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토론회 ‘괜찮아마을은 정말 괜찮은 걸까?’에서 문승규 이장이 공동 성명서를 낭독했다. /사진=작은도시기획자들

지난 9월 21일, 서울시 중구 로컬스티치 소공점에서는 기획자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괜찮아마을은 정말 괜찮은 걸까?’라는 제목의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최근 기획안 도용 문제로 논란이 벌어진 ‘괜찮아마을’ 사태에 문제의식을 느낀 현장활동가들이 기획자 권리 개선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토론회 주체인 ‘작은도시기획자들’의 문승규 이장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비슷한 문제에 대해 행정가들이 안일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획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행동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도대체 괜찮아마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괜찮아마을’ 사태, 왜 불거졌나?

괜찮아마을은 ㈜공장공장이 청년들과 목포 원도심에 있는 빈집을 활용해 공간을 만들고, 저렴한 가격에 머물면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을 벌이는 프로젝트다.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는 지방소멸, 지역경제 침체 등으로 방치되는 공간이 증가하는 일을 개선하기 위해 작년 하반기 '시민주도 공간활성화 프로젝트'를 공모했고, 공장공장의 '괜찮아마을'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사업은 12월에 끝났고, 그 결과 도시 청년 32명이 지역에 정착했다. 행안부는 올해 3~4월 지원 규모를 더 키운 후속 사업으로 ‘청년들이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을 공모해 '삶기술학교‘를 제안한 '자이엔트'를 주관 운영단체로 최종 선정했다.

공장공장 측은 괜찮아마을 페이스북에 "괜찮아마을 기획에 대한 삶기술학교 측 무단 도용에 대해서 행정안전부와 삶기술학교에 설명과 사과, 개선을 요청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사진=괜찮아마을 페이스북 캡처

문제가 불거진 건 삶기술학교가 올해 운영계획에 넣은 표가 괜찮아마을의 초기 기획에 있던 표와 유사한 구성·내용이라는 걸 공장공장 측이 지난 8월 3일 받은 삶기술학교 설명회 참석 요청 메일에서 확인하면서다. 사전에 동의 없이 사용한 점에 대해 공장공장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행안부, 자이엔트 모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게 공장공장 측의 설명이다.

공장공장 측은 지난 8월 12일, 괜찮아마을 페이스북에 "괜찮아마을 기획에 대한 삶기술학교 측 무단 도용에 대해서 행정안전부와 삶기술학교에 설명과 사과, 개선을 요청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과 공장공장 박명호·홍동우 대표의 게시물에 달린 링크는 300회가 넘게 공유되며 SNS상에 퍼졌다.

문제가 불거지면서 공장공장, 행안부, 자이엔트 세 기관은 지난 8월 19일 해당 문제 해결을 위해 대면하는 자리를 가졌다. 공장공장은 이날 자리에서 ▲괜찮아마을 측 기획 도용에 대한 과정 해명과 사과 ▲문제 제기 묵살에 대한 이유 해명과 사과 ▲어떤 개선을 계획하고 있는지 개선 방향에 대한 의견 등을 두 기관에 요구했다. 이후 자이엔트는 페이스북 계정에 “선행사업자였던 공장공장 측에 미리 자문을 구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켰어야 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삶기술학교 측에서 페이스북에 올린 공식 입장문에서는 우리 요구 사항들을 반영하지 않았으며, 삶기술학교가 아닌 자이엔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글이므로 삶기술학교 페이지만 보는 사람들은 이를 알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직접 만나 얘기했을 때는 행안부와 자이엔트가 문제를 인정하고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웹사이트나 SNS 등 공식적인 채널로는 어디로부터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삶기술학교 측은 자이엔트 페이스북에 공식입장을 올렸다. /사진=자이엔트스퀘어 페이스북 캡처 

행안부 측은 본지와 전화인터뷰에서 "표를 활용했지만 둘의 프로그램은 완전히 다르다. ‘도용'이라는 표현은 지나치다"며 "공공의 예산이 투입된 만큼 만들어진 자원은 국민의 것이고, 그걸 가지고 지나치게 자기 것이라 주장하며 다른 사람의 창의적인 활동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공장공장 측은 "'괜찮아마을'이라는 개념은 용역 계약/착수 전 이미 수립된 내용"이라며 "기획에서 참고한 부분, 이용한 부분에 대해 공개적으로 출처를 밝혀야 하고, 협력이 필요하면 합리적인 절차와 정당한 대가를 기반으로 한 요청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우리는 괜찮지 않다” 괜찮아마을 사태 계기로 목소리 높이는 기획자들

괜찮아마을 사태는 3자 간 만남으로 임시 봉합됐지만, 이번 사태는 비영리영역 내에서 지식재산권·사용권 기준의 모호함을 개선해야 한다는 새로운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지난 8월 해당 사안이 SNS에 퍼지면서 SNS 글에는 유사한 일을 겪은 이들의 댓글이 여럿 달렸다. ‘기획에 대한 행정 영역의 제대로 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고민은 그간 비영리 영역 내에서 지속적으로 나온 이야기라는 것이다.

문화기획사에서 일할 때 지자체에서 공모한 사업에 참여했던 B씨는 “당선작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C시가 정한 자문위원들로부터 디자인을 자문받아야 했는데, 중간에 용역 자체가 통으로 자문위원에게 넘어갔다”고 토로했다.

B씨는 과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일이 더뎌진 경험을 토로하기도 했다. “D시에서 지역 문화 공간 조성 과업을 맡았는데, 중간보고가 이미 끝난 상황에서 시가 과업을 중단하고 건축사를 바꾸는 바람에 8개월 만에 끝나야 할 과업이 2년 가까이로 늘어났다”며 “이러한 사항을 사전 협의 없이 공문으로 통보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부당함에도 문제 제기가 어렵다는 게 현장활동가들의 설명이다. 목소리를 높이다 ‘행정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북지역에서 활동하는 A씨는 “지방에서는 그런 일이 잦아도, 활동영역이 좁고 행정과 사업적으로 연결된 일이 많다 보니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식재산권·사용권에 대한 기준과 인식 필요”

지난 9월 21일 작은도시기획자들 주최로 열린 긴급토론회에 모인 이들은 “괜찮아마을과 유사한 피해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 공동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작은도시기획자들은 지역에 관한 일을 하는 회사들이 모여서 교류하는 조직으로, 괜찮아마을 사태가 논란이 되자 지난달 17일 운영진 긴급회의를 열어 긴급토론회를 SNS상에 제안했다.

이날 작은도시기획자들은 온라인상 의견수렴을 통해 마련한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이번에 불거진 사례를 통해서 문제를 공론화하고, 민관 협력 과정에서 건강한 생태계 만들기를 위해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작은도시기획자들이 이날 성명을 통해 행정 영역에 요구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기획에 대한 정당한 대가 기준 : 정성적 자원인 ‘기획’에 대한 비용 책정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2. ‘지식재산권’ 가이드라인 : 기획 및 창작 용역에 수반하는 지식 자산은 해당 사업 기간에만 한정해 사용하는 게 원칙이다. 결과물의 개별 구성요소에 대한 소유권은 수행 기업에 귀속되며, 개별 구성요소 사용 시 수행 기업으로부터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사전 활용 동의를 구하고 사용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3. 용역과 민간위탁 방식 전환 : 사업의 성격에 따라 단기·중기·장기 계획을 반영하도록 용역과 민간 위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사업 실행 전 중장기 로드맵과 단계별 계획안에 따른 객관적인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4. 무분별한 폭언, 희롱, 차별 근절 : 계약서와 협약서에 ‘차별과 폭언, 희롱 금지를 위한 이행서약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문제 발생 시 이를 해결하는 ‘고충 처리 상담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5. 업무 형평성과 소통 문제 해결 : 업무 형평성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모든 업무를 기록하고, 업무 지시와 공유는 메일과 문서로 기록을 남겨 전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행정 업무 지침에 전화와 구두로 업무 전달이 불가하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

문 이장은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우리가 발표한 공동성명에 대해 현장활동가들의 공감대를 얻은 후, 행안부 측에 공식 사과 및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과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간담회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기획에 대한 업무 기준과 가이드라인 연구·작성을 위한 TF(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행정과 입법 영역의 변화를 이끌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괜찮아마을로 촉발된 현장활동가들의 문제의식이 이후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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