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서 마주친 어린 길고양이./사진제공=손종수

시를 쓰는 가까운 두 사람과 밥을 먹었다. 인터넷에서 일용잡화부터 신발, 의류까지 온갖 상품의 유통업을 하고 계신 형님은 등단하지 않았지만(내게는 시를 쓰는데 그런 절차는 필요하지 않다는 사견이 있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사설조의 리듬으로 일상을 풍자하는 해학을 가졌고, 평소 스스럼없이 호형호제하는 아우는 등단햇수로 치면 까마득한 문단의 선배로 서정 넘치는 짧은 시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시인이다. 

‘김치찌개를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집을 발견했다’는 형님의 황소걸음을 따라 들어간 밥집은 ‘삼겹살도 죽여준다’는 말씀을 입증이라도 하듯 늦은 점심시간이었는데도 이 구석, 저 자리 불판 위에서 노릇노릇 군침 도는 빛깔의 삼겹살이 지글지글 고소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직접 부치는 조건으로, 1인당 하나씩은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 달걀부침 셋을 제작(?)해오는 사이 식탁에서는 진지한 ‘조국’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달걀부침을 내려놓으며 이마를 짚었다. 평생의 숙취로도 아파본 적 없는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뇌리를 횡행하는 조국이다. 오늘만큼은 눈과 귀 어느 곳에도 담고 싶지 않았는데 밥이나 한 끼 하자고 모인 자리에서 또! 

최대한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 ‘사전 공모론’과 ‘배후 음모론’의 곁에 주저앉아 이미 들을 만큼 듣고 물릴 만큼 물린 이야기들이 자리를 바꿔가며 새로운 소식인 척 얼굴까지 붉혀가면서 요란하게 공회전하는 기이한 현상을 다시 목격한다. 

국무위원의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한 장관이 어디 한둘인가. 왜 유독 법무부장관 후보자 한 사람만 전쟁을 치르듯 막아서는 걸까.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 신문, 방송에서 도배를 하다시피 떠들어댄 이야기들을 다시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진두지휘,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장관을 향해 칼을 겨눈, 전례 없이 강도 높은 검찰 수사로 논란이 많지만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이다. 지켜보면 결과는 드러나게 돼있고 표적이 된 쪽이든 표적에 총질을 해댄 쪽이든 그 결과에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이번 사태의 후유증 아니, 어쩌면 효과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유명 정치인들의 위선이야 신물이 나도록 알고 있지만, 그동안 가면에 가려졌던 사회 각계 지도층 인사들의 추한 민낯이 국민의 눈앞에 이렇게 대대적으로 낱낱이 드러난 적이 있었던가. 

대통령을 지지하든 법무부장관을 응원하든, 촛불을 들어 올리든 시국선언을 하든, 찬반의 광란 속에서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견딘다’는 행태로 일관된 그들은 불법, 편법 수혜의 울타리 안에 있었고 국민은 모두 그 울타리 밖에 있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찾을 때 국민은 목격한 그만큼, 깨달은 그만큼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 긍정의 여파다. 

“어허, 이 사람 목소리 좀 낮추게. 밥집에 앉아 나누는 이야기는 옆자리로 넘어가지 않을 만큼만 높이는 거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사전 공모론’과 ‘배후 음모론’의 치열한 대결은 거기서 끝났다. 사실, 그런 일들이 지금 당장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랴. 수혜의 울타리 밖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년 바람이 칼날을 벼르기 시작하는 늦가을로 접어들 때마다 두터운 외투를 마련해 서울 시내 곳곳의 지하철역을 돌며 노숙자들을 찾아다니는 형님이야말로 이 사회의 진짜 어른이고 경건한 삶의 실천자다. 

북촌에 들러 클래식기타와 바이올린의 협주를 듣고 돌아온 밤, 골목길에서 어린 길고양이와 마주쳤다. 처음에는 밥을 들고 갈 때마다 화들짝, 놀라 제 어미 등 뒤로 숨더니 이제는 어미 없이 혼자 돌아다닐 만큼, 두 눈이 또랑또랑 커지긴 했어도 몇 번 낯을 익힌 남자를 보고 달아나지 않을 만큼, 절절한 삶의 방식을 익혀가고 있었다. 

그렇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견딘다’는 당신들이 외면해온 울타리 밖에서는 늦은 밤, 마을공원 축대 위를 배회하는 어린 길고양이의 삶조차 이토록 경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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