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에 발표한 담화문에서 조코위 대통령은 수도 이전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예상 지역으로 가장 큰 칼리만탄섬을 지목했다. 칼리만탄은 보르네오섬의 인도네시아식 이름이다. 말레이시아, 브루네이, 인도네시아, 3개국이 분점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령이 전체 3분의 2를 차지한다.수도이전을 발표하는 인도네시아 /사진자료=메르다카(원문 아래)

추억의 심시티 게임을 떠올리며 어떤 나라의 수도 이전 문제를 살펴보자.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이 나라는 4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의 섬이 비슷한 크기에 인구도 골고루 분포해있고, 수도는 중앙에 위치한 섬에 있다면 별문제 없다. 하필 수도는 제일 작은 섬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기에 인구 절반이 사는데, 수도권 GDP는 타지역의 2~3배다. 심지어 한국보다 높다. 국가 주요 기능 대부분이 집중돼 있으니 나라 전체로는 지나친 불균형이다. 

그래서 개발이 덜 된 다른 지역으로 수도를 이전하기로 하고 가부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면 심시티 플레이어인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은 간단하다. 수도를 옮겨야 할 당위성이 이미 전제돼있기 때문이다. 한편 심시티 게임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면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   

이 나라는 동남아의 맹주를 자처하는 인도네시아다. ‘인도양의 섬나라‘를 뜻하는 인도네시아는 큰 4개의 섬(수마트라, 자바, 칼리만탄, 술라웨시)으로 구성돼 있다. 제일 작은 자바섬만 해도 한국의 1.3배 크기인데 수도 자카르타는 여기에 있다. 자카르타의 역사는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세기 말~16세기 초, 유럽은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향신료 무역으로 들썩였다. 인도의 향신료는 이슬람 지역을 거쳐 베네치아까지 운송됐는데, 거기에서 전 유럽에 유통됐다. 오스만 제국이 이슬람 지역을 장악하자 수입 루트가 막혔고 사치품이던 향신료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러자 유럽 변방의 포르투갈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바다를 통해 이슬람 지역을 우회, 인도로부터 향신료를 직접 수입하려 했고, 이를 계기로 ‘신항로의 개척’ 시대가 열렸다. 

향신료 무역이 본격화되자 포르투갈은 동남아 곳곳에 거점 항구를 만들었다. 자바섬 서쪽에 만든 항구는 ‘자야카르타’라고 명명했다. 포르투갈이 해양 무역 루트 대부분을 장악한 상황에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경쟁에 뛰어든다. 자바섬에 새로 등장한 이슬람 왕국은 포르투갈 상인들을 무력으로 몰아냈고 무주공산이던 자야카르타 항구는 영리한 협상을 한 동인도회사에 할애된다. 동인도회사는 항구에 교두보를 설치하고 군대를 증강해 인근 지역까지 다 장악한 후, 신도시를 만들고 이름을 ‘바타비아’라고 지었다. 네덜란드령 바타비아는 1942년 태평양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이 진주하고서야 옛 이름을 되찾는다. 일본군은 자야카르타 대신 자카르타라고 이름을 살짝 바꿔버린다. 1945년 일본군이 패전으로 물러가자 독립운동 세력은 자카르타를 새로운 수도로 선포한다. 이렇듯 자카르타는 신생국 인도네시아의 정체성을 간직한 도시다. 

너무 넓은 국토를 골고루 성장시킬 수 없었던 건국의 주역들은 우선 수도와 인근 지역부터 발전시키기로 한다. 네덜란드 식민지 통치를 거치면서 유럽식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도 한몫했다. 모든 발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서울과 비슷한 면적에 1천만 명의 인구가 밀집했다. 면밀한 도시 계획에 입각한 확장이 아니었기에 온갖 문제를 만들어낸 팽창이었다.

대형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보니 선택과 집중은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이 완전히 낙후되는 결과를 낳았다. 유일한 해결책은 수도를 이전해 불균형을 적극적으로 완화하는 것이다. 그런 거대 국책 사업은 톱다운 방식으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첫 삽을 뜨기 어렵다. 과감하게 시작 테이프를 끊은 것은 지난 5월 재선에 성공한 조코위 현 대통령이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이 섬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이다. 오랑우탄이 유일하게 서식할 정도로 열대 우림 지역이 대부분이다. 이런 곳으로 수도를 이전하려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고, 국토 정중앙에 있으며, 대부분 국유지라 개발이 수월해서다. 조코위 대통령은 3년간의 타당성 조사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적극적으로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수도권 주민 대부분이 반대하는데 당연히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귀담아둘 만한 반론은 해양국가로서의 정체성의 상실이다. 자카르타가 만들어진 이유, 독립을 이끈 국부들이 수도를 자카르타에 유지한 이유는 계속해서 바다로 뻗어 나가는 해양 국가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내륙으로 수도를 이전하면 그런 전통에서 단절된다는 우려다. 섬나라가 내륙을 언급하니 이상할 수 있는데 칼리만탄섬이 일본 열도 전체의 2배가 넘는 크기임을 고려하자.

인도네시아 신 행정수도 이전 예상 지역/ 사진자료=콤파스(원문 아래)

수도 이전 청사진은 야심 차다. 행정수도 전체를 IT 기반의 스마트시티, 지속가능한 도시의 컨셉으로 만들 계획이다. 수도를 잇는 도로, 항만, 거기에 연결되는 교통, 물류 시스템도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최첨단으로 건설할 예정이다. 단순히 최신 테크놀로지를 접목한 신도시 건설이라는 측면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자바섬과 자카르타 위주의 발전에서 벗어나 해양국가의 정체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는 시도다.  

흥미로운 것은 인도네시아가 이런 변화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행정수도를 10년 단위로 4개의 섬을 하나씩 돌아가면서 이전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행정수도에 인도네시아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킨 신도시를 건설하고, 이를 다른 지역의 신도시 건설과 구도시 재생산업의 테스트 베드로 만들겠다는 마스터플랜인데 한창 커나가는 나라답게 과감한 실행을 하려고 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수도권 인구 집중 완화와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10년 단위로 행정수도를 각 도에 번갈아 옮기겠다는 계획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서울에서 KTX로 1시간 반 거리의 세종시로 정부 부처 일부만 옮기는데도 그 야단법석이었으니 상상하기도 어렵다. 인도네시아는 국가의 미래를 크게 디자인하려고 행정수도 이전 첫 단계를 2023년부터 시작하려 한다. 4년 만에 기본 인프라를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느려터진’ 동남아에서 한창 벌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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