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학원 끝나고 남경에서 만나!”

다양한 색깔의 일상이 가득한 골목 안쪽에 살고 있다. 집과 가까운 곳엔 초등학교가 있다. 아이들의 약속장소에 담긴 ‘남경’은 그 골목 어딘가에 위치한 동네 카페다. 세월이 묻어 꼬질꼬질해진 철제 간판 위에 적힌 그 이름 옆에는 꼬부랑 글씨로 ‘café’가 적혀 있다.

커피, 문구, 분식, 치킨까지. 수요자 맞춤형. 이 곳은 아이를 바래다주고 난 부모님들의 카페, 하교한 학생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는 아지트다. 언젠가 바로 옆 건물에 입주했던 감각적인 카페는 일 년을 못 버티고 사라졌다고 한다. ‘별다방’이었다고 해도 다르지 않았을 터.

경제 전문지는 남경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남경은 이 동네 경제활동의 어엿한 한 부분이다. 남경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간의 경제활동과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수많은 우리네 골목에 또 다른 남경이 있음을 상상하는 것. 사회적경제를 이해하는 시작이다.
 

경제는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사회적경제는 좌우를 넘는다』의 저자 우석훈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경제가 유달리 먼 곳에 있다고 지적한다. 재벌 2세, 차관급 이상의 공무원 정도가 하는 얘기라야 경제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하지만 국민경제의 많은 부분은 소소한 사람들의 일상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게 모여 거시 경제를 만드는 거다. 저자는 이 점을 이해해야 ‘남루한 것’, ‘비경제적인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사회적경제를 바라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어쩌면 너무 빠른 시간 안에 성장한 우리는 경제를 판타지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우리가 생각하는 거시는 너무 판타지적이고, 너무 힘이 센 것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다. 우리는 일상성을 무시하고, 삶은 경제의 영역, 아니 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판타지로 가는 동안 경제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커져 버렸고, 하늘 위로 올라가 버렸다.”(15p)

“사람들은 잘 모른다. 호기롭게 출발한 거대한 구호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별로 없다. 한구석에서 조용히 시작된 많은 일들이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가 더 많다. 경제는 특히 그러하다.”(151p)

우석훈은 ‘88만원 세대’라는 시대적 담론을 제시했던 경제학자다. 이전 세대와는 달리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첫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범국민적인 공감을 이끌어 낸 상징이다.

한때 시대를 읽었던 통찰력으로 그는 사회적경제에 주목한다. 『사회적경제는 좌우를 넘는다』를 통해 그는 저성장이 보편화된 시대에 사회적경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적경제는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 뉴 노멀 시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뉴 노멀 New Normal 시대’에 진입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말 그대로 세계경제의 ‘새로운 표준’이다. 2008년 이전까지의 세계경제는 굴곡은 있더라도 결국엔 성장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세계 최대 투자회사의 파산에서 시작한 국제금융위기는 세계경제를 흔들었고 그 영향은 오래갔다. 저성장의 시작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2008년 이전으로의 복귀는 없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이 흐름에 민감했던 선진국은 일찌감치 경제의 사회화를 시작했다. 유럽연합위원회 산하 기구인 ‘Social Economy Europe’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연합의 사회적경제 영역이 총 GDP의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아직 1%가 되지 못한 우리나라는 이제 걸음마를 떼었다고 볼 수 있다. 빠른 속도로 그 비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2008년 이후 우리 사회에 대두된 이 흐름이 더 안정화돼 새로운 구조가 될지 외면 받을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사회적경제가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여러 문제 상황에서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국가가 직접 도와주기 어려운 개별적 경제 주체들이 만나게 될 절망감, 이런 것들은 사회적경제가 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물리적이고 경제적인 조건이다."(290p)

좋은 의사결정을 목격한 사회; 평의

경제적 불황의 장기화, 앞으로 강화될 지방자치, 국가가 직접 도와주기 어려운 경제주체들이 직면할 절망감 등이 저자가 바라보는 사회적경제가 성장할 물리적 조건이다. 또한 정부와 개인도 사회적경제에 더 많은 에너지를 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대규모로 고용을 만들어 낼 특별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거시적인 개연성이 충분함에도 그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경제가 잘 작동할 수 있을지 의심했다고 고백한다. 사회적경제 분야를 연구하고, 여러 조직의 자문을 받으면서 이 조직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은 조직에서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하는 핵심적인 방법이다. 일단 결정이 내려져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기성 조직에서는 ‘돈’이라는 선명한 기준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 가끔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지만 그 기준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사회적경제에서는 고려해야 할 게 많다. 특히 그 정체성부터 공공성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갖기 때문에 “한 사람 내보내는 일이 조직 전체를 흔드는 거대한 논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겪은 어느 사건을 계기로 ‘마지막 퍼즐’을 찾았다. 2016년 12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이다. 그 결정은 헌법재판관들의 ‘평의’를 통해서였다. 평의는 헌법재판 시 심리 절차와 결정 내용을 논의하는 회의로, 헌법재판관 전원이 참석해 의견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의사결정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헌법재판관들끼리 누가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상하관계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단 한 명일지라도 반대 의견이 소수라고 무시되지 않는다. 주요한 반대는 판결문에 적는다.”

저자는 이러한 ‘평의’라는 의사결정 과정이 사회적경제 조직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수차례의 평의를 통해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에 판단을 내린 것처럼, 사회적경제 조직들도 할 수 있다는 거다.

“좋은 의사결정 과정을 한 번이라도 본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가 만들어내는 미래의 차이, 그 변곡점을 우리는 지났다.”(290p)

‘평의’를 통해 우리 사회는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어찌 됐건 결정을 내리고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을 목격했다. 이는 여타 사회적경제 조직들 또한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좋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믿음의 근거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경제의 역할에 가능성을 느낀 저자의 논리적 흐름은 글로벌경제 흐름에서 출발한다. 사회적경제는 이미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우리 사회와 경제도 이 기류에 탑승할 준비가 됐기에 기대를 걸어볼 만 하다는 거다. 일찍이 경제의 사회화를 크게 키운 선진국처럼 말이다.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책에 소개된 근거는 다채롭다. 법과 제도에 따른 정의를 분석하고, 우리나라 사회적경제의 역사를 역대 대통령의 임기별로 짚어본다. 사회적경제가 활약할 수 있는 사업적 분야를 살펴보는 실용적인 꼭지도 있다. 그는 개인적인 생활 속에서 목격한 사회적경제의 세밀한 사례도 놓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이라 흥미롭다.

사회적경제의 입문자라면 책을 통해 부담스럽지 않게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야 종사자라면 거시 경제의 흐름에서 사회적경제 가능성을 확신하는데 도움을 얻을 것이다.

'사회적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책 표지./사진=문예출판사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우석훈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316쪽/ 1만4800원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