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의사이자 저술가인 싯다르타 무케르지는 [의학의 법칙들]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든 과학은 인간적 편향의 영향을 받는다.” 그는 임상시험에서 편향을 막기 위한 장치(대조군, 무작위 배정, 이중맹검)를 시행하는 일이 학문이 스스로의 편향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그러한 편향을 막기 위해 얼마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임상시험에서 편향을 배제하기 위한 여러 장치에도 여성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판매된 의약품으로 인해 여성의 건강에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남에 따라 의회, 여성 건강 옹호단체 및 과학자들은 위험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1993년 미국 국립 보건원(NIH)은 NIH가 지원하는 임상시험에서 여성을 포함시켜야 하는 법안(NIH Revitalization Act)을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1997-2000년 판매 중지된 10개의 의약품 중 8개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부작용이 더 나타났으며, 이 중 4가지 의약품은 남녀의 생리적 차이로 인한 것임이 밝혀졌다(주1). 이런 현상은 의약품 전 임상 연구과정에서 성별을 고려하지 않은 연구의 결과였다. 2014년 NIH는 전임상 연구단계에서 성별차를 고려한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동물 실험뿐만 아닌 세포를 이용하는 모든 전임상연구에서 성별 균형을 맞추거나 성별 차이를 두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규정을 만든 이유다.

왜 여성의 자리는 없었던 것일까?

이러한 복기의 과정의 맨 앞에는 '평균남성(Reference man)'으로 점철된 과거가 있다.

1980년대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성인남성'을 대상으로 심장질환 예방 연구를 수행했다.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집단에서 심장마비가 44% 감소됐으며, 그 후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아스피린을 처방했다. 그러나, 1990년대 여성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게 밝혀졌다(주2). 201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불면증 치료제로 널리 처방되고 있는 졸피뎀 계열의 수면제의 투여량을 기존 10mg 에서 5mg으로 줄이도록 통보했다. 이는 여성의 졸피뎀 대사기작이 남성보다 느려 복용 8시간 후에도 33%가 혈액에 잔류해 운전에 지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주3). 이러한 문제들은 '평균남성'을 기준으로 성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음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동물실험을 하는 연구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생식관련 연구가 아닌 이상, 주로 수컷 동물을 이용해왔다. 2009년에 발표된 약 2000개의 논문들의 성비를 분석한 결과, 신경과학은 5.5:1, 약학은 5:1, 생리학은 3.7:1의 비율로 수컷이 더 많이 사용됐다(주 4).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남성보다 여성에게 높은 발병률을 보이는 질환인 경우, 45% 만이 암컷을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암컷 동물은 주기적인 생식 호르몬의 변화로 수컷보다 더 가변적일 수 있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2005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다양한 계통의 암컷 쥐가 통증을 경험하는 방식에 서 수컷보다 가변적이지 않음이 밝혀졌다(주 5). 즉, 암컷의 생리적 주기가 데이터의 변동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정관념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여성의 경우 임신, 수유, 피임약 복용 등으로 인해 안전성과 윤리적 문제로 임상시험에서 제외되는 조건이나 변수가 남성보다 높다. 또한, 여성의 질환 및 복용 약물과 상호작용을 고려하고, 여러 변수에 대한 분석을 해야 해 임상시험이 까다로워질 수 있다. 동물실험의 경우 암수의 판매 가격 차이와 한정된 연구비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성의 동물을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미국의 경우 일반 실험쥐는 암컷이 평균 10% 정도 비싸다). 또한, 암컷과 수컷을 모두 실험해야 하니 분석, 관리, 재정의 어려움이 동반된다.

이러한 제한된 환경과 재정에 따라 여성의 자리는 그리 넓지 않았다.

과학에 있어 편향을 배제하기 위한 여러 장치에도 성편향에 대한 장치를 장착하지 못한 과거로 인해 현재의 과학자들은 청구서를 받게 됐다. 과학자들 앞에 놓인 이 '편향의 청구서'는 품이 드는 일이고, 시간이 드는 일이고, 돈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이 청구서는 단지 현재의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 미래의 우리 모두의 '생명'을 위한 것이다. 과학은 그렇게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청구서가 날아들다

과학에 있어 편향을 배제하기 위한 여러 장치에도 성편향에 대한 장치를 장착하지 못한 과거로 인해 현재의 과학자들은 청구서를 받게 됐다. NIH와 FDA는 여성의 임상시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전담 부서를 설립했으며, 다양한 여성 커뮤니티를 통해서 독려하고, 다양한 언어로 여성의 임상시험 참가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성편향을 넘어 20-30대 백인남성으로 국한했던 임상시험의 대상을 인종, 성별, 나이를 뛰어넘어 다양성이 있는 임상시험의 당위성을 이끌어냈다. 성별을 고려한 동물실험을 위해서 과학자들은 더 많은 연구주제와 통제그룹이 필요해 졌다. 이는 연구비 증가로까지 이어져, 동물실험이나 세포연구의 성별을 고려한 기초 연구에 더 많은 재정 지원이 필요해졌다. 과학자, 임상연구자들이 다양성을 고려한 연구 계획, 분석방법 등의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의 변화도 필요하다.

과학자들 앞에 놓인 이 '편향의 청구서'는 품이 드는 일이고, 시간이 드는 일이고, 돈이 드는 일이다. 이 청구서는 때로는 강력한 제도가 동반돼야 낼 수 있으며, 때로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필요로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 청구서는 단지 현재의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 미래의 우리 모두의 '생명'을 위한 것이다. 과학은 그렇게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지금, 당신의 앞에는 어떤 '편향의 청구서'가 놓여 있는가.

주1. https://www.fda.gov/files/science%20%26%20research/published/Adverse-effects-in-women--Implications-for-drug- development-and-regulatory-policies.pdf

주2.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050613

주3. https://www.fda.gov/media/84992/download

주4. https://www.nature.com/articles/465690a

주5. https://insights.ovid.com/article/00006396-20050900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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