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고향으로 돌아온 지 4년 차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다닌 직장에서 4년 차가 되었을 때 퇴사를 했으니 꼭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1년도 못 버티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줄 알았던 동료들은 여전히 강릉에 살고 있는 필자를 신기해한다. 필자 역시 가끔 놀라곤 한다. 지난 4년은 고향에서 프리랜서로 고군분투한 시간이기도 했다. 비정규직으로 2년. 정규직으로 4년.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서기 이전에 두 가지를 다 경험해보아서인지 그 길을 택하는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정해진 틀에 갇히는 걸 몹시 답답해하는 성향인 걸 스스로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안하지 않았느냐고. 사실 그런 마음은 회사를 다닐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같다.

처음 고향을 돌아와선 반백수였다. 일주일에 한 편씩 온라인 매체에 여행기를 기고하는 것이 주 수입이었다. 서울에선 나가는 순간 돈이 나갔지만, 고향에선 그렇지 않았다. 걷는 걸 좋아하는 필자에게 고향은 돈이 들지 않는 행복을 발견하게 해주는 최적의 장소였다. 걷다 보면 바다에 이르고, 호수에 도착하는 곳이 고향인 건 큰 행운이었다. 바다도 좋지만 호수를 더 사랑했다. 생각에 잠기다 보면 끝도 없이 걸어서 돌아오는 길이 막막하기도 한데, 호수는 출발지가 도착지여서 길을 헤맬 걱정이 없었다. 경포호를 자주 찾았다. 꽝꽝 언 호수 위를 아장아장 걸었던 때부터 추억이 깃든 곳이다. 익숙한 장소지만 갈 때마다 숨은 그림찾기하듯 발견해내는 것이 있었다. 가시연. 부들. 노랑어리연. 수련. 식물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컸다. 그러면서 경포호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호수인 석호라는 걸 알게 됐다. 이러한 석호가 강원도 동해안에만 있다고 한다. 자연적으로 생겨나서 언젠가는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호수. 석호 여행을 결심한 순간이다.

경포호에서 만난 습지해설사를 통해 강릉부터 고성까지 18곳의 석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까운 곳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아버지와 함께 했다. 아버지는 그동안 놓았던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익숙한 경포호도 다시 보였다. 때를 기다렸다 피어난 가시연은 아팠던 경포호가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어서 감사했다. 풍호는 지금은 볼 수 없는 호수였다. 대신 마을 사람들이 추억을 복원하여 매년 여름 풍호마을 연꽃 축제를 열고 있었다. 순포호는 생태습지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지금은 순채가 다시 피어날 날을 그리고 있다. 향호는 질이 좋은 규사가 호수 바닥에 있어서 지나친 규사 채취로 인해 수심이 깊어진 호수였다. 늘 내어주느라 건강을 잃은 호수에 안타까움이 컸다.

이어 양양의 매호, 염개호, 군개호, 쌍호, 가평리습지. 속초의 청초호, 영랑호. 고성의 광포호, 봉포호, 봉포습지, 천진호, 송지호, 선유담, 화진포호까지 차례차례 돌아보았다.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곳은 관리 담당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돌아보니 이미 사라진 호수가 있었고, 머지않아 사라질 호수가 있었다. 석호는 자연적으로 생겨나서 자연적으로 육지화되는 것이 운명이지만, 인위적인 개발로 그 시간이 앞당겨지고 말았다. 바다와 민물이 섞여 있는 기수호여서 바다 곁에 자리하고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기 쉬웠다. 강원도 석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사진으로, 필자는 글로 호수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게 모인 글과 사진은 책이 되었다. 독립출판으로 책이 만들어졌다. 책 디자인은 셋째 동생의 수고가 컸다.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75명의 마음이 모였다. 첫 책 <뷰레이크타임> 은 그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호수를 돌아보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책은 또 다른 여행길을 열어주었다. 고향여행자가 되었다. 고향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여행이다. 고향여행 이야기는 앞으로 차근차근 전하려 한다. 4년 전 고향으로 돌아올 용기를 낸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첫 번째 편지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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