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장 이용팀 '같이놀러갈래?'가 신도림역 고가옥탑에 모여 음식을 먹고 있다. /사진=백지장 이용팀 '같이놀러갈래?'

신도림역 루프탑, 18평 독립공간, 탁 트인 하늘과 노을 뷰. 이 모든 것을 주말 하루 내내 누릴 때 드는 비용은 5만5000원이다. 심지어 마음대로 못을 박아도 된다. 파티룸이나 워크숍 장소를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귀가 쫑긋할 터.

'백지장’은 말 그대로 백지장 같은 공간을 대여하는 청년 기업이다.

도시 고가도로에 맞닿은 옥탑방, 오래된 조명공장처럼 길게 방치돼있던 노후공실을 공유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반짝이는 클럽으로, 멋진 전시회로 변신한다. 그래서인지 주말에는 90%가 예약이 찰 정도로 ‘핫’하다.

저렴한 비용+자유로운 활용→누적 이용자 1만5000명

백지장 김차근 대표는 서울에 공실이 많지만 활용도가 낮다는 점에 착안해 김 대표는 노후공실을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을 계획했다. /사진=백지장

백지장 김차근 대표가 ‘공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2016년 사회적 가치를 위한 창업가들의 모임을 주재하면서다. 준비한 자금으로 임대할 수 있는 서울 내 공간을 발견했지만,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결국, 교류활동이 아닌 내부 공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업 아이디어는 여기서 시작했다. 서울에 공실이 많지만 활용도가 낮다는 점에 착안해 김 대표는 노후공실을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을 계획했다.

김 대표는 소셜 미션을 갖고 창업하는 과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찾다가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지원했고, 2017년 선정돼 사회적기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처음 찾은 공간은 대림역 주변 지하창고다. 활용할만한 공간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창업경진대회에서 발표하다 Q&A 시간에 말을 주고받게 된 관객을 연결고리로 문래동에서 조명작업실도 얻었다. 육성사업에 선정된 덕에 운영하는 공간이 1곳에서 3곳이 됐고, 이듬해 ‘We-Star 발굴 프로젝트’에도 연거푸 선정돼 3곳에서 5곳까지 공간이 늘었다. 현재 운영하는 공간은 신도림 고가옥탑, 대림 지하창고, 문래 조명공장 등 총 6군데다.

김차근 대표가 처음 찾은 공간은 대림역 주변 지하창고다. /사진=백지장 

노후공실을 실제 사용가능한 공간으로 변신시키는데 평균 8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경쟁사 대비 1/5 이하 수준이다. ‘백지장’ 같은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이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됐다. 결국, 비교적 저렴한 공간 이용료와 이용자가 공간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다는 게 장점이 됐다. 창업 2년이 조금 넘은 현재, 누적 이용자가 1만5000명을 넘어선 비결이다. 2017년 10월에는 대관 플랫폼 ‘스페이스클라우드’의 상위 5%에 해당하는 슈퍼호스트로 선정돼 공간 비즈니스 강연자로 나섰다. 백지장은 책 <콘텐츠가 리드하는 도시>에 서울 대표 25개 공간 중 하나로 수록되기도 했다.

이용자는 단순 고객 아닌 동반자

밴드 '전기장판'의 첫 단독공연. 6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기장판 위에 모여앉아 따뜻한 곡을 감상했다. /사진=전기장판

김 대표는 이용자에 관심이 많다. 일반적으로 공간 플랫폼에서 만난 이용자와 호스트(공간주)는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거래만 하면 끝이다. 백지장은 다르다. 직접 만나 얼굴을 보며 인터뷰를 하고 백지장에 관한 이야기도 털어놓는 등 돈독한 관계에 집중한다. 신뢰가 쌓이니 이용자들은 공간이 필요할 때 다시 찾아온다. 전체 이용 사례의 45%가 재이용자의 이용이다.

“다양한 팀이 백지장을 거쳐 창업, 창단하거나 타 청년 성장 프로그램에 합격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이뤘어요. 그중에서도 ‘9AND(나인앤드)’라는 이용팀이 기억나요. 신진 예술가들이 예술활동으로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문화기획 전공 청년들이 구성한 모임이었는데, 10번 가까이 저희 공간을 이용했거든요. 아트 클래스, 전시회 등등으로 활용하면서요. 작년에 소셜벤처로 창업했는데, 백지장이 그 과정에 있었다는 게 뿌듯합니다.”

공간 넘어 ‘모임 시장’ 개척

백지장이 운영하는 공간 중 하나인 문래 조명공장. 노후 공실을 변신시키는데는 800만 원 정도 든다. /사진=백지장

백지장은 현재 모임을 여는 사람들을 위한 웹 서비스 ‘모임가.co’를 개발 중이다. 김 대표는 “최근 다양한 공간활성화 프로젝트가 생기면서 좋은 공간들이 많이 발굴됐으니, 당분간 운영 장소를 늘리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공간과 모임을 연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간을 찾는 모임 기획자들이 ‘모임가.co’에 글을 올리면, 공간주가 직접 연락해 대관해주거나 백지장이 중간에서 연결할 예정이다. 웹 내에서 간편 결제도 할 수 있도록 구상 중이다.

“지금은 주로 소규모 모임용 대관을 위해 모임장(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이 공간을 찾죠. 저희는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모임가.co’는 공간 연결에 그치지 않고, 모임장과 모임에 들어갈 참가자를 연결한다. 모임장들은 알맞은 공간을 찾는 동시에 모임을 홍보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또한, 모임 개설·운영에 필요한 양식과 편의 기능을 무료 제공하고, 모임에 필요한 상품, 디자인, 광고 등 유료 부가서비스도 웹 내에서 살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요즘 시대에 개인은 직업뿐 아니라 좋아하는 일로도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어요. 그래서 취미 기반 여가 모임이 활발해지는 추세고요. 작은 규모의 모임도 마음껏 활용하고, 다양한 취미와 비전을 나누는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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