼다면, 이제는 풀어야 할 사회문제를 먼저 구체화한 후 그에 맞춰 R&D 혁신을 꾀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이 나타나거나 기존 산업이 발전할 수도 있다.

2015년 9월 UN 총회에서 채택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17가지. /자료제공=ODA KOREA

문제 선정의 대표적인 틀로서는 ‘UN SDGs(지속가능개발목표)’가 있다. SDGs에는 세계 사회가 빈곤 종식을 위해 2016~2030년까지 노력해야 할 주요 계획이 담겼다. 송 위원은 "지향하는 가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UN이 정한 문제들은 객관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SDGs를 달성하기 위한 미션을 많이 정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기술+시민사회=리빙랩

송 위원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R&D의 구체적인 틀로 '리빙랩(living lab)'을 제시했다. 리빙랩이란 2004년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윌리엄 미첼 교수가 처음 내놓은 개념으로,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실제 사용자가 될 시민?전문가가 문제해결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해 기술을 실험?실증한다. 송 위원은 "과거 랩(lab)은 전문가들만 모여서 연구하는 실험실이었는데, 리빙랩은 우리가 사는 곳을 실험지로 정해서 연구하고 결과를 확산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할 리빙랩에서 진행하는 R&D는 기존 방식과는 다르다. 기존 R&D는 기술 기획에 초점을 맞춰 연구자 중심으로 결과물을 내놨다. R&D 리빙랩의 특징은 연구기관과 시민사회가 함께 모여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결정해서 해결 방법을 실험하는 게 아니라, 현장의 당사자들과 함께 논의해서 대안을 만들어간다. 최종 수요자 중심의 해결 방안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리빙랩에 대한 공감대는 점점 커져 재작년 3월에는 민간 활동가들이 중심이 돼 '한국리빙랩네트워크(KNoLL)'을 발족했다. 이들은 리빙랩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연구하고, 최근에는 16차 포럼까지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밖에도 대학 리빙랩 네트워크나 지역별 리빙랩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다.

기존 R&D와 사회문제해결형 R&D를 비교한 내용. /자료=사회문제 해결형 R&D사업 운영관리 가이드라인

정부는 시민사회와 연구자가 협력하는 R&D사업 방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2016년 '사회문제 해결형 R&D사업 운영관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한 바 있다. 이후에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연구팀에 직접 참가하는 등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사회적기업 ‘가온누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하는 사회문제 해결형 R&D 사업에서 리빙랩 운영기관으로 선정돼 야간 작업자들을 위한 LED 안전 작업복을 만드는 일에 참여한 바 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리빙랩은 익숙한 개념이 아니지만, 그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연구자-시민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문가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과학기술이 수요자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송 위원은 이를 위해 법, 제도 개선과 관련 부처 간의 협업 등을 요청했다. 그는 "그동안 기업에서만 주로 활용했던 R&D 사업을 공공자원으로 활용한다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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