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직업은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테일러 피어슨은 저서 <직업의 종말>에서 기존 방식 아래 ‘직업’의 한계를 지적하며 창업가 정신을 구현하라고 강조했다. 최근 마포구에서도 직업종말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지난 31일(토) 문화비축기지 내 상암소셜박스에서는 ‘비-사이드 살롱 이상한 직업전’을 열고, 직업종말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겪는 이야기를 나눴다.
?상암소셜박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마포구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는 매월 ‘비-사이드 살롱’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8월 전시는 직업을 이야기하는 ‘이상한 직업전’으로 구성했다. ‘이상한 직업전’은 이상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흔히 알고 있던 '일'의 이면을 탐구하고자 기획됐다. 8월 ‘비-사이드 살롱’은 마포구 사회적경제 박람회와 결합했고 9, 10월 행사 역시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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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4개 기업이 말하는 ‘일과 직업을 대하는 새로움’
‘비-사이드 살롱 이상한 직업전(이하 직업전)’이 열린 주말, 상암 문화비축기지는 여름과 가을 사이로, 푸른 가을 하늘과 따가운 여름 햇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이상한 전시에는 △니트컴퍼니 △해빗투게더 △또또스튜디오 △백지장 등 4개 기업이 참가했다.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니트컴퍼니 전시장이 눈길을 끌었다. 니트컴퍼니는 백수들이 운영하는 가짜회사로 건물, 월급, 사장이 없는 페이퍼컴퍼니다. 니트컴퍼니 직원들은 새로운 사람들과 협업 기회를 통해 개인프로젝트와 팀프로젝트를 한 달 동안 수행한다. 니트컴퍼니는 서울시NPO지원센터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으로 운영되며, ‘이상한 직업전’을 기획하고 운영에 참여한 조직이기도 하다.
니트컴퍼니가 조성한 ‘당신의 일을 찾아주는 책방’에서는 직업과 관련한 도서를 빌려주고, 이들이 인터뷰한 여러 직군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책방을 찾은 사람들은 새로운 직업 환경을 설명하는 책을 보며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직업 설명 인터뷰를 읽으며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해빗투게더는 ‘지역자산화가 답이다’를 주제로 좌담회를 열고 마포구 내 지역자산화를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해빗투게더는 마포구 내 우리동네나무그늘협동조합, 삼십육쩜육도씨의료생활협동조합,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등 3곳이 힘을 합쳐 만든 지역자산화 추진단체다. 박영민 해빗투게더 이사는 “필요성을 느끼고 공부를 해가며 지역자산화 관련 전문성을 키워나갔다”며 “쉽지 않지만 민간이 지역자산화에 성공하는 사례가 나오면 다른 지역에서도 지역자산화 시도가 퍼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작가 아닌 작가·임대 아닌 임대’, 이상한 전시를 함께한 이들
?“우와, 사진 정말 예쁘다!”
?또또스튜디오 조승현 PD가 찍은 고가 철거 사진을 보며 한 방문객이 신기한 듯 말했다. 조 PD는 “보통 ‘철거’ 하면 접하기 어렵고 더러운 일이라 생각하는데 ‘철거가 예쁠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전해주고, 쉽게 볼 수 없는 곳을 모아 보여주는게 목적”이라고 전시 취지를 밝혔다. 전시 작품은 서울시 안에서 철거되거나 없어지는 고가도로와 건물을 사진과 영상, 글로 담은 백서 중 일부를 활용해 구성했다.
전시관 한편에는 백지장이 공유 공간을 이용한 모임들을 소개했다. 백지장은 도심 내 노후 공실을 임대해, 공간 자원이 부족한 청년들의 활동을 돕고 있다. 6곳의 공간을 지금까지 1만 8,000여 명이 사용했고 1,400여 개의 활동이 이어졌다. 디제잉, 힙합 등 공연, 파티룸 활용, 전시회, 캠핑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다.
?김차근 백지장 대표는 “백지장보다는 백지장 공간을 이용하는 분들을 조명하고자 했다”며 전시 의도를 설명하며 “공간 이용자 중에는 당장 돈이 되는 본업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삶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일'에 주목하고자 하는 분이 많다"고 부연했다.
이상한 토크쇼, “직업을 말랑말랑하게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해가 저물 무렵, 소셜박스 중앙에서는 이상한 토크쇼가 이어졌다. 이상한 토크는 전시 제목 ‘이상’을 △이상(異常)한 일 △누군가의 이상(理想) △보통 이상(以上)이라는 세 가지 뜻으로 해석해 각 주제에 맞는 연사를 초청했다. 진행은 팟캐스트 '오늘도 일개미는'을 운영하는 김돌고래와 쟝크가 맡았다.
# 이상(異常)한 공동체 '청년아로파'
?첫 번째 연사로 나선 김수훈 대표는 을지로 '십분의일'을 만든 청년아로파 멤버이자, 영상스튜디오 '십일월' 운영자다. 청년아로파 멤버들은 매달 자기 월급의 1/10을 출자하지만 수익은 공평히 나눠 가진다. 김 대표는 “청년아로파는 불평등과 비효율을 연습하는 곳이며, 관련 논의는 정기적으로 치열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치사하게 살고자 한다”며 “이는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치나 신념이 바뀔 수 있다는 여지를 둔다는 의미고, 그 과정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고 경험에 비추어 말했다.
# 이상(理想)과 현실 사이, 퇴사 그 이후
?이어 조퇴계 브로드컬리 편집장이 연사로 나섰다. 브로드컬리는 독립적인 관점에서 자영업 공간을 연구하고, 같은 이름을 가진 로컬숍 연구 잡지를 만들고 있다.
그는 성동구 금호동에 있는 '프루스트의 서재'를 예로 들며 “가게라는 공간에는 한 사람만큼의 우주가 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멀리 가지 않아도 집 주변 가게에서 새로움을 만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작은 가게를 책의 주제로 선택한 이유를 “응원이 아닌, 가게를 가는 이유를 만들고 애정을 지닐 수 있는 선택의 근거를 찾기 위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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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以上)의 직업 '사바(사장과 알바)'
?마지막으로 사장과 알바를 병행하며 일하고 있는 오채영 스파클링 스튜디오 대표가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그는 영상스튜디오 '스파클링 스튜디오', 플랜트행거 브랜드 '비상식물'을 운영하면서 동네카페에서도 일하고 있다. 그는 “노동의 종류(영상 제작과 카페업무)에 따라 느끼는 부담감은 차이가 있지만 두 가지가 더 좋은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일을 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걸 하는 기대감이 좋다”고 사바로 일하는 장점을 설명했다.
진행을 맡은 쟝크는 마무리 발언으로 “직업은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매개체다”며 “직업을 말랑말랑하게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토크쇼에 참가한 한 시민은 “직업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됐다”며 참가 소감을 밝혔다. 토크쇼가 끝난 후 이상한 직업전에 참여한 시민들은 2인조 싱어송라이터 ‘혹시몰라’가 부르는 노래 속에서 남은 전시를 즐겼다.
사진. 박재하(이로운넷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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