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보노는 단순한 자원봉사가 아니에요.
프로보노 활동을 통해 서비스 제공자도, 수혜자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프로보노를 통해 체인지메이커가 되는 기회를 가져갔으면 좋겠습니다.”

-CSR WIDE 임태형 소장

임태형 CSR WIDE 대표는 "프로보노는 차별성이 필수"라며 "전문성을 갖추고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제공=정호영 작가

1989년, 미국변호사협회는 ‘로펌 프로보노 챌린지(Law Firm Pro Bono Challenge Project)’라는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변호사들에게 연간 최소 50시간 이상의 무료 변론 혹은 공익 활동을 권고한 것. 여기서 사용한 ‘프로보노(pro bono)’라는 말은 라틴어로 ‘프로보노 퍼블리코(Probono Publico: 공익을 위하여)’에서 유래된 용어다.

변호사들이 여유가 없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무료 변론과 법적 자문 하는 일을 가리켰던 프로보노는 현재 그 의미가 의료·교육·경영·전문기술·예술 등의 분야로 확장됐다. 전문가가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공익에 활용하는 일, 혹은 그런 사람을 의미한다.

프로보노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는 30년이 넘었지만, 국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임태형 CSR WIDE 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 변호사들 중심으로 프로보노 활동이 시작됐지만, 아직 활성화가 되진 않은 상태”라며 “수혜대상뿐 아니라 프로보노에 참여한 기업·개인·직원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활동이기에 앞으로 더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보노=자원봉사?

애듀툴킷디자인연구소는 지난해 툴킷 개발 과정에서의 저작권, 상표 등록과 관련해 프로보노의 도움을 받았다. /사진제공=애듀툴킷디자인연구소

프로보노는 자신의 경험, 지식, 기술 등 전문성을 기부하는 새로운 사회공헌 모델이다. 자원봉사 활동의 한 영역이지만, 완전히 같은 표현이라 보기는 힘들다. 본질은 같되 더 좁은 의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노력봉사와는 달리 프로보노 활동은 전문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개인보다는 사회적기업과 같은 조직의 경영능력을 높여 사회적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전문지식과 기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전제한다는 점에서도 자원봉사와는 구분된다. 프로보노 사업은 당장 경영적 도움을 위한 방편 이상의 의미다.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지역사회 협력 전략으로, 시장과의 지속적 소통·교류를 전제한다. 장기적으로 조직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순 자원봉사 활동과는 다르다.

공공기관부터 대학생까지, 사회적경제 돕는 프로보노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프로보노는 '역량 강화를 위한 열쇠'다. 정창래 행복나눔재단 SE육성팀 매니저는 ‘투입시간 대비 높은 사회적 임팩트’를 프로보노의 장점으로 꼽았다. 전문성을 가진 기업 임직원이 프로보노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 ▲기업의 네트워크 확대 ▲브랜드 및 이미지 개선 및 홍보 효과 ▲지역사회 내 영업력 증대에 영향을 미친다.

국내 사회적경제 프로보노 운동은 (사)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세스넷)가 2008년부터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프로보노 운동의 산파 역할을 하면서 본격화됐다. 2017년부터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사회적경제 기업과 프로보노를 연결하는 플랫폼 ‘재능기부뱅크’ 운영을 시작하며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2018년 재능기부뱅크에 참여한 프로보노는 265명, 기업은 52개다. 일대일 멘토링은 96건, 교육 멘토링은 47건이 이뤄졌으며, 경영전략, 마케팅·홍보, 법률, 변리, 재무·회계 인사·노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프로보노가 활약했다. 진흥원에 따르면 이러한 활동을 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총 294시간의 프로보노 활동이 이루어졌다.

2018년에 재능기부뱅크를 통해 진행된 프로보노 활동 현황. /자료=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민간기업에서도 프로보노 활동은 새로운 조류로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SK프로보노,’ ‘코오롱 사회봉사단’이 있다. SK는 2009년 대기업 최초로 재능나눔 자원봉사단인 'SK프로보노 경영자문봉사단'을 출범시킨 후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코오롱 사회봉사단은 2014년 발족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청년 소셜벤처에 도움을 제공한다. 올해 만들어진 프로보노 조직도 있다. 지난 5월 소셜밸류커넥트2019(SOVAC) 행사에 모인 이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KPBN(Korea Pro Bono Network)이 대표적이다. KPBN은 프로보노 활성화를 위해 기업, 중간지원조직, 유관기관 등이 함께 만든 모임이다.?? 지난 8월 첫 세미나를 개최해 이래 오는 12월 두 번째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SICA x 사회적경제기업 프로보노 오리엔테이션&매칭데이’가 열린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김순전홀. /사진=박재하 사진기자

대학가에서도 프로보노 운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최근 연세대학교에서는 'SICA x 사회적경제기업 프로보노 오리엔테이션&매칭데이’가 열렸다. SICA(사회혁신학회, Social Innovation Creators’ Academia)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사회문제를 교육하고 문제해결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대학 내 사회혁신가 양성에 앞장선다. SICA 소속 대학생 프로보노는 진흥원과 상상우리의 지원을 받아 3개월 동안 프로보노 활동을 진행한다. 4개의 사회적경제 기업(△비타민엔젤스 △제로마켓 △이음커뮤니티 △티클)의 문제(소셜마케팅·서비스기획·영어 통번역·웹디자인 등)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도출할 계획이다.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는 “대학생이지만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크고 전문성이 충분한 친구들”이라며 “이들의 아이디어가 도움이 될 것 같아 프로보노 활동을 지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활발한 지구촌 프로보노 활동, 그 비결은? 

해외에서 프로보노 관련 조직으로 유명한 단체는 미국 프로보노 중간지원조직인 ‘탭룻재단(Taproot Foundation)’이다. 탭룻재단은 비영리기구와 숙련 봉사자들을 보유한 사회혁신 기업을 연결한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코, 로스앤젤레스, 워싱턴 D.C.에 사무소를 둘 정도로 규모가 크다. 2001년 문을 연 후 12,430번의 연결과 170만 시간에 달하는 프로보노 서비스를 달성했다.

2013년부터 매년 '국제 프로보노 주간'을 맞아 각종 행사가 진행된다. /사진=Pro Bono Week 웹사이트

탭룻재단은 BMW 재단과 2013년부터 매년 10월 '국제 프로보노 주간(Global Pro Bono Week)'을 주관한다. 2018년 프로보노 주간에는 17개국에서 SNS 캠페인, 크라우드펀딩, 프로보노 미팅 등 54개의 프로보노 행사가 열렸다. 올해 프로보노 주간은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다.

일본도 프로보노 활동이 활발하다. 임 소장은 “탭룻재단을 방문한 일본인들이 2005년 ‘서비스 그랜트’라는 중간지원조직을 만들어 꾸준한 실적을 낸다”고 설명했다. 프로보노 중간지원조직으로 구성된 글로벌 프로보노 네트워크에 의하면 서비스 그랜트의 활약으로 매년 100회 이상의 프로보노 프로젝트가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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