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과 한 상자도 무료로 주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은 강연료가 있을 것 같아 딱 그만큼만 준비해왔어요. 투자를 한 셈이죠?”

당진에서부터 직접 세 시간 차를 몰고 왔다는 마을기업 ‘백석올미’의 김금순 대표(70)의 모습에서 프로 사업가의 모습이 엿보인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는 매달 월례회의에 사회적기업 전문가를 초청해 현장의 소리를 듣는다. 9월의 초청전문가는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마을기업 백석올미영농조합법인(이하 백석올미)의 김금순 대표다.

부녀회에서 시작한 백석올미는 2011년 법인을 설립 지역자원인 매실을 활용한 한과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올해로 설립 8년차인 백석올미는 마을기업 운영과정에서 여러 난관을 겪으며 지금은 8억 원 상당의 매출을 올리고 지역경제와 지역공동체에의 기여를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백석올미에서 일하는 할매들./사진출처=백석올미 홈페이지 

“우리가 하는 경제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팔면 된다!” 소신 운영?

백석올미가 판매하는 제품의 모든 재료는 마을에서 나온다. 백석올미 한과만의 특징인 매실은 물론 찹쌀은 5명, 참깨 12명, 검은깨 5명 마을 생산자를 지정해 공급받는다. 지역자원을 활용해 지역공동체 이익에 이바지하는 건 마을기업의 정체성이자 가장 중요한 자격 조건이다.?

또한 모든 재료를 최저가가 아닌 시중가격으로 매입하는 ‘빌리지 푸드 시스템’을 차용한다. 재료를 최저가로 책정할 수 없는 건 공급지가 모두 얼굴을 마주 보고 살아가는 마을기업이라는 특징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사업적인 관점에서는 어려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용을 낮춰 이익을 최대화해 가격경쟁력을 갖추는 기존 기업들의 전략을 활용할 수 없어서다. 그럼에도 백석올미 ‘사장님들’은 이를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다소 비싼 가격으로 가격경쟁력은 낮아지더라도 원래의 방식을 지키기로 했다”며 “대신 이 방식을 이해하는 분들을 고객으로 삼기로 했다"고 말했다.?

백석올미는 스스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제품 측면에서는 한과를 중심으로 공격적인 확장상품 개발 중이다. 조청, 장아찌, 매실엑기스를 직접 제조한다. 더 나아가 문화상품도 개발했다. 백석올미 할머니들을 캐릭터로 만들어 웹사이트에 활용하고 담요 등의 상품을 출시했다. 마을에 외국인 거주자와 방문자가 늘어나는 현상을 포착해 사업의 기회로 만든 브랜드 ‘할매들의 반란’이다. 특히 눈에 띄는 상품은 ‘할매’ 캐릭터를 활용한 세상에 하나뿐인 화투다.

'할매들의 반란’ 화투. /사진=강연자료 캡쳐

또한 사업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 호서대 사회적경제 MBA과정을 수료하는 등 매년 4회 이상의 교육을 받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회사 운영의 원칙도 명확히 세웠다. 자세한 내용은 ▶기록 없는 반입반출은 없다 ▶매출, 체험, 홍보, 사고, 파지 문서화 관리 ▶법인 설립부터 현재까지 모든 자료 보관 ▶마을 주민이 상시 근로하지 않더라도 법인 자료를 통해 운영 상황 파악 가능 등이다.?

상품이 다양해지고 여러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시작하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입점 요청도 늘어났다. 하지만 김 대표는 솔깃할 수도 있는 제안을 거절했다. 업체에서 요구하는 법률 등을 따라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중소기업과 대형업체 간 거래에서 생기는 마찰은 여전하다. 대형마트와 재계약은 보통 1년 단위로 이루어지는데, 계약해지에 대한 사전 고지가 미흡한 점 등은 꾸준히 문제가 제기돼왔다. 무엇보다 매번 바뀌는 계약조건에 백석올미가 대응하기는 아직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마을기업의 운영의 핵심은 ‘갈등 관리’?

어느 사업에 갈등이 없겠냐만은,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에서 생기는 갈등은 개인적 이익과 사적인 관계 모두에 영향을 미치기에 더욱 민감하다. 사업을 위해 마을 땅에 공장을 설립한다고 하니 처음에 주민의 반대가 심했다.?

김 대표를 비롯한 조합원들은 갈등해결을 위한 소통에 힘썼다. 그들이 내놓은 대안은 동아리 운영이었다. 무료급식에서 시작해 체조교실, 댄스동아리 등의 공동체 활동을 운영했다. 이는 한글반, 컴퓨터반 등의 교육활동으로 이어지고, 또 희망재단의 지원을 받아 서예반도 운영했다. 동아리활동 하느라 대학생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 결과 주민들은 공장설립에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예상보다 사업비가 많이 들었다. 인건비, 설비 비용 등 70평 땅에 공장을 짓는 데 예상했던 설립비 2억 원을 훨씬 웃돌아 4억 원이 필요했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금액에 마을 주민 70명이 공장을 가동시키는 데 반대했다.?

김 대표를 비롯한 운영진들은 성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결 방안을 고민했다. 상품성을 확보하기 위해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주최하는 한과전문인 교육을 이수했다. 서로의 집을 전전하며 한과를 제작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2500박스의 상품을 제작해냈다.?

첫 판매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과는 ‘완판’이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성과를 내고, 또 함께 일한 직원들에게 급여가 돌아가니 주민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성과를 보여주니 합류하겠다는 마을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들의 출자금 등을 보태 사업품목 확장에 나섰다.

'할매들의 반란’ 브랜드로 내놓은 상품들.

적절한 국가사업 활용으로 성장의 발판 삼아?

마을기업 육성사업은 2011년 정식으로 시작됐다. 백석올미가 2011년에 설립되었으니 한국의 마을기업 육성 과정의 첫 단계부터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석올미는 마을기업으로서 겪는 우여곡절을 해결하고 8년 동안 사업을 지속하고 성장하는데 국가사업을 적절히 활용했다.?

시작부터 국책사업과 맞물려있었다. 당진시 순성면에서는 2007년에서 2011년에 걸쳐 네 개 리(里)에서 권역사업이 실시됐다. 백석올미가 있는 백석리는 소득사업으로 주민동의 하에 한과공장을 운영하기로 했다. 사업에 동의한 부녀회원 33명의 출자로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2012년에는 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돼 한과제작에 필수인 건조기, 에어컨 등의 생산 인프라를 갖췄다. 첫 번째 한과 제작과 판매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해 말에는 마을기업으로서 성과를 인정받아 추가 지원이 있었고, 그 돈으로 배송차량을 구입해 기본 판매망을 갖췄다. 갈등 해결을 위해 동아리를 운영하는 데에도 크고 작은 민간재단의 지원이 있었다.?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 만들고 시니어 일자리 창출 등 성과?

?사업 주체들의 노력과 적절한 지원사업 활용으로 백석올미가 이룬 성과는 화려하다. 2018년 기준, 8억 원 상당의 매출 중 6억 3천만원이 마을로 돌아오는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를 마련했다. 체험프로그램의 인기로 외지인이 전무했던 마을에 연 8900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

시니어의 일자리를 자력으로 만들어냈다는 게 가장 주목할 점이다. 1명의 정규직, 5명의 비정규직 직원으로 시작한 백석올미는 지금 20명의 정규직과 25명의 비정규직 직원을 두고 있다.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니어 직원이다. 김 대표는 “시니어 직원들이 모두 나이가 많음에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최근 백석올미는 또 다른 난관 앞에 서 있다. 지원이 마무리되고 주 52시간 근무제도, 최저시급 인상 등 국가적인 고용정책 변화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에 푸념을 잠시 늘어놓으면서도 김 대표는 다시한번 강조한다. 

"푸념을 늘어놓았나요? 그래도 희망은 있답니다. 우리 할머니들 얼굴에는 항상 함박꽃이 피어있거든요!”?

지난 8년 동안 그랬듯이, 앞으로 닥칠 난관도 ‘할매들의 반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되지 않을까. 

마을기업 ‘백석올미’의 김금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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