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에서 추출한 소재로 만든 블루보틀 커피 포장재. 재질이 다른 밀봉용 끈은 쉽게 뜯어져 분리배출할 때 편리하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사촌동생이 엊그제 한국 방문길에 커피 1봉지를 선물로 줬다. 요즘 한창 뜨는 커피 ‘블루보틀(Blue Bottle)’이다. 햄버거와 핫도그로 유명한 미국의 쉑쉑(Shake Shake)이 한국에 상륙했을 때도 그랬듯이 난 긴 줄을 서야 하는 곳은 질색이라 블루보틀 커피는 입에 댄 적도 없었다. 그런데 선물을 받고 나서 그 회사의 홈페이지까지 들어가 봤다. 왜?

포장지 때문이다. 커피가 담긴 봉투는 옥수수에서 추출한 100% 생분해되는 재질이다. 그 뒷면에는 이 같은 설명과 함께 버리기 전에 입구를 밀봉했던 끈을 제거해달라는 당부의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친환경 소재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참 쉬운 분리배출 방법이었다. 

그때 평소의 내 모습이 떠올라 씁쓸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선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만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다. 분리 배출 전 보통 우유팩은 씻어서 말리고 복합 재질로 구성된 포장재는 최대한 분리한다. 공책의 딱딱한 표지는 제거하고 용수철 역시 분리한다. 생수병도 페트인 몸통과 플라스틱인 뚜껑, 비닐인 라벨 3가지를 각각 분리해 버린다. 

어디 그뿐이랴. 접착제로 병에 부착된 라벨은 물에 불려서 떼어낸 뒤 깨끗한 상태로 병을 내놓는다. 아쉽게도 모든 라벨이 쉽게 떨어지는 건 아니다.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본체에 철석같이 달라붙어 옴짝달싹 못하는 것들이 대다수다. 손가락 관절에 무리가 느껴질 때면 포기하고 그냥 버린다. 그때마다 든 생각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이런 방법이 아니면 소비자들에게 그 상품의 가치와 이름을 알릴 수 없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여기에 남편의 비아냥까지 얹어지는 날이면 피로도는 극에 달한다.

 “대한민국처럼 그렇게 힘들게 분리배출하는 나라는 세상에 없을 거다.”

내가 분리수거에 유난을 떠는 까닭은 쓰레기 제로(0)를 미션으로 활동하는 기업 ‘테라사이클’의 한국지사 담당자를 만난 이후다.

 “ 한국의 재활용률이 세계 일류급이라지만 허수가 많아요.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해 간다고 해서 모두 재활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보다는 비용이나 기술적인 문제로 땅에 묻히거나 소각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그동안 ‘분리수거=재활용’이라 믿었는데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최근 중국발 쓰레기 대란과 쓰레기 5000톤 위장수출 사건 이후 정부와 기업에서 꿈틀거림이 포착되고 있다. 한 홈쇼핑에서는 ‘어디서 구매했든 상관없이 보냉재를 모으면 수거해 간다'라며 대형마트에서 비닐봉지를 없앤데 이어 장바구니를 대신하는 포장박스와 비닐 테이프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난주 내가 장을 본 동네의 대형마트에서는 여전히 박스와 비닐테이프가 사용되고 있었다. 보냉재 역시 모아보긴 했지만 막상 보내려니 귀찮아 그냥 일반 쓰레기통에 버렸다. 점점 분리배출에 피로감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 

시민의식에 호소해 이래라저래라 하기 전에 기업과 정부가 나서서 보다 쉽게 분리배출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낼 순 없는 걸까.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분리배출 방식이 너무 복잡하고 조건이 까다롭다. 시민들은 분리배출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20여 년 전 내가 3년간 살았던 독일 베를린은 일찍부터 친소비자적인 접근 방법으로 재활용률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독일어가 서툰 외국인에게조차 분리배출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매력적인 유인책은 판트(Pfand)라는 보증금 환불 제도다. 우리나라에선 소주와 맥주병에만 보증금 제도가 있지만 독일에서는 생수가 담긴 대부분의 페트병과 맥주병, 캔도 보증금 환불제 대상이다.

마트에는 공병 수거기가 비치되어 빈병을 넣으면 기계가 자동으로 스캔해 금액을 알려주고, 이를 출력하면 계산대에서 그만큼 가격을 공제해준다. 물론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도 있다. 음료수 전문 매장에선 더 쉽다. 빈병이 담긴 박스 그대로 카트에 싣고 가면 계산이 된다. 

독일에서는 음료의 가격과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페트병 0.25유로, 맥주 유리병 0.08유로를 돌려받을 수 있다. 독일은 소비자 물가가 저렴해 빈 병, 캔을 몇 개 재활용하면 다른 식품이나 생필품을 사는데 큰 보탬이 된다. 

이 같은 유인책 덕분인지 매년 판트 환급금 규모는 무려 1억 7200만 유로(약 2290억 원)에 달한다. 한 독일의 시민단체는 판트제도를 활용한 기부 캠페인도 벌였다. 노숙인을 위해 빈병을 쓰레기통 앞에 두고 가자는 캠페인이다. 

일본의 경우 재활용 병 라벨에는 1-1.5cm 간격의 이중 절취선이 있다. 절취선을 붙잡고 아래로 내리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깨끗이 라벨을 벗겨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환경에 유해하니 밑지더라도 물건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말은 감히 하기 어렵다. 태생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세한 기업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국내의 경우 대형마트에서는 비닐 사용을 금지하지만 재래시장에선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이유와 같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힘써야 하는 사람은 자본이 넉넉한 큰 기업들과 한 국가의 발전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나랏분들이다. 

소비자들의 시민의식에 호소하기보다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서부터 이를 유통하는 단계까지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분리배출 방식이 너무 복잡하고 조건이 까다롭다. 시민들은 분리배출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많은 공무원들이 해외의 좋은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탐방을 가고 연구를 한다.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진행돼온 다양한 사례들과 그 한계점들을 모를 리 만무하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 주부들은 왜 여전히 어렵게 분리수거를 해야 할까? 왜 힘들게 분리수거한 재활용품들이 땅에 묻히거나 태워지는 걸까? 기업이 아니라 고객의 관점에서 수거방식을 바라보면 새로운 답이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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